배달말
말꽃삶 17 지지배배 한글날 보금숲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17 지지배배 한글날 보금숲 ― 어진내와 주시경 해마다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한글을 기리고 돌아보면서 우리 말글살림을 헤아리는 하루입니다. 흔히 세종 임금님이 한글을 지었다고 여깁니다만, ‘한글’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주시경 님이 처음으로 붙였습니다. 세종 임금님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뜻은 ‘훈민’을 하는 ‘정음’이요, ‘사람들을 가르치’는 ‘바른소리’를 나타냅니다. 바른소리 우리가 오늘날 쓰는 글은 처음에는 ‘소리(바른소리)’였습니다. 우리글은 말소리를 비롯해 물소리에 바람소리에 새소리를 고루 담는 얼거리일 뿐 아니라, 웃음짓과 몸짓과 빛결을 두루 담는 얼개입니다. ‘말을 담는 그릇’을 넘어 ‘소리를 옮기는 그릇’인 ‘바른소리(정음)’예요. ‘말’이란, ‘마음’을 귀로 알아듣도록 담아낸 소리입니다. ‘글’이란, ‘말’을 눈으로 알아보도록 옮긴 그림입니다. 마음을 담고 소리를 옮길 수 있는 놀라운 글(바른소리)인 훈민정음인데, 조선 오백 해 내내 ‘암글’이나 ‘아해글(아이나 쓰는 글)’이었고, 한문은 ‘수글’이었어요. 임금님도 벼슬아치도 글바치도 모두 사내(수)였고, 가시내(암)는 집에서 조용히 집안일을 맡는 몫으로 억눌렸어요. 애써 지은 우리글을 스스로 ‘큰글’이자 ‘한겨레 글씨’로 여겼다면 처음부터 빛났으리라 생각해요. 곰곰이 보면, 암글이란 이름으로 가시내하고 어린이만 쓰는 글로 억눌린 긴 나날이란, “우리글을 지키고 돌보고 가꾼 사람은 바로 가시내(여성)하고 어린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힌샘 일본이 이 나라를 집어삼키던 무렵, 주시경 님은 〈독립신문〉을 여미는 일을 맡았어요. 펴낸이는 서재필이요, 엮은이는 주시경입니다. 인천 제물포에 있던 ‘이운학교’를 다닌(1895∼1896) 주시경 님은 스스로 말글빛을 깨우치면서 ‘우리말틀(국어문법)’을 처음으로 세웁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는 첫 길잡이(교사)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이런 땀방울이 시나브로 모여, ‘국문·언문’처럼 가리키던 우리글을 ‘한글’로 일컫자고 밝혔고, 스스로 ‘한힌샘’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한힌샘’은 “한글을 널리 알리는 맑은(하얀) 샘”이란 뜻입니다. 우리 겨레는 ‘한겨레’입니다. 서울 한복판을 가르는 냇물은 ‘한가람(한강)’입니다. 한자로는 ‘한국(韓國)’이되, 우리말로는 ‘한나라’입니다. ‘한글’에 붙인 ‘한-’은 ‘하늘(한울)’을 가리키고, ‘크다’와 ‘하나’를 가리키며, ‘해’와 ‘하얗다’를 가리킵니다. 10월 9일 한글날이란, 누구나 마음을 밝히고 생각을 가꾸는 밑씨앗을 말 한 마디와 글 한 줄로 담아서 널리 배우고 나누자는 뜻을 펴자는 꿈을 담은 하루예요. 어진내 ‘인천’이라는 이름을 곧잘 ‘어진내’로 풀곤 합니다. ‘어질다’란 ‘어른다운’ 매무새와 마음결을 가리켜요. ‘내(냇물)’란 늘 맑고 밝게 뭇목숨을 살리고 살찌우며 사랑하는 가없는 빛살을 가리킵니다. ‘어진내’란, “스스로 깨닫고 먼저 앞장서는 이슬받이처럼 참하고 아름답게 눈빛을 틔워 이 삶터에 사랑을 펴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고을”을 밑뜻으로 품습니다. 새길(신학문)을 배우려고 인천으로 걸음을 뗀 주시경 님이 지어서 편 ‘한글’이라는 이름처럼, ‘어진내’ 고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참하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말길을 열고 글길을 틔울 만합니다. 하늘빛으로 함께 하나되면서 해맑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한글·한말을 돌아볼 수 있다면, 한마음·한뜻·한넋·한사랑으로 피어나는 한마을을 일굴 만합니다. 보금말 봄에 찾아온 제비가 가을 첫머리에 하늘을 까맣게 덮으면서 빙그르르 돌다가 어느새 한덩이를 이루더니 훅 날아갑니다. 예전에는 인천에도 봄제비가 많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봄을 맞이하는 제비에, 가을에 떠나는 제비를 찾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도 제비는 퍽 줄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적잖은 제비가 골골샅샅 찾아와서 처마밑에 깃들며 사랑스레 노래해요. 뭇새가 알을 낳아 새끼를 돌보려고 둥그렇게 지어서 보듬는 자리를 ‘둥지’나 ‘보금자리’라 합니다. 마을에 찾아와 노래하는 새를 지켜본 사람들은 ‘집살림’이 포근하거나 아늑할 적에 ‘둥지’나 ‘보금자리’란 이름을 붙입니다. 보금자리처럼 보금마을과 보금숲을 이루고, 보금말을 쓰는 넉넉한 가을이기를 바랍니다. 집안을 보듬고 보살피듯, 말결을 돌보고 토닥일 수 있기를 바라요. 어른스럽게 살림을 지어 어린이 곁에서 사랑을 물려주듯, 서로서로 따사로이 마주하고 즐겁게 어우러지는 마음을 우리말과 우리글에 어질고 슬기로이 담아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쓰고 나눌 말이란 “보금자리를 가꾸는 말”인 ‘보금말’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돌보고, 이웃이랑 동무하고 어깨를 겯고 나아갈 줄 아는 보금말입니다. 풀꽃나무를 돌아보면서 들숲바다를 품을 줄 아는 보금말입니다. 지지배배 제비나 참새가 잇달아 노래하는 소리를 ‘지지배배’로 담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이나 수다를 떠는 사람한테 으레 ‘지지배배·지지배’ 같은 또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새처럼 노래하듯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지지배배·지지배’는 ‘계집·계집아이·계집애’로 가리키는 말씨하고 어울리기도 합니다. ‘지지배’하고 ‘계집’은 말밑이 다르지만, ‘글이 아닌 말로 살림을 짓던 지난날’을 헤아려 봅니다. 집에서 순이가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삶을 가르치고 살림을 물려줄 적에 늘 끊임없이 ‘말을 펴야 하던’ 매무새를 고스란히 담은 자취를 보여주거든요. 오늘날이야 책을 손쉽게 장만하거나 빌릴 수 있고, 글을 매우 쉽게 만납니다. 꼭 책이 아니어도 손전화로 글을 잔뜩 읽어요.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은 ‘누구나 글살림’인데, 지난날은 ‘누구나 말살림’이었어요. 지난날에는 보금자리에서 집밥옷이라는 세 가지 살림살이를 돌이보다는 순이가 떠맡았다고 여길 만하고, 살림살이를 돌보면서 ‘글 아닌 말’만 썼으니, ‘지지배배’ 노래하듯 자꾸자꾸 말로 타이르고 알려주고 가르치고 보여주었지요. 굴레 훈민정음이 1443년에 태어났어도 돌이는 수글인 한문만 썼습니다. 훈민정음은 조선 오백 해 내내 ‘우리글’ 아닌 ‘순이글·암글·아해글’이었습니다. 이 굴레를 비로소 떨치려고 움직이는 사람이 나타난 때는 총칼굴레(일제강점기)였으니, 곱으로 굴레였던 터전을 그야말로 새롭게 일으키려는 마음이 말글을 바탕으로 샘솟거나 터져나왔다고 여길 만합니다. 누구나 들숲바다를 누릴 적에 누구나 튼튼합니다. 누구나 넉넉하게 살림을 펼 적에 누구나 즐겁습니다. 몇몇 사람만 푸른들과 파란하늘을 누려야 하지 않아요. 누구나 풀빛과 하늘빛을 즐겁게 머금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아름나라입니다. 이처럼 누구나 스스로 뜻한 바나 꿈이나 길을 말글에 넉넉히 실어서 나눌 수 있어야 열린터예요. 억누르거나 가두는 굴레로는 생각에 날개를 못 답니다. 어깨동무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홀가분한 터전일 적에 생각날개를 펴면서 꿈을 이루는 길에 나설 만해요. 말 한 마디는 작고, 글 한 줄은 조그맣지요. 그런에 이 작은 말씨하고 글씨는 풀꽃씨나 나무씨처럼, 앞으로 숲을 푸르게 이룰 바탕이에요. 말씨 하나를 가다듬고, 글씨 하나를 추스르면서 함께 빛나는 한글날로 삼아 봐요.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