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8] 힘
앞산 자락길을 걷는다. 공룡공원을 지난다. 여기에는 이름처럼 공룡 닮은 인형을 세웠다. 앞에 다가가면 머리를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몸집이 누가 더 큰지 내기라도 하듯 힘자랑하듯 이빨을 드러낸다. 등은 주름지고 꼬리가 길고 짧은 앞다리를 들었다. 공룡이 곧 살아 움직일 듯하다. 아이가 울다가도 이 짐승만 보면 울음을 뚝 그칠 듯하다.
찔레꽃이 한창이다. 오늘이 아니면 찔레꽃을 놓칠지 몰라 가까이 다가간다. 손가락 틈으로 끼워 손등에 올리고 냄새를 맞는다. 찔레꽃은 언제 맡아도 향긋하고 상큼하다. 길을 꺾어 건너편에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나무틈으로 본다. 멀리서 보니 공룡이 나무보다 크다. 그 옛날 큰 덩치가 버티려면 얼마나 먹어야 할까.
움직이는 짐승은 풀을 먹든 열매를 먹든 다른 짐승을 먹든 배를 채운다. 한 자리에 머무는 풀꽃나무는 햇살과 비바람을 받아먹어야 쑥쑥 자라서 숲에 나눈다. 하나는 주고 하나는 먹기만 하면 셈이 맞지 않네. 짐승 몸을 지나 풀은 멀리멀리 뿌리를 내리고 싶겠지. 우리 별이 자리를 잡기까지 바람 비 구름 해 불이 한바탕 싸움을 치렀을는지 모른다. 이동안 누구는 터전을 잃고 누구는 터전을 늘렸으리라. 문득 고개를 숙인다.
이 앞산에 깃들던 나무도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자 벌거숭이로 되었다가 이제 여린 나무가 자리를 잡는다. 공룡은 날씨한테 지고 사람은 풀꽃나무를 잘 다스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힘이란 알고 보면, 한 갈래가 사라지는 데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지 모른다. 힘없이 무너진다. 사람이 심어 놓은 나무는 사람 가까이에서 살며 꽃을 마음껏 피운다.
풀꽃나무는 풀꽃나무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앞산에 자리를 얻은 백선초를 마주한다. 희면 희고 물들면 물들이지. 꽃은 무늬를 긋고 다른 빛깔을 입고 여러 기운을 품는다. 이 가운데 아무리 독을 품은 풀이 있더라도, 사람이 뽑아 버리면 이내 시들어 버리는 줄 잘 알기에 우리 사람 마음을 빼앗으려는듯 곱게 피었다.
사람은 가진 것에 따라 힘이 셀 테지. 돈을 갖거나 사람을 갖거나 이름을 가질 적에 힘은 더 큰 힘을 얻는다. 책이 쏟아지자 이 책 저 책 읽었다며 자랑삼고, 지식이 힘이 키우느라 기대고 기대느라 저를 놓친다. 책방이 늘어서니 좋지만, 다들 이름난 작가 책을 내걸고서 사람을 북적북적 모아 책잔치를 한다. 이름도 없고 책방 이웃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힘이 없는 셈일까. 힘이란 힘을 먹고 자라고 힘없는 사람은 자꾸 쪼들어 가는 판이 맞는가.
힘도 재주인지라 이리저리 힘이 닿는 끈을 쥐거나 잡은 사람이 부럽다. 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쌓여서 오늘 그 사람을 이루었을 텐데, 나는 사람들 사이에도 책 사이에도 끼어들지 못했다는 이 마음은 뭘까. 내 살림을 차곡차곡 쌓으면 이 밥으로 우리 아이, 그 아이에 다른 아이를 끈으로 이어갈까.
자락길 한 바퀴 돌고 온 사이에 공룡공원에 아이들이 모였다. 모래에 앉아 맨손으로 놀며 우람한 몸집인 공룡을 무섭지 않게 여기며 노는 아이들도 몸집이 큰 공룡이 힘이 있어 좋아하는지 모른다. 힘은 자석 같아. 모래에 섞인 쇠를 끌어모은다. 나는 자석에 달라붙지도 못하고 누굴 당기지도 못하는 힘없는 사람이 된 듯하다.
2023.05.1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