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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90 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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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90 흉내


《한강》
한강
문학동네
2023.6.1.


올해 늦가을에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한강》을 장만했다. 제주에서 보름살기를 하는 동안 제주 마을책집을 돌아보았고, 이때에 눈여겨보았다. 《한강》이라는 책에는 한강 씨가 쓴 소설과 시와 산문을 싣는다. 그런데 〈희랍어 시간〉을 읽으며 자꾸 흐름이 끊긴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길다. 뭔가 낱낱이 그리는 듯하지만 오히려 말만 너무 긴 듯해서 답답하다.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빗대는 듯하지만 잘 모르겠다.

 

〈종이 피아노〉로 넘어간다. 어릴 적에 피아노를 하고 싶은데 집안살림이 안 되어서 종이 피아노를 놓고서 치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데 한강 씨 아버지는 소설가이고 집에 책이 많았다. 피아노를 만질 수 없어서 종이 피아노를 눌렀다지만, 책이 잔뜩 있던 한강 씨네 살림이 오히려 부럽다. 나는 어릴 적에 교과서를 뺀 다른 책을 만지지도 보지도 못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내가 배우고 싶으면 배워 보라고 피아노학원이라든지 다른 어느 곳도 보낼 수 없었다. 아마 보내려는 엄두조차 못 내었으리라. 의성 멧골마을에 무슨 학원이 있겠으며 무슨 책집이 있겠는가.

 

나는 세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의성을 떠나 대구에서 살았으니, 도시에는 학원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쉽게 보낼 수 있다. 나는 내가 못 배웠다는 마음에 아이들을 학원에 밀어대듯 보냈다. 그러나 거꾸로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 셈이더라. 내가 못 배웠으면 내가 다니면 그만 아닌가.

 

한강 씨는 스웨덴으로 날아가서 노벨상을 받는다. 스웨덴에서 했다는 강연을 아침에 들어 보았다. 한강 씨가 말을 마치자마자 손뼉소리가 우렁차다. 손뼉소리에, 멋쩍어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한강 씨 얼굴에, 나도 모르게 북받친다. 요즘 온나라는 계엄령 탓에 시끄러운데, 저 먼 나라에서는 글꽃으로 잔치이네.

 

〈기억의 바깥〉을 읽고 〈출간 후에〉를 읽는다. 토막토막 짧은 글이다. 한강 씨는 날마다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고 한다. 아마 아침이든 저녁이든 어느 때에 이르면 꾸준히 글을 쓸 테지. 나도 날마다 책을 한두 권씩 읽고, 나도 날마다 어느 때에 꼬박꼬박 글을 쓰면 내 눈길과 글길이 나아갈까.

나는 작가 흉내를 내는지 모른다. 내가 몇 살을 살는지 모르지만, 나무 한 그루보다 오래 못 살 수 있는데, 나보다 오래오래 살아갈 나무를 섣불리 베어낼 일을 벌어는지 모른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묶는다면 어느 곳에서 내 책을 보듬어 줄까. 앞으로 100년 뒤에도 내가 쓴 글을 묶은 책을 고이 둘 곳은 몇 곳이나 있을까. 

 

 

 

2024.12.1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