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6 두드리다 수박이 잘 익었는지 톡톡 두드려요. 퉁퉁 소리라면 껍질이 두껍습니다. 통통 소리라면 잘 익었다는 대꾸입니다. 새로 지낼 시골집을 두드려 봅니다. 흙을 감싼 쇳소리가 납니다. 문을 두드려요. 들어가도 되는지,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 있는지, 가만히 여쭈어요. 문틀을 망치로 두드려요. 못을 박아 갈대발을 얹어요. 낡고 벗겨진 거울을 살살 두드려요. 조각조각 내어 종이자루에 담아서 치워요. 잇고 싶어서 두드립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라는 옛말이 궁금했어요. 단단한 돌로 놓았다지만 참말로 든든한지 천천히 밟아 봅니다. 그런데 밭둑에서 미나리를 뜯으려고 하다가 한발이 진흙에 푹 빠집니다. 처음부터 도랑에 들어갔으면 안 놀랐을 텐데 싶더군요. 두드려 본다는 뜻은 미리 살핀다는 얘기일 테지요. 모르니까 물어 물어 갑니다. 마음을 열고 싶어 두드립니다. 아직 모르는 하루를 종이에 사각사각 적습니다. 2024. 5. 7.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85. 흰웃옷 속에 받치는 흰빛인 웃옷이라면 ‘흰 + 웃옷’처럼 엮으면 어울린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흰웃옷을 가리키는 말을 일본에서 받아들인 일본영어인 ‘와이셔츠’를 고지식하게 쓰는데, 영어조차 아니고 우리 삶하고도 동떨어진 엉뚱한 말씨는 얼른 걷어내야지 싶다. ‘셔쓰’냐 ‘셔츠’로 다툴 까닭이 없다. ‘웃옷·윗도리’라 하면 되고, ‘적삼·저고리’ 같은 우리말이 버젓이 있다. 흰웃옷(희다 + ㄴ + 웃 + 옷) : 속에 받치는 흰빛인 웃옷으로 깃이 있고 소매가 있으며, 깃에는 댕기를 맬 수 있다. 하늬녘 차림이다. (= 흰윗도리·흰적삼·흰저고리·하얀웃옷·하얀윗도리·하얀적삼·하얀저고리·저고리·적삼·윗옷·윗도리·위. ←셔츠shirt/샤쓰シャツ, 와이셔츠ワイシャツ·Yシャツ/white shirt·dress shirt/와이샤쓰) 86. 다리꽃 흔히 ‘장애인 이동권’을 말하는데, 그냥 ‘다리꽃’을 말해야 알맞다고 느낀다. ‘어린이 다리꽃’이며 ‘아기 다릿날개’를 펼 적에는 누구나 홀가분하면서 즐겁고 느긋하게 어디이든 오갈 만하다. 아기는 어버이가 안거나 업거나 아기수레에 태워야 길을 다닐 수 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내가 안 쓰는 말 62 초록 풀은 온누리를 푸르게 물들이고 뭇누리를 가만히 품어주고 한누리를 푸지게 북돋운다 풀잎은 다 다른 잎빛에 잎새로 바람을 불러들여 돌보고 이슬을 송글송글 맺는다 풀꽃은 풀벌레가 노래하는 곳 벌나비가 쉬어가는 집 씨앗에 낟알이 영글지 풀꽃나무는 푸릇푸릇 우거지며 숲 해를 머금고 비를 받아 누구나 살풋 깃드는 빛 ㅅㄴㄹ 풀잎은 어떤 빛인가요? 나뭇잎은 어떤 빛깔이지요? 풀이기에 ‘풀빛’입니다만, 적잖은 분들은 그만 풀을 풀빛이라 안 하고 ‘초록’이나 ‘녹색’으로 가리킵니다. 중국 한자말이라는 ‘초록(草綠)’은 “1.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 또는 그런 색의 물감 = 초록색 2. 파랑과 노랑의 중간 빛 = 초록빛”을 뜻한다고 합니다. 일본 한자말이라는 ‘녹색(綠色)’은 “= 초록색”으로 풀이해요. 우리한테는 ‘풀빛·푸름’이라는 우리말이 있으니, 이 말씨를 알뜰살뜰 쓸 수 있으면 됩니다. 푸르기에 풀이요, 푸지게 자라면서 푸른숨을 베풀 뿐 아니라, 푸른밥(나물밥·풀밥)을 베풀기에 풀입니다. 풀을 머금으면 우리 몸에 있던 찌꺼기를 풀어줍니다. 풀은 푸르게 일렁이는 바람을 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내가 안 쓰는 말 39 포기 풀 한 포기는 숲에서도 들에서도 길에서도 마당서도 골목서도 서울서도 뿌리내리고 꽃피운다 매캐한 서울에 풀씨 앉으면 그만두고 싶거나 손들고 싶거나 죽고 싶을 수 있어 숱한 풀꽃나무는 고된 나머지 서울살이나 그늘살이를 끝내고 흙으로 돌아가거나 깊이 잠들었겠지 풀 한 포기는 포근한 흙과 해와 별과 푸근한 바람과 비와 너와 우리 품을 그리며 싹튼다 ㅅㄴㄹ 우리말 ‘포기’는 풀꽃을 세는 이름입니다. 한자말 ‘포기(抛棄)’는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2. 자기의 권리나 자격, 물건 따위를 내던져 버림”을 가리킵니다. 시골에서 살거나 풀꽃나무를 곁에 두는 사람이라면, ‘포기’라는 소리를 들을 적에 “풀 한 포기”나 “배추 한 포기”를 떠올립니다. 숲을 등지거나 서울에서만 맴돌 적에는 ‘포기’란 소리를 으레 한자말 ‘抛棄’,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그만두다·그치다·끝내다·버리다·떠나다·멈추다’를 뜻하는 낱말을 떠올릴 만합니다. 서울은 풀씨 한 톨이 깃들 조그마한 터도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부릉부릉 매캐하고 빽빽하지요. 서울에서 흙이나 모래 한 줌을 만지기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우리말 25 뽑는다 큰딸은 짝을 두지 않습니다. 애 아빠는 애가 탄답니다. 큰딸은 저희 집이 있고, 대학교도 잘 마쳤고, 일터도 알뜰한데, 애 아빠는 꼭 짝이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큰딸이 어느 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 저절로 짝이 생기겠지요. 굳이 짝을 두지 않고서 호젓하게 살아가는 길을 나아갈 수 있고요. 곰곰이 보면, 우리 큰딸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르고 솎고 뽑아서 하루를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가야 하지 않아요. 남들이 저 사람이 좋다고 여기니까 저 사람을 좋아해야 하지 않아요. 나라일꾼을 뽑을 적에도 마찬가지예요. 둘레에 부는 바람이 아닌, 내가 바라는 길을 살피면서 알맞게 한 사람을 뽑아서 표를 찍으면 됩니다. 옳거나 그르다고 판가름할 일이 아닙니다. 나도 애 아빠도 큰딸도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알뜰살뜰 가려서 걸어가면 돼요. 억지로 뽑으면 늘 아픕니다. 2024.04.2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88 즐거운 일 《이거 그리고 죽어 1》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4.23 지난달 시골에 머물 때 몇 권 들고 간 책 가운데 《이거 그리고 죽어 1》는 쉽게 읽었다. 만화라서 쉽게 읽었을까.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면서 짬이 없거나 지칠 적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모아서 읽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작문’ 시간이 참 따분했다. 그렇다고 그때에 만화를 읽지도 않았다. 《이거 그리고 죽어 1》를 보면, 담임 교사가 아이한테 “만화 같은 건 그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요!(22쪽)” 하고 말한다. 아마 나는 고등학교 때에 이렇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때 어른들도 만화는 삶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테고.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달랐다. 막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읽고 또 읽고 외울 만큼 읽고 혼자 까르르 웃었다. 막내는 만화를 읽으면서 누나가 배우는 눈높이를 조금씩 알아갔다. 그래서 “만화는 거짓이 아니다(24쪽)” 하고 나오는 말에 고개를 끄떡끄떡한다. 가만히 보면 이 만화책은 ‘만화’를 말하는 줄거리인데, ‘만화’를 ‘시’나 ‘글’로 바꾸어서 읽을 만하다. 사람들은, 또 이 나라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4 짐 꽃을 삽니다. 씨앗을 싹틔운 금낭화 한 그릇이 천 원. 다섯 그릇 그러니까 열 포기입니다. 집밖에 심어야 잘 자란다고 합니다. 값을 치르던 짝은 “이런 걸 왜 사는지 모르겠다.” 합니다. 이러고서는 “시골 올 적에 골목에다 심어라.” 해요. 마루에 모아둔 짐에서 반을 오늘 시골로 옮깁니다. 가게를 꾸릴 적에 쓰던 헌 살림 몇 상자입니다. 시골에서 알뜰히 쓸 짐입니다. 두 이레 뒤에 병아리가 옵니다. 부엌을 고치고 지붕을 고칠 일꾼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싣고 갑니다. 살림을 반으로 쪼갠 듯해요. 뒷간을 새로 들이고 하나 떼줍니다. 티브이 컴퓨터 자전거를 빼둡니다. 혼살림이지만 내 옷과 책만 보태면 한살림이 되어요. 삶을 누리는데 아쉽지 않을 짐입니다. 한 달 일하고 한 달 쉬는 놀이터로 쉼터로 쓸 짐입니다. 내 몸 하나 내 입이 참 큰 짐입니다. 몸을 다스릴 짐뿐입니다. 먹고자는 집이 짐입니다. 짐이 내 몫으로 따라가서 마음이 놓입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023 어질어질 마루가 어지럽습니다. 시골에 가는 짝꿍 짐을 챙겨요. 세간살이를 꺼냅니다. 하루를 묵든 이틀을 묵든 한달살이를 하든,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솥이 있어야 밥을 먹고, 비누가 있어야 씻고, 이불이 있어야 따뜻하게 자요. 혼살림을 하는 아들 짐꾸러미 같습니다. 짐이 나가면 반질반질하게 닦고 말끔히 할 생각에 어지러워도 꾹 참아요. 작은딸네가 주는 손잡이 달린 틀에 커피가루를 한 숟가락 꾹꾹 눌러 담고, 단추를 눌러 뽑습니다. 한 모금 마십니다. 이런! 처음으로 뽑아먹는 쓴맛에 속이 울렁울렁해요. 짙은 냄새는 어질어질해요. 며칠 앞서는 목이 아파 어깨에 주사를 맞고, 엉덩이에도 두 대 맞고, 약을 먹었어요. 버섯을 먹고 간질간질해서 두드러기약도 먹었어요. 자동차를 세우다가 약기운 탓에 길턱에 바퀴가 꼬꾸라지기도 했어요. 지게차를 불러 건졌어요. 물을 더 붓고 마십니다. 눈을 감습니다. 어지러움을 재웁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2 개다 내 몸에 물이 넘칩니다. 콧물로 흘러나와요. 흥하고 코를 풉니다. 코가 시원하게 뚫립니다. 구름이 무거워 웁니다. 작은 물방울로 잎을 적시고 바닷소리를 온땅과 풀잎이 들어요. 하늘을 씻어요. 숲을 씻고 바람을 씻어요. 비스듬히 또는 곧게 내린 빗줄기가 빗자루로 되어 골짜기를 쓸고, 내 눈빛에 스며 핏줄기를 씻어냅니다. 하늘이 눈을 뜹니다. 하늘이 비를 걷고 구름을 걷습니다. 목련이 활짝 펼친 잎으로 하늘을 뽀드득 닦아요. 축축한 흙이 마르고, 마음에 머물던 먹구름이 떠납니다. 노랗게 터트린 개나리 산수유를 만나니, 구겨진 마음을 펴요. 복사꽃 꽃사과 벚꽃이 하늘에서 방긋방긋 웃어요. 하늘이 실눈을 떠요. 흐린 하늘이 드디어 물러갑니다. 물과 바람이 자리를 바꾸어요. 내가 쏟아낸 물은 어디로 갔나요. 내 물이 품던 생각은 또 어디로 갔나요. 어제 찌뿌둥은 또 어디로 갔나요. 갠 하늘과 햇살이 빛납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81. 철바보 어릴 적 어머니가 문득 읊은 ‘철부지’란 낱말이 어려워 “어머니, 철부지가 뭐예요?” 하고 여쭈었더니 “철부지? 어려운 말인가? 철을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야. 철딱서니없다는 뜻이지.” 하고 부드러이 알려주었다. 우리말로 “모르는 사람 = 바보”이다. 그러면 ‘철바보’처럼 처음부터 쉽게 이름을 붙이면 어린이도 어른도 다들 쉽게 알아차리고 이야기를 펼 만하리라. 철바보 (철 + 바보) : 철을 모르거나 잊거나 살피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 철이 들지 않은 사람. (= 코흘리개. ← 철부지-不知, 삼척동자, 무지無知, 무지몽매, 지각知覺 없다, 불효, 불효막심, 불효자, 불효녀, 불효자식) 82. 큰가작 어린이 눈으로 바라보는 길이란, ‘눈높이 낮추기’가 아닌 ‘눈높이 넓히기’이다. 몇몇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말을 치우고서, 누구나 알아보면서 삶을 북돋우고 빛내어 가꾸는 길을 열려는 마음이라면 ‘어린이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말을 편다’고 느낀다. 밥집에 간 아이들이 차림판에 적힌 ‘대중소’란 글씨를 보며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둘레 어른은 으레 “큰 것하고 중간 것하고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