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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91 숲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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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91 숲내음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최종규
스토리닷
2024.11.9.


책이름이 긴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다시 읽는다. 도시에 있는 책집에 들꽃내음이 있을까? 무슨 소리인가 갸웃거리며 읽다 보니, ‘들꽃내음’은 글쓴이가 일본 도쿄 책거리에 갔을 적에 겪은 일이다. 북적이는 곳도 아니고 큰길도 아닌 마을 안쪽, 골목이 이은 작은집이 잇달은 곳에 핀 들꽃을 보았고, 이 들꽃 곁에 서서 꽃내음을 맡고서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조그마한 책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바둑 전문책집이었고, 이 바둑 전문책집에서 뜻밖에도 우리나라 책을 여럿 만나서 놀랐다고 한다.

 

글쓴이는 ‘1벌 읽을 책’이 아닌 ‘적어도 100벌 되읽을 책’을 고른다고 한다. 아니, ‘100벌’을 넘어서 ‘300벌이나 1000벌 되읽을 책’이기를 바라면서 고른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해도 같은 책을 100벌이나 되읽을 수 있을까? 우리 집 셋째 아이는 만화책을 좋아해서 만화책에 나온 말을 외우면서 보고 또 보았는데, 스무 벌쯤 되읽지 않았나 싶다.

 

글쓴이가 출판사에서 일하며 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아이가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한 그림책’을 가지고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아주 사랑하는 그림책을 다시 사주고 또 사주었다는데, 마침 국제도서전을 한다고 해서 다시 새 그림책을 사주려고 나왔다고 한다. 그림책이 너덜너덜하도록 되읽는데, 또 사주고 다시 사주었다면, 그 아이는 1000벌을 훌쩍 넘어 3000벌도 더 읽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 곁에서 어머니도 아이 못지않게 같은 책을 자꾸자꾸 되읽으면서 마음으로 깊이 스미는 이야기가 있을 만하다.

 

어제는 예천에 다녀왔는데, 아는 언니하고 간 어느 모임자리가 꽤 시큰둥했다. 둥근 책상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수다를 나누는데, 나는 밖으로 살포시 빠져나왔다. 혼자 조용히 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읽으면, 글쓴이도 따분한 모임자리에 어쩔 수 없이 껴야 하면,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빠져나와서 책방에서 한 시간쯤 책을 읽고서 다시 슬그머니 자리에 낀다고 적는다. 그래서 나는 늘 책을 챙겨서 다닌다. 빠져나올 수 있으면 빠져나오지만, 못 빠져나온다 싶으면 얌전히 말없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글쓴이는 한창 책사랑으로 살다가 군대에 들어가느라 여섯 달 동안 책도 볼펜도 만질 수 없었다고 한다. 군대에서 여섯 달 만에 처음 책과 볼펜을 잡고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예전 일을 떠올린다. 나는 일기쓰기를 오래오래 이어오는데, 가게일을 한다며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그만 다섯 해나 일기쓰기를 못 한 적이 있다. 이동안 괴로워서 발버둥을 쳤다. 이제는 예전처럼 바쁘고 힘들게 매이지 않기에, 도서관에도 책집에도 갈 수 있고, 숨을 돌릴 수 있다.

 

내가 스스로 알아보려는 눈이 없다면 누가 가르쳐도 알 턱이 없다. 내가 스스로 찾아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누가 알려주어도 그저 못 알아 들이거나 못 알아듣는다. (44쪽)

 

나는 무엇을 알아보려는 삶일까. 나는 무엇을 읽고서 배우려는 하루일까. 내가 나한테 붙인 이름인 ‘숲하루’처럼, 하루하루 숲을 배우고 알아보려는 길인가. 아직 숲을 하루하루 곁에 두지 않고서 잊는 길이지는 않은가.

 

목숨이 목숨을 낳는다. 목숨이 목숨을 읽는다. 목숨이 목숨을 아낀다. 목숨이 목숨으로 살아간다. (162쪽)

 

나무한테서 받은 종이에 이야기를 얹은 책을 읽고 쓴다. (246쪽)

 

글쓴이는 두 아이를 손수 돌보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시골에서 살림을 짓는 글쓴이 곁에서 아이들은 시골빛을 머금고 살림빛을 나란히 배우겠지. 내가 다가가는 곳에 들꽃내음이 있는지 돌아본다. 내가 찾아가는 작은책집에서 어떤 책을 손에 쥐는지 돌아본다. 숲내음을 맡으면서, 숲내음을 글로 쓰면서, 숲내음으로 살아가려고 붙인 ‘숲하루’라는 내 이름을 사랑하는 길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2024.12.1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