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9] 깨꽃 장골에 사는 숙이네를 지나 등성이 따라 올라가면 감나무가 있는 깨밭이 있었다. 깨가 한창 자라 꽃을 피우고 마디마다 깨집이 열릴 적에 손가락 굵기인 푸른 깨벌레가 꼬물꼬물 참깨잎을 갉아먹었다. 열두세 살 적에 동무들과 깨밭에 모였다. 두 손 모으고 눈을 감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기도했다. 교회에 나가니 밥을 먹을 적에도 어디에 가면 기도 먼저 하라고 배웠다. 어머니 몰래 교회를 나갔다. 어머니는 교회 다니는 사람을 예수쟁이라 부르며 싫어했다. 나는 교회에 나가고 싶은데 어머니는 말린다. 집에서는 기도하지 않고 동무하고 놀 적에만 기도했다. 밭에서 모여 기도하는데 서로 입맞춤이라도 한 듯이 “하느님 고맙습니다.” 같은 말만 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기도를 마치고 갖고 온 공책을 펼쳤다. 나는 동무들 앞에서 새 공책 첫 쪽에 빽빽하게 적은 글을 읽었다. 기도할 적처럼 돌아가면서 읽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쓴 글은 소설인지 모른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길게 썼다. 학교에서 나온 책 말고는 책 한 자락 읽지 않은 어린 날이다. 책은 우리한테 너무 멀리 있었다. 얼마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8] 왕고들빼기 깊은 산에서 왕고들빼기를 만난다. 무릎까지 자랐다. 잎이 넓고 찢은 듯 자라서 축 늘어지고 크다. 둘레에 자라는 풀은 어린 날 우리 소가 잘 먹은 풀이고 왕고들빼기도 군데군데 자라는데 토끼가 잘 먹었다. 커다란 바위 앞이라 큰 나무가 없고 풀이 고만고만하게 자라 풀밭을 이룬다. 소먹이로 베어 오는 꼴에는 왕고들빼기가 섞였다. 나는 몇 골라내기도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논둑이나 길가에서 한 줌 뜯어 토끼를 보러갔다. 토끼는 샘터 앞집에서 키운다. 대문이 없고 오른 담벼락에 나무로 지은 이삼층 토끼집이 있었다. 풀을 넣어 주고 칸막이를 내려 잠그고 토끼가 풀을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하얀 토끼 까만 토끼가 입을 오물거리며 풀을 뜯어먹는 입이 귀여웠다. 쫑긋하는 긴 귀도 깜찍하다. 가끔 문을 열고 토끼 귀를 잡아 들어 보았다. 아버지가 겨울에 잡아 온 굳은 토끼는 본 적은 있어도 살아 움직이는 토끼를 쓰다듬으면 털이 곱고 따뜻하고 말랑했다. 만지고 놀고 바라보느라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서서 노느라 해 떨어지는 줄도 모른다. 집에 가면 어머니 아버지는 들일을 나가고 우리는 소꼴은커녕 앞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7 채송화 채송화 세 뿌리를 얻었다. 줄기가 부러져도 뿌리가 남아서 곱게 옮겨심는다. 이 아이가 살아날까 싶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몸을 곧추세운다. 어린 날 채송화는 코스모스가 올라올 적에 길가에 흔하게 피었다. 열두 살 적에 배움터에서 마을마다 꽃밭 가꾸기를 시켰다. 우리 마을에는 꽃밭을 꾸밀 터가 없어 마을 어귀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비탈진 골에 꽃밭을 꾸미기로 했다. 육학년 언니오빠가 풀을 베고 호미로 풀을 매고 조그맣게 꽃밭을 꾸몄다. 일요일마다 마을지기가 노래를 틀었다. 어른은 마을을 쓸고 치운다면, 아이는 꽃삽을 갖고서 꽃밭을 가꾸었다. 어른은 한 집에 한 사람은 꼭 나와 마을을 치워야 하고, 안 나오면 돈을 물렸다. 봉숭아 분꽃 접시꽃을 심었던가. 배움터에서는 마을을 자전거로 돌아보면서 꽃밭을 살핀다고 했다. 비가 오면 개울에 물이 불어 꽃밭에 가지 못한다. 꽃을 심어 놓은 자리로 둘레 나무하고 풀이 뻗고, 몇 날쯤 꽃밭을 돌본다고 해도 아이들은 으레 시들하기 마련, 꽃밭이 풀밭이 되었다. 해가 들지 않는 자리라 꽃이 자라기 힘들다. 채송화는 마을에서 흔하게 보았다. 우리 집 마당에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6] 쪽제비싸리나무 아까시나무하고 많이 닮아 헷갈리는 나무이다. 아까시나무는 빳빳하고 하얀꽃이 송사리로 피어 축 처진다. 쪽제비싸리나무는 가시가 없다. 대가 억센 풀 같고 꽃이 하늘로 곧게 자라고 줄기만큼 길쭉하다. 아까시나무와 같이 가위바위보 하면서 손가락으로 잎사귀 따먹기하고 가지를 머리에 감아 볶으며 놀았다. 우리는 쪽제비싸리나무를 꺾어 손톱에 발랐다. 내 손톱은 넓적하고 끝이 잘 부러진다. 어릴 적에는 손톱깎이가 없어 칼이나 이로 물어뜯으며 깎았다. 손톱 밑살이 드러나면 아프다. 손톱 둘레에 까시래기가 일어나 따끔하다. 손톱 뿌리에 하얀 반달을 덮은 살을 칼이나 연필로 밀어넣고 칼로 자르다가 피도 나고 까시래기가 더 일어났다. 어른들은 손톱에 까시래기가 일어나면 미움받는다는 말을 했다. 가지를 꺾어 나무물을 손톱에 바르면 반짝거리고 손톱이 힘이 있어 덜 부러지고 손톱이 오목하다. 손톱 빛깔이 맑게 그대로 보인다. 내 손톱은 빠졌다가 다시 나기도 하고, 부채꼴로 퍼지기도 했지만 마알간 빛이 돌아 내 눈에는 고왔다. 어린 날에는 손톱에 덧발라도 답답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손톱에 뭘 바르면 손톱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5] 멍석 산에 멍석 넷이 돌돌 말려 우두커니 있다. 계단 끝에서 숲 쪽으로 멍석을 펴려는 듯하다. 그쪽 길이 질다 싶더니 깐다. 짚이 흙빛하고 비슷해서 티가 나지 않고 이젠 진흙을 안 밟을 듯하다. 어린 날에 알곡이 많이 나는 통일벼를 심은 뒤로 쌀밥을 먹는다. 짚으로 땔감을 하고 삼태기를 짜서 소죽 끓일 적에 담아 옮긴다. 할아버지는 짚으로 짠 삼태기가 무거워 소죽 끓일 적에는 들지 못하시니, 내가 거든다. 멍석은 새끼를 여러 가닥으로 꼬고 틈을 두고 줄을 한 가닥씩 위로 아래로 지나면서 엮는다. 멍석은 여름에 마당에 펼쳐 놓고 나락을 널거나 지게에 지고 밭에서 낟알을 털 적에도 깐다. 뻣뻣한 멍석에 널어 둔 벼를 거둘 적에는 쇠바가지로 톡톡 치면서 틈에 낀 알곡을 털어낸다. 집안에 큰일을 치를 적에 앉아 밥을 먹거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 누워 잠도 잤다. 설이나 한가위에는 윷도 던진다. 안 쓸 적에는 돌돌 말아 마굿간에 얹거나 장대에 올린다. 천막이 들어온 뒤로 낟알은 가볍고 질기면서 매끈한 천막을 깔아서 턴다. 마루가 들어온 뒤로 멍석은 멀어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대문 앞에 두고 멍석으로 덮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4] 두부 어릴 적에 어머니는 겨울이면 두부를 쑤었다. 우리 논밭이 없을 때라 콩을 사서 하룻밤 물에 매 불렸다. 콩이 잘 불어야 두부가 늘어난다. 고무대야에 챗다리를 걸치고 무거운 맷돌을 올린다. 어머니가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맷돌을 힘껏 돌리면 나는 곁에서 불린 콩을 한 숟가락씩 떠넣는다. 콩이 다 내려가면 또 한 숟가락 붓는다. 맷돌 가운데 구멍에 물과 섞여 들어간 콩이 두 맷돌이 돌아가는 틈에 갈려 하얀 물이 여기저기 흘러내린다. 챗다리 밑에 둔 대야에 떨어진다. 콩을 다 갈면 가마솥에 붓고 불을 지핀다. 끓으면 광목 자루에 퍼담아 챗다리에 얹고 나무판을 꾹 누르면서 물을 짠다. 물만 따로 모아 간수를 넣으면 허옇게 굳으면서 두부가 된다. 천에 싸서 뚜껑을 덮고 무거운 돌을 얹어 두었다가 칼로 자른다. 물을 짜낸 찌꺼기를 비지를 해서 먹고 소도 준다. 소죽 끓일 적마다 한 바가지씩 넣는다. 티브이가 없어 마을 어른들이 도가에 모여 화투를 치고 두부내기를 한다. 어머니가 쑨 두부를 마을에서 팔고 이웃마을에 내다 판다. 어머니는 두부를 머리에 이고 거친 흙길을 걸어서 아랫마을 신리 도가와 재 너머 윗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5] 노간주나무 소나무 곁에 노간주나무가 가지를 펼쳤다. 나무가 가늘고 잎도 여리다. 나무가 곧고 굵다. 아버지는 이 나무를 잘라 도끼 손잡이로 끼우고 소코뚜레를 삼았다. 껍질을 벗기고 아궁이 불을 쬐며 나무를 구부려 코뚜레 꼴을 잡았다. 하루는 소가 새끼를 낳는다. 마당에 모아 둔 거름을 둔 자리에 아버지가 볏짚을 깔아 준다. 나는 소 옆에서 구경하는데 어머니가 보지 못하게 했다. 방에 들어가 문을 빼꼼히 열고 구경했다. 소 앞발을 보았다. 소는 아프다고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 소가 숨을 고르고 힘을 주자 새끼가 뚝 떨어졌다. 어미는 새끼 몸을 혀로 햝고 새끼는 이내 일어서려고 비틀거린다. 온몸을 다 닦으면 새끼가 일어나서 어미 젖을 먹는다. 새끼 소는 어리지만 크다. 어린 송아지가 조금 자라 코를 뚫을 때가 되었다. 미리 꼴을 잡아 묶어둔 코뚜레를 코에 끼우려고 송아지를 잡고 애쓴다. 나무는 송아지와 지내고 싶었을까. 곧게 자라면서 부드럽게 구부러지기에 여러 곳에 썼겠지. 바람이 그렇게 노간주나무를 키웠을지도 몰라. 노간주나무는 소하고 동무가 되는 나무. 노간주나무는 도끼이며 여러 연장을 든든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4] 잔디 잔디에 대가 쑥 올라와 씨앗이 영근다. 중학교 다닐 적이 떠오른다.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잔디 훑기를 해오라고 시켰다. 작은 그릇을 하나 들고 장골 뒷산에 오른다. 묏자리에 잔디가 많다. 대를 손으로 꼭 잡고 당기면 두 손가락 사이에 딱 씨앗이 붙는다. 그릇에 손가락을 비비면 잔디가 떨어진다. 손에 묻힌 씨앗을 담다가 흘린다. 그렇게 흘린 씨앗이 무덤터에 다시 뿌리를 내렸지 싶다. 작은 씨앗을 그릇에 채우려면 쪼그려 앉아 오래 훑어야 한다. 갖고 가야 할 몫을 채우려면 볕이 뜨겁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잔디씨 훑는 일은 그렇게 싫지가 않았다. 이 숙제가 어렵지 않으니깐 좋았다. 내가 훑어 온 잔디씨를 글월자루(편지봉투)에 담아서 낸다. 그러면 부피를 채웠는지 무게를 단다. 잔디는 배움터에서 시켰기 때문에 훑기도 했지만 팔려고 훑기도 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많이 훑었다. 재 너머 덥니미에 소풀을 먹이면서 잔디씨를 훑는다. 온집안이 훑어 한 되가 모이면 어머니는 저자에 가서 팔았다. 우리는 잔디씨를 온집안이 훑어서 파는데 배움터에서는 왜 거저로 잔디씨를 거두는지 못마땅했다. 너른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3] 찔레나무 찔레는 꺾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재 밑이다. 산 따라 도랑이 길 따라 이어졌다. 도랑에 다리를 걸치고 비탈진 산으로 몇 걸음 오른다. 흙을 밟으면 땅이 비스듬하고 흙이 푸석해서 발이 흙하고 같이 미끄러진다. 어떤 날은 주르르 몸이 미끄러져 엉덩이를 찍는다. 찔레는 덩굴이 커서 잎이 나무를 가린다. 덩굴줄기에 삐죽 올라온 새싹을 먹는다. 가시덤불에 있는 싹도 팔을 뻗어 꺾는다. 가시를 살살 비껴서 꺾어도 손등이 긁힌다. 싹이 굵고 보드랍고 풀 맛이 상큼하다. 길쭉한 찔레를 앞니로 똑똑 꺾어 씹으면서 아껴 먹는다. 새싹 가운데 살이 통통하고 굵은 찔레가 맛이 좋다. 어떤 찔레는 가늘고 가시가 돋아 질겨서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다. 찔레 몇 가닥 꺾어 먹으면 목마름도 사라진다. 배도 무척 부르다. 겨울이면 흰꽃이 진 자리에 빨간 열매가 달린다. 우리는 열매는 먹지 않고 가끔 꺾어서 들고 논다. 아버지는 눈 내린 겨울에 이 열매에 무슨 약을 묻히고 산에 덫을 놓고 토기를 잡아 온다. 아버지는 “싸이나 놓는다”고 했다. 찌르기 가시 때문에 찔레라는 이름일 텐데, 우리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2] 솔잎 유월이 되니 솔잎이 쑥쑥 올라왔다. 손가락 길이로 길쭉하고 새잎은 한 뼘씩 하늘로 곧게 자란다. 솔잎이 삐죽삐죽 덜 나올 적이 되면 새잎에 가루가 잔뜩 달라붙었다. 우리는 나무를 흔들어 노란가루를 털어냈다. 흩어지는 가루는 눈먼지처럼 펄펄 난다. 가루를 터는 재미로 소나무를 무척이나 뒤흔들었다. 가루가 날아가면 새잎이 드러난다. 솔잎이 푸르고 빳빳하게 힘이 차면 한가위에 솔잎을 따다 송편 사이에 넣고 찐다. 솔잎 한 가지를 꺾어 하나하나 잎을 따서 실로 묶어 항로에도 꽂는다. 풋풋한 솔방울이 자라 겨울에 마르고 입을 쩍 벌리면 나무에서 떨어지고 우리는 주워서 불쏘시개로 썼다. 솔잎이 겨우살이를 하면서 잎을 떨구면 우리는 까꾸리로 모아서 불쏘시개 땔감으로 태운다. 소나무 껍질과 속살을 벗겨 먹는다. 금성산에 와 보니 소나무는 힘들게 자란다. 곧게 자라지 못한다. 그렇지만 잎이 보드랍고 솔방울도 작고 나무도 작다. 하나같이 왜 이리도 작을까 싶어 살펴본다. 돌 틈에 뿌리를 겨우 내리고 밑둥은 바위에 걸터앉은 꼴을 하며 둘레 나무가 거의 휘면서 자란다. 바위틈에 살아나려고 몸집을 키우지 않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