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4] 두부
어릴 적에 어머니는 겨울이면 두부를 쑤었다. 우리 논밭이 없을 때라 콩을 사서 하룻밤 물에 매 불렸다. 콩이 잘 불어야 두부가 늘어난다. 고무대야에 챗다리를 걸치고 무거운 맷돌을 올린다. 어머니가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맷돌을 힘껏 돌리면 나는 곁에서 불린 콩을 한 숟가락씩 떠넣는다. 콩이 다 내려가면 또 한 숟가락 붓는다. 맷돌 가운데 구멍에 물과 섞여 들어간 콩이 두 맷돌이 돌아가는 틈에 갈려 하얀 물이 여기저기 흘러내린다. 챗다리 밑에 둔 대야에 떨어진다. 콩을 다 갈면 가마솥에 붓고 불을 지핀다. 끓으면 광목 자루에 퍼담아 챗다리에 얹고 나무판을 꾹 누르면서 물을 짠다. 물만 따로 모아 간수를 넣으면 허옇게 굳으면서 두부가 된다. 천에 싸서 뚜껑을 덮고 무거운 돌을 얹어 두었다가 칼로 자른다. 물을 짜낸 찌꺼기를 비지를 해서 먹고 소도 준다. 소죽 끓일 적마다 한 바가지씩 넣는다. 티브이가 없어 마을 어른들이 도가에 모여 화투를 치고 두부내기를 한다. 어머니가 쑨 두부를 마을에서 팔고 이웃마을에 내다 판다. 어머니는 두부를 머리에 이고 거친 흙길을 걸어서 아랫마을 신리 도가와 재 너머 윗마을에 팔러 다녔다. 윗마을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로 비렁길이었다. 아버지는 큰집에 여덟 해나 머슴 일을 하느라 어머니를 돕지 못했다. 두부를 하려고 땔감을 산에 가서 주워 오거나 짚을 땐다. 가마솥을 걸어둔 부뚜막에 햇볕이 드는 날에는 겨울이 봄날 같았다. 바람 없는 햇볕으로 춥지 않아서 두부 쑤는 날이 좋았다. 나는 놀면서 콩을 붓고 엄마는 온힘을 모아 두부를 쑤느라 겨울이 여름철보다 바쁘다. 두부를 무거운 판으로 눌러도 바람이 들어간 자리는 구멍이 생겨 울퉁불퉁하다. 비지를 물리도록 먹어서 커서는 죽어도 안 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구는 비지를 곁밥(반찬)으로 여기지 않지만 나는 두부보다 비지찌개가 맛있다. 두부를 보면 묵하고 감홍시를 주워다 팔 생각을 한 슬기로운 어머니를 우러러본다.
2021. 07. 0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