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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발걸음 05] 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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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5] 멍석

 

  산에 멍석 넷이 돌돌 말려 우두커니 있다. 계단 끝에서 숲 쪽으로 멍석을 펴려는 듯하다. 그쪽 길이 질다 싶더니 깐다. 짚이 흙빛하고 비슷해서 티가 나지 않고 이젠 진흙을 안 밟을 듯하다. 어린 날에 알곡이 많이 나는 통일벼를 심은 뒤로 쌀밥을 먹는다. 짚으로 땔감을 하고 삼태기를 짜서 소죽 끓일 적에 담아 옮긴다. 할아버지는 짚으로 짠 삼태기가 무거워 소죽 끓일 적에는 들지 못하시니, 내가 거든다. 멍석은 새끼를 여러 가닥으로 꼬고 틈을 두고 줄을 한 가닥씩 위로 아래로 지나면서 엮는다. 멍석은 여름에 마당에 펼쳐 놓고 나락을 널거나 지게에 지고 밭에서 낟알을 털 적에도 깐다. 뻣뻣한 멍석에 널어 둔 벼를 거둘 적에는 쇠바가지로 톡톡 치면서 틈에 낀 알곡을 털어낸다. 집안에 큰일을 치를 적에 앉아 밥을 먹거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 누워 잠도 잤다. 설이나 한가위에는 윷도 던진다. 안 쓸 적에는 돌돌 말아 마굿간에 얹거나 장대에 올린다. 천막이 들어온 뒤로 낟알은 가볍고 질기면서 매끈한 천막을 깔아서 턴다. 마루가 들어온 뒤로 멍석은 멀어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대문 앞에 두고 멍석으로 덮었다. 겨울이면 아버지는 짚으로 한 해 쓸 연장을 장만한다고 새끼줄을 꼰다. 끝을 묶은 뒤 두 발로 괴고 두 손으로 비빈다. 비비는 팔은 올라가고 팔이 안 닿으면 엉덩이를 들고 짚 꼬리를 당긴다. 짚을 비비는 소리는 아버지가 비손(기도)하는 소리 같다. 아버지는 손바닥이 마르도록 무엇을 빌었을까. 삶이 메말라 침이라 퉤퉤 뱉으며 꼰 걸까. 꺼끌꺼끌해서 맨살이 할퀴고 부스러기를 내어도 따뜻하게 아이 잘 키웠다고 노래 불렀을까. 볍씨가 알곡이 되고 지푸라기로 자리도 내주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기운을 온몸으로 막아주고서야 몸을 펼까. 돌돌 말려서 붙은 이름일까. 씨앗 하나가 녹고서야 흙한테 돌아갈까.

 

2021. 07. 0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