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8] 왕고들빼기
깊은 산에서 왕고들빼기를 만난다. 무릎까지 자랐다. 잎이 넓고 찢은 듯 자라서 축 늘어지고 크다. 둘레에 자라는 풀은 어린 날 우리 소가 잘 먹은 풀이고 왕고들빼기도 군데군데 자라는데 토끼가 잘 먹었다. 커다란 바위 앞이라 큰 나무가 없고 풀이 고만고만하게 자라 풀밭을 이룬다. 소먹이로 베어 오는 꼴에는 왕고들빼기가 섞였다. 나는 몇 골라내기도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논둑이나 길가에서 한 줌 뜯어 토끼를 보러갔다. 토끼는 샘터 앞집에서 키운다. 대문이 없고 오른 담벼락에 나무로 지은 이삼층 토끼집이 있었다. 풀을 넣어 주고 칸막이를 내려 잠그고 토끼가 풀을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하얀 토끼 까만 토끼가 입을 오물거리며 풀을 뜯어먹는 입이 귀여웠다. 쫑긋하는 긴 귀도 깜찍하다. 가끔 문을 열고 토끼 귀를 잡아 들어 보았다. 아버지가 겨울에 잡아 온 굳은 토끼는 본 적은 있어도 살아 움직이는 토끼를 쓰다듬으면 털이 곱고 따뜻하고 말랑했다. 만지고 놀고 바라보느라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서서 노느라 해 떨어지는 줄도 모른다. 집에 가면 어머니 아버지는 들일을 나가고 우리는 소꼴은커녕 앞집 토끼풀만 뜯었다. 토끼풀로 준 고들빼기는 어머니가 삶아서 무치기도 하고 김치도 담근다. 고들빼기는 우리 입에도 쓴데 토끼는 쓴맛이 나는 씀바귀나 고들빼기를 잘 먹네. 꽃반지 꽃시계로 묶어서 손에 차고 놀던 토끼풀보다 고들빼기를 토끼풀로 알았다. 토끼가 어떻게 쓴 풀을 잘 먹을까. 입맛이 없어 먹었을까. 쓴 기운에 잠을 푹 자려고 했을까.
2021. 07. 1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