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7] 엿 어린 날 두메 마을에 장사꾼이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고 얼음과자를 팔러 오고, 당면이나 미역도 판다. 옷보따리를 이고 할머니 장사꾼도 온다. 당면을 사면 할머니가 점을 거저 봐준다. 당면 장사꾼이 돌아가면 엿장수가 들어온다. 가위질 소리가 착착 쇠소리 내며 박자를 맞추고 ‘울릉도 호박엿 사시오, 깨진 그릇도 갖고 오고, 오그라든 냄비도 좋고, 떨어진 고무신도 받고, 마늘도 갖고 오이소.’ 엿장수 아저씨가 빨간 확성기로 길게 노래를 하듯 말한다. 확성기 소리를 들으면 장골 이골 목골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나는 수레에 붙어서서 가위질을 구경했다. 엿을 끊으려고 끌쇠로 어림잡고 가위로 탁탁 치며 엿을 한 줄씩 떼어낸다. 그리고 하얀 가루에 묻힌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동생하고 눈을 마주치고는 둘이서 집으로 뛰어간다. 마늘 걸어둔 가게 밑에 할아버지 몰래 기어들어가서 가장 굵은 마늘을 다섯씩 골라 뺐다. 몸이 힘든 할아버지가 우리가 마늘을 빼가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른다. 둘은 등 뒤에 마늘을 숨기고 할아버지 지팡이에 안 맞으려고 몸을 옆으로 비껴 할아버지 방 앞을 지나 대문으로 빠져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7] 마늘씨 한가위가 지나면 마늘씨를 쪼갠다. 여름에 캐서 가게 장대에 걸어두었다가 가을에 벗긴다. 마늘 꼬투리를 하나하나 딴다. 대가 바싹 말라서 비틀면 마늘대가 똑 부러진다. 안 떨어지면 가위로 자른다. 마늘 한 톨을 잡고 결대로 반을 쪼갠다. 그리고 하나하나 뗀다. 떼어낸 마늘에는 이미 뿌리가 가지런하게 자란다. 쪼갠 마늘을 크기대로 모은다. 허실은 허실대로 따로 담는다. 심을 적에는 굵은 씨앗부터 심고 씨앗이 모자라면 작은 씨앗을 심는다. 아주 작은 씨앗은 생채기가 있기도 해서 우리가 먹는다. 굵기대로 심는 까닭은 마늘을 캘 적에 굵기가 비슷해서 따로 고르지 않아도 된다. 굵은 씨앗과 작은 씨앗을 섞어 심으면 굵은 씨앗 곁에 자라는 작은 씨앗은 잘 크지 못한다. 캘 적에 작은 마늘이 끼면 따로 골라야 한다. 마늘을 걸어 둔 가게 밑에서 마늘씨를 며칠 밤낮으로 까느라 어머니 아버지 손이 까지고 갈라진다. 몇 톨 쪼개지 않아도 마늘물이 닿으면 따갑다. 반창고로 엄지손가락을 감고 또 깠다. 나는 손 아프다고 안 까면 되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손이 부르트도록 깠다. 아버지가 논 손질 끝나면 소로 고랑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6] 마늘 아버지는 마늘을 아주 잘 묶었다. 들쑥날쑥 않고 마늘 뿌리를 반반하게 하고 쉰씩 둘을 묶으며 한 접을 손질한다. 마늘을 묶어 놓으면 나팔꼴로 펼쳐진다. 오일장에 내다 팔 적에는 깔끔하게 손질했다. 우리 마을은 마늘로 널리 알려졌다. 의성 마늘이다. 가음마을이나 읍내는 땅도 넓고 좋은데도 우리 마을 안전푸이 마늘이 으뜸이다. 약장사 아저씨가 서울에 가서 마늘을 팔아 돈을 많이 번 뒤로 전푸이 마늘은 입소문이 퍼진다. 아랫마을은 전푸이, 우리 마을은 안전푸이라 했다. 이웃 마을에 마늘이 안 되어도 우리 마을에는 마늘이 잘 자랐다. 그래서 오래 잘사는 마을로도 알려졌다. 우리 마을 땅이 골짜기인데도 읍내 넓은 땅을 몇 마지기를 살 수 있고 가음마을 땅도 우리 마을보다 쌌다. 못도 없고 물이 적어 땅이 아무리 좋아도 마늘은 우리 마을보다 못하다. 우리 마을 어른들은 “꽁지 없는 소.”라고 부른다. 소는 아니지만, 사람은 꽁지가 없으니 소처럼 일한다는 뜻이다. 마늘이 잘 되는 까닭은 땅이 기름지다. 똥오줌이며 거름을 넣고 풀이나 속새를 듬뿍 넣었다. 부지런히 논밭에 거름을 뿌리지 못하면 논이 기름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5] 단감 우리 마을 감은 씨가 없다. 납작하고 껍질이 얇은 감은 찬감이라 하고 길쭉하고 두꺼운 감은 도감이라 했다. 도감은 붉게 익혀서 먹고 찬감은 곶감으로도 말리기도 하고 삭힌다. 마구간을 가운데 두고 방이 둘인데 하나는 할아버지 방, 또 하나는 고추를 말린다. 켜를 올리고 그물 틀에 익은 고추를 골고루 널어서 연탄불에 며칠을 굽는다. 두 화로가 활활 타니 굴이 아주 뜨겁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혼자이다. 집 뒤 감나무에서 땡감을 서넛을 땄다. 그릇에 물을 담고 굵은 소금을 넣은 뒤 고추 굴 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얼굴에 스치자 따갑다. 매캐한 고추 냄새가 목구멍으로 들어오자 숨도 막혔다.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숨을 멈추고 그릇을 밀어 넣는다. 맨살인 팔이 뜨거워 깊숙이 밀어 넣지 못해 문 앞에 두고 재빨리 문을 닫았다. 이튿날 감이 잘 삭았을까 깨물어 보면 떫다. 다시 하룻밤 더 두고 틈나면 문을 여느라 뜨거운 김만 뺐다. 어머니는 처음에 큰 그릇에 나처럼 담다가 비닐에 싸서 아랫목에 묻는다. 조금 떫어도 단맛이 돈다. 어머니는 이내 먹을 감은 연탄불에 삭히고 아랫목에 묻고 한두 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4] 고욤 고욤나무는 나뭇가지가 높아 어린 우리는 좀처럼 손이 닿지 않는다. 고욤은 겨울이면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새참이다. 열매가 은행알만큼 작은데, 빛깔이 짙으면 더 달다. 작은 열매는 씨로 가득하고, 이 씨는 납작하고 굵다.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오물 빨아들인 다음에 휙 날린다. 말랑하고 빛깔이 검붉으면 하나씩 따먹었다. 가지를 꺾어 겨울날 빈 방에 넣어 두면 고욤도 꽁꽁 얼어 씨가 달라붙은 만해 깨물어 먹는다. 어머니는 가을에 고욤을 낫으로 베지만 단지에 담아 꼭 묶어 둔다. 한참 지나 뚜껑을 열면 쫀득하고 조청같이 달아 한 숟가락씩 떠먹는다. 우리는 겨울에 간식으로 고욤하고 김치하고 배추 뿌리와 고구마를 먹는다. 감처럼 고욤도 많이 먹으면 똥구멍이 막힌다고 했다. 우리 집은 이웃마을 불래에 고욤나무가 있었다.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꺾어서 가지를 붙이면 감이 열렸다. 접을 붙여서 감나무가 많았을까. 큰고욤나무에 작은 열매가 주렁주렁 맺으니 감나무가 되면 고욤 몇 곱이나 커다란 감을 먹겠지. 감나무 가지 하나로 어떻게 고욤나무 감이 열릴까. 한 나무 가운데 밑에는 감이 열리고 위에는 고욤이 열릴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3] 냉이 냉이를 며칠 묵혔더니 새싹이 났다. 무르고 검은 잎과 발갛게 익은 잎을 뗀다. 어린 날에는 냉이에 새싹이 나도록 두지 않았다. 냉이를 캐면 바로 먹었다. 설 쇠고 나면 산비탈 밭에 냉이가 올라왔다. 바가지하고 호미를 들고 목골이나 도빠골 잎새밭에 간다. 우리 밭은 아니지만, 파릇파릇하면 캔다. 우리는 냉이를 ‘날새이’라 하고 달래는 ‘달새이’라고 했다. 이랑에 냉이가 흙에 납작하게 붙어 잎을 펼쳤다. 냉이하고 닮은 풀을 보면 헷갈린다. 냉이는 잎이 더 가늘고 살짝 물들었다. 내가 캔 냉이로 어머니는 된장을 끓이는데, 어머니는 ‘장 찌진다’는 말을 쓴다. 냉이는 된장에 넣고 콩가루에 묻혀 국을 끓이고 삶아서 무침으로 해 먹는다.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는 마을 사람은 떼를 지어 캐러 다닌다.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는 냉이를 일삼아 캐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집보다 고추를 많이 심는다. 봄부터 고추작대기를 다듬는다. 망치 날로 작대기 끝을 돌리면서 뾰족하게 깎는다. 고추가 쓰러지지 않게 흙바닥에 꽂아 고추가 자라면 넘어지지 않게 묶는다. 그래서 새봄에도 바빠 냉이는 오다가다 캔다. 냉이는 겨울 밭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2] 사마귀 고개에서 사마귀를 자주 보았다. 흙빛이 도는 사마귀는 땅바닥에 떨어진 지푸라기와 섞여 우리 눈에 쉽게 띄지 않고 풀빛 사마귀는 쉽게 띈다. 나는 사마귀를 만날 적마다 무서워서 비껴갔다. 사마귀가 가만히 있는데도 싫었다. 사마귀는 느릿하게 갈 듯 말 듯 걷는다. 큰 눈이 튀어나오고 얼굴이 뱀 닮은 세모라서 무서웠다. 앞발은 톱니 칼날 같아 손을 꽉 깨물 듯하다. 학교에 가는 길이나 돌아오는 길에 고개서 한숨 돌린다. 고개에서 사마귀를 만나면 동무들은 장난을 친다. 손하고 발이나 팔꿈치에 사마귀가 난 아이는 제 살점을 손톱으로 뜯는다. 살점을 작은 돌에 얹고 그 위에 또 떼서 놓는다. 아주 작은 돌탑으로 돌부리보다 적어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시침 떼고 앉아 있으면 막 재를 넘는 아이가 돌을 차면 손뼉치며 소리지르며 좋아했다. 제 몸에 난 사마귀가 그 동무한테 옮겨간다고 여겼다. 그리고 머스마들은 사마귀 목덜미를 잡고 몸에 난 사마귀를 뜯어 먹게 했다. 사마귀를 옮는다는 말에 사마귀 곁에 얼씬도 안 했다. 사마귀 몸이 메뚜기처럼 딱딱한데 배는 부드럽고 무겁다. 새끼를 뱄을까. 몸집 두 곱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1] 보리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 마을을 벗어나 재를 넘으면 산비탈에 보리밭이 있었다. 새싹이 한 뼘쯤 올라오면 학교 오가는 길에 보리를 밟았다. 밟으면 보리에 좋다고 해서 좋아라고 밟는다. 우리가 뭉개듯 밟아도 참말로 자랄까 궁금했다. 우리가 밟은 보리가 무릎까지 자랐다. 학교 오가는 길에 뒤가 마려우면 하나둘 보리밭에 이랑에 들어갔다. 보리밭이 길가에 있어 아이들이 지나가면 몸을 숨기고 뒷일을 봤다. 우리 집은 땅이 얼마 없어서 보리를 얼마 뿌리지 못했다. 보리를 밟으면 좋다고 하면서도 우리 보리를 밟지 않고 어머니도 남일이 바빠 보리를 밟지 않았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마늘 캘 무렵이면 보리를 벤다. 어머니는 도리깨질로 두들기며 털고 꼰 새끼줄에 동여매서 털기도 했다. 우리 집은 쌀보리를 하지 않고 굵고 거친 겉보리를 먹었다. 보리가 야물어서 물에 불린 뒤 삶는다. 삶은 보리쌀을 건져 놓고 밥을 할 적마다 밑에 깔고 쌀을 한 줌씩 얹어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벼는 오월에 심어 가을에 거두는데 보리는 가을에 심어 유월에 거두네. 마늘은 비닐이라도 덮는데 보리는 추운 땅에서 겨울을 나자면 뿌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0] 잔대 우리 마을 멧골이 잔디밭이다. 마을로 잇는 여러 등성이 골골에 마을사람이 다녔다. 풀이 자라고 잔디를 소한테 먹이고 낫으로 베어서 땔감을 했다. 멧골에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잔디가 살고 우리는 소 먹이러 가서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잔디 가까이 잔디보다 잎이 넓은 풀이 자랐다. 노란꽃을 피우는 잔대가 있는데, 우리는 ‘짠대’라 한다. 쪼그리고 앉아 잔대를 캔다. 호미를 안 갖고 간 날에는 손으로 흙을 팠다. 뿌리에 붙은 모래흙이 잘 털렸다. 뿌리가 까맣다. 깎거나 훑어낸 뒤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어머니 아버지도 가끔 잔대를 캐서 먹지만 일하느라 캐고 먹을 틈이 없다. 잔대는 소 먹이러 가면 누리는 우리 새참이다. 배불리 먹지는 못해도 몇 뿌리 캐서 씹으면 씹을수록 뿌리맛이 달콤하다. 내 혀는 어린 날 먹은 잔대를 떠올릴지 모른다. 이제 잔디가 사라졌다. 민둥산에 더는 나무를 베지 않아 나무가 자라고 햇볕을 쬐지 못한 잔디가 많이 사라졌다. 산등성이 모두가 잔디밭이었으나, 이제는 무덤에서나 본다. 내가 들녘을 좋아하는 까닭이 어쩌면 우리 마을 온 등성이를 잔뜩 덮은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아서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6] 질그릇 우리 어머니는 장터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가 시장에서 질그릇(옹기) 장사를 했다. 우리 마을에서 재를 하나 넘어 서너 마을에 있는 저잣판이다. 질그릇은 전쟁이 일어나자 더 잘 팔렸다. 물이며 된장이며 똥물이며 담는 그릇이 모두 질그릇이다. 전쟁으로 살림을 다 짜들었기에 질그릇만큼은 바로 써야 하기에 불티났다. 외할아버지가 총각 때 삼촌 밑에서 크며 질그릇 솜씨를 배웠다. 그때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외할머니를 만났다. 외할머니는 데리고 온 아이가 있어 외할아버지와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새 장가를 보냈다. 두 여자가 한집에 사니 살림이 시끄럽고 장사도 잘 안 풀렸다. 질그릇을 잘못 구워 하얗게 되어 깨뜨리기를 거듭하자 외할아버지는 노름에도 손을 대고 천천히 무너졌다. 맏딸인 우리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하고 설 쇠러 왔다가 외할아버지가 시집을 보냈다. 어머니 입 하나 덜어 보려고 아무데나 짝을 맺어주었다. 질그릇을 파는 집 딸이면서도 우리 집에는 단지가 몇 없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엉망이 된 삶이 떠오를까 질그릇을 장만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집이 기울어 질그릇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