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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발걸음 06] 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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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6] 질그릇

 

  우리 어머니는 장터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가 시장에서 질그릇(옹기) 장사를 했다. 우리 마을에서 재를 하나 넘어 서너 마을에 있는 저잣판이다. 질그릇은 전쟁이 일어나자 더 잘 팔렸다. 물이며 된장이며 똥물이며 담는 그릇이 모두 질그릇이다. 전쟁으로 살림을 다 짜들었기에 질그릇만큼은 바로 써야 하기에 불티났다. 외할아버지가 총각 때 삼촌 밑에서 크며 질그릇 솜씨를 배웠다. 그때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외할머니를 만났다. 외할머니는 데리고 온 아이가 있어 외할아버지와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새 장가를 보냈다. 두 여자가 한집에 사니 살림이 시끄럽고 장사도 잘 안 풀렸다. 질그릇을 잘못 구워 하얗게 되어 깨뜨리기를 거듭하자 외할아버지는 노름에도 손을 대고 천천히 무너졌다. 맏딸인 우리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하고 설 쇠러 왔다가 외할아버지가 시집을 보냈다. 어머니 입 하나 덜어 보려고 아무데나 짝을 맺어주었다. 질그릇을 파는 집 딸이면서도 우리 집에는 단지가 몇 없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엉망이 된 삶이 떠오를까 질그릇을 장만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집이 기울어 질그릇을 해줄 살림이 못 되었지 싶다. 내가 질그릇을 보면 설레는 마음을 조금은 알 듯했다. 어머니한테서 뼛속으로 물려받았을까. 손으로 빚은 그릇에 투박한 외할아버지 손길을 저절로 느끼는지 모른다. 질그릇에 눈길이 쏠리는 실마리를 찾는다. 질그릇은 언제 봐도 소담스럽고 설렌다.

 

2021. 07. 1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