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내가 안 쓰는 말 39 포기
풀 한 포기는
숲에서도 들에서도 길에서도
마당서도 골목서도 서울서도
뿌리내리고 꽃피운다
매캐한 서울에 풀씨 앉으면
그만두고 싶거나
손들고 싶거나
죽고 싶을 수 있어
숱한 풀꽃나무는 고된 나머지
서울살이나 그늘살이를 끝내고
흙으로 돌아가거나
깊이 잠들었겠지
풀 한 포기는
포근한 흙과 해와 별과
푸근한 바람과 비와 너와
우리 품을 그리며 싹튼다
ㅅㄴㄹ
우리말 ‘포기’는 풀꽃을 세는 이름입니다. 한자말 ‘포기(抛棄)’는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2. 자기의 권리나 자격, 물건 따위를 내던져 버림”을 가리킵니다. 시골에서 살거나 풀꽃나무를 곁에 두는 사람이라면, ‘포기’라는 소리를 들을 적에 “풀 한 포기”나 “배추 한 포기”를 떠올립니다. 숲을 등지거나 서울에서만 맴돌 적에는 ‘포기’란 소리를 으레 한자말 ‘抛棄’,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그만두다·그치다·끝내다·버리다·떠나다·멈추다’를 뜻하는 낱말을 떠올릴 만합니다. 서울은 풀씨 한 톨이 깃들 조그마한 터도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부릉부릉 매캐하고 빽빽하지요. 서울에서 흙이나 모래 한 줌을 만지기는 어렵고, 조약돌 하나를 구경하기도 힘들어요. 우리가 숨을 쉬려면, 바람이 맑고 하늘이 파랗게 물들 노릇인데, 맑고 파란 바람과 하늘은 풀꽃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어야 태어나요. 풀씨나 꽃씨나 나무씨는 서울에 문득 깃들어야 하면, 뿌리를 내릴 곳부터 찾기 어려워서 그만두고 싶을 수 있어요. 그러나 아직 숱한 풀꽃나무는 서울 기스락이나 구석자리에서도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싹트면서 푸른숨을 베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