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1] 뽕나무 뽕잎에 가려진 똘기와 아람열매가 달렸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풀벌레 같다만 맛은 달다. 오디가 나무에서 익어 갈 무렵이면 뽕잎을 따고 훑었다. 우리 집은 집도 작고 방도 작아 한 방에 모여 자고 윗목에 누에도 키웠다. 어머니는 광주리에 어린 뽕잎을 따다 어린 누에를 키웠다. 뽕잎을 먹고 자라면 광주리를 바꾸고 또 자라면 광주리를 바꾸며 누에 집을 늘려준다. 누에가 무럭무럭 자라자 뽕잎도 많이 먹는다. 몸집이 굵으면 아버지는 나무로 틀을 짜고 모기그물을 붙인 켜를 올리고 발도 펴서 또 한 켜를 올린다. 솔가지를 꺾어 켜를 놓으면 누에는 솔가지에 집을 짓는다. 솔가지를 넓은 자리에 옮겨 놓는다. 우리는 집 뒷골에 올라가 뽕잎을 몇 씩 땄다. 누에가 자라자 아버지는 뽕나무 가지를 베어서 집에서 잎을 따서 더 많이 먹인다. 누에가 실을 풀 때쯤이면 굵다. 어른 손가락보다 굵다. 잠결에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를 쉐쉐 세차게 듣는다. 누에가 입에서 끊임없이 실을 풀면 온통 하얀 고치이다. 실을 풀어내고 고치에서 잠든 누에를 생각지 못하고 나는 귀에 대고 흔들며 고치를 손에 쥐고 놀았다. 엄지보다 작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3] 경운기 길에서 경운기를 만나면 기뻤다. 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오빠들은 버스 창문에 매달리다가 떨어져 머리를 깨거나 무릎이 크게 깨진다. 경운기를 만나면 왼쪽 오른쪽 가운데 자리를 두고 서로 맡는다. 나는 늘 왼쪽을 고른다. 삼학년 때 경운기에 매달리다가 팔힘이 빠져서 발을 내리다가 돌부리를 밟고 서면서 엎어졌다. 무릎이 돌에 찍혀 피가 맺히고 팔꿈치를 갈았다. 어머니가 상어 이빨이라고 길쭉한 뼈를 긁어서 다친 자리에 가루를 뿌려준다. 딱지가 앉고 가려워 긁으면 짓무르고 고름이 생긴다. 그래도 경운기를 만나면 또 탄다. 처음 탈 적에는 몸을 오그리다가 자꾸 타면서 몸을 뒤로 젖히고 팔을 쭉 뻗는다. 경운기가 털털 돌길을 지나가면 우리도 덜컹 몸이 따라 털털하고 웃음소리도 떤다. 경운기 소리가 시끄러운데 아저씨는 우리가 탄 줄을 알까. 조금이라도 매달려 온 날은 뭔가 뿌듯하다. 어느 날 짐차가 한 대 지나갔다. 너무 타고 싶었다.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짐차를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커서 짐차에 문을 달고 방을 꾸미고 디딤칸을 셋 달아서 움직이는 차를 꼭 타고다닌다고 다짐했다. 내가 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2] 오줌 비를 맞은 길바닥이 푹 꺼지고 웅덩이가 생겼다. 패인 자리에 빗물이 찰랑거린다. 빵빵한 웅덩이에 물길을 트고 찔끔찔끔 물이 흐른다. 또 어떤 길은 누가 오줌을 갈겨 놓은 듯하다. 나는 나무 옆에서 오줌을 눈다. 멧산에 오면 뒷간이 없어 숲에 들어가서 오줌을 그냥 눈다. 어릴 적에도 아무 때나 갈겼다. 비가 오는 날이면 뒷간에 안 가고 마당 한쪽 담벼락에 모아 둔 거름에 비를 맞으며 오줌을 눈다. 내가 눈 오줌이 빗물 따라 마당에 길을 내고 흐른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거름에 똥을 눈다. 거름도 얼고 내가 눈 똥이 아침이면 꽁꽁 얼었다. 햇볕에 눈이 녹고 이른저녁에 오줌을 누려고 자리를 맡으려다 내가 눈 똥을 밟는다. 몇 걸음만 걸으면 뒷간인데 무서웠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도 나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요강을 방에 둘 적도 있고 문밖 뜨락에 둘 적도 있다. 잠결에 오줌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 오줌 줄기가 세차다. 나는 앉아서 오줌을 누는데 자꾸만 요강을 타고 흐른다. 오빠들도 오줌을 누고 아침이면 요강이 놓인 자리에는 오줌이 고이고 뜨락에도 고인다. 요강에 오줌이 가득 차서 비우려고 들면 엄지손가락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0] 탱자 올해는 탱자나무가 열매 맺기를 건너뛰려나. 한 그루에 하나만 작게 달렸다. 귤은 껍질도 쉽게 까고 새콤달콤해서 먹는 사람이 많지만 탱자를 먹는 사람은 못 봤다. 장골 가파른 멧골 아랫집에 탱자나무가 울타리로 빽빽하다. 바위 언덕에 옥이네만 사는데 뒤뜰을 탱자나무로 심었을까. 멧돼지가 내려오는지 모른다. 노랗게 익으면 바닥에 혼자 뒹구는 탱자를 가시 틈으로 줍느라 손등이 꾹 찍히기 일쑤이다. 한 입 깨물다가 쓴맛에 이내 뱉는다. 탱자는 먹기 힘든 줄 어릴 적에 주워서 베어물고서 알았다. 그러나 탱자 쥔 손이 향긋해서 몇을 따고 줍는다. 댓돌 바닥에 가볍게 떨구면 조금 올라왔다가 내려가면서 통통거린다. 공놀이를 하고 때론 약으로 썼다. 열두 살 적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몸을 긁었더니 얼굴만 빼고 온몸 살결이 울퉁불퉁 올라왔다. 이불을 다 덮어쓰고 누웠다. 이불도 무겁고 안도 컴컴해서 숨이 막혔다. 무릎 꿇고 엎드려 이불 끝을 살짝 들어 밝은 틈으로 밖을 빼꼼히 내다보고 숨도 크게 쉬었다. 두드러기는 빛을 보면 더 벙긋하게 일어났다. 오빠가 탱자를 찾아서 왔다. 엄마는 탱자를 반을 가르고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9] 닥나무 논둑에 닥나무가 많이 자란다. 아버지가 서울에 가서 번 돈으로 열 뙈기 넘는 논을 사들이고 그해에 내가 태어났다. 마을에서 목골 못을 지나 메를 오르고 멧허리를 둘 넘는다. 멧골에서 물이 흘러 도랑 큰돌 틈으로 물이 콸콸콸 쉬지 않고 시원하게 흐른다. 다랭이논이고 우리 집 큰방이나 작은방만 한 논이 열을 넘는다. 열 살인 나는 동생하고 물이 세차게 흐르는 너럭바위에 앉아 놀고 아버지는 거렁땅에서 닥나무를 낫으로 벴다. 겨울이 되면 가마솥에 물을 붓고 닥나무를 구부려서 넣은 뒤 불을 때며 찐다. 소죽 끓일 적에도 얹는다. 가마솥이 걸린 방에는 호롱불이 있다. 온 집안이 닥나무 껍질을 벗긴다. 나무가 뜨거워도 하나씩 잡고 입으로 물어뜯어 껍질이 일어나면 손에 잡고 줄줄 당기면서 벗긴다. 짙은 밤빛 도는 껍질이 다 벗겨진 닥나무는 노릿하고 빤질빤질하며 울퉁불퉁한 꼬챙이가 된다. 껍질을 빨랫줄에 널어 말리거나 담벼락과 마루에 펴서 말렸다. 마을을 다니며 닥나무 껍질을 거두는 사람한테 판다. 껍질을 벗긴 나무는 땔감으로 썼다. 닥나무는 단단해서 작은 새총을 자르고 고무줄을 끼워 참새한테 돌을 날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8] 멧딸기 우리 마을은 멧골이라 논이 산에 있었다. 사화산 자락인 장골에서 금서로 가는 길은 메를 하나 오르고 등성이를 휘돌면 잔돌이 검게 깔린 내리막길을 지나 또 골이 나온다. 골과 골 사이에 작은 못둑을 지나 멧길로 한참 오른다. 참나무가 작게 자라고 그 길에 옴을 자주 마주치고 흙보다 돌을 밟고 걷는다. 참말로 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밭둑 논둑을 지나면 골과 골 사이에 물이 샘솟는 곁으로 크고 작은 다랭이논에 닿는다. 어머니하고 아버지와 오빠는 모내기하고 동생하고 나는 옆 등성이에 오른다. 봉우리가 오목하게 부드러이 높고 나무가 없는 민둥산으로 풀이 많다. 딸기넝쿨이 풀이 없는 바위를 덮으며 자란다. 넝쿨이 길게 엉키며 자라 신발에 걸려 다리가 긁힌다. 뒤뚱뒤뚱하게 걸음을 옮기면 멧딸기가 뒤덮었다. 멧딸기알이 물방울처럼 쩍 벌어졌다. 우리는 멧딸기 빛깔만 보아도 익은지 덜 익은지 쉽게 안다. 잘 익은 딸기는 알이 더 빨갛고 굵다. 우리는 빨간 멧딸기를 골라 빼먹는다. 금서에는 멧딸기를 먹으려고 따라왔다. 멧딸기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내가 먹은 멧딸기는 깨끗한 자리에 자란다. 내가 잘 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1] 솥뚜껑 할아버지가 죽은 날에 마을 어른이 모여 모둠밥을 장만했다. 한쪽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단지에 삼베를 깔고 쌀가루를 반반하게 놓고 노란 콩고물도 뿌려 시루떡을 찌고, 또 한쪽에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침개를 부친다. 구멍이 나서 못쓰는 솥뚜껑을 잘 닦아 기름을 바르면 쇠가 까맣게 기름을 먹어 반질반질하다. 기름을 종지에 덜어 주먹 크기인 짧은 붓 같은 솔에 찍어 솥에 휘젓거나 주걱으로 기름을 바른다. 맨손으로 밀가루 반죽에 배추를 담갔다가 솥뚜껑에 엎어 놓는다. 주걱으로 솥뚜껑 윗자리로 밀어내고 또 반죽에 적신 배추를 가운데에 펼친다. 솥뚜껑 하나에 배추부침이 서넛씩 한꺼번에 오른다. 다른 뚜껑에는 정구지를 부치고 고구마도 부친다.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내면 우리는 뜨거운 부침개를 먹고 싶어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조른다. 그러면 배추부침 하나를 째서 준다. 마당 한쪽에 솥을 걸고 불을 지피느라 일하는 사람만 해도 어수선하고 불을 지펴 뜨겁다. 아줌마들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허리를 수그리고 부치고 젊은 아재들은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으로 술자리를 낸다. 솥뚜껑은 밥할 적에는 지붕 노릇을 하다가, 기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7] 싸리꽃 싸리꽃이 피면 나도 모르게 왼손을 펼친다. 아픈 일이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들일 밭일을 하지 못했다. 두 지팡이에 몸을 기댄다. 아버지가 한 해에 두 벌 싸리나무를 벤다. 가을에 잎이 떨어질 적에 싸리나무는 굵고 단단해서 마당을 쓰는 빗자루로 묶는다. 여름에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베다 놓은 싸리나무로 지게에 얹었다 뺐다 하는 부채꼴 소쿠리를 엮는다. 아버지는 지게에 얹어 꼴을 담는다. 데레끼도 짠다. 데레끼는 어머니가 밭에 다닐 적에 어깨에 메고 다닌다. 데래끼는 단지처럼 둥글다. 싸리나무를 삶기도 하고 날나무를 길게 반 쪼개서 바닥을 틀 잡고 길쭉하게 엮어 크기를 어림잡고 싸리를 세우고 둥그렇게 하나하나 엮는다. 할아버지는 손마디가 뻣뻣한데도 꼼꼼하게 엮는다. 열두 살에 할아버지 곁에서 사리를 칼로 둘 쪼개 주었다. 그런데 사리가 잘 휘어져서 엉뚱하게 반 꺾어 보려다 손이 찔렸다. 여느 나무는 휘어지지 않고 똑하고 부러지지만 사리는 꺾어도 구부러진다. 그래도 꺾어 보려다가 왼쪽 손바닥을 푹 찔렸다. 싸리나무를 꺾어 보면 나무가 한 결이 아니다. 실처럼 가는 결이 뭉쳤는지 판판하게 꺾이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6] 부들 못을 지나다 부들을 본다. 어린 날에는 못가에서 올려다보았는데 오늘은 다리에서 내려다본다. 우리는 부들을 또뜨락방망이라고 했다. 다듬이방망이같이 생기고 흙빛이 돌고, 겨울날 털신에 붉은 깃털하고도 닮고, 얼음과자도 닮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운뎃못에서 부들을 꺾는다. 부들로 칼싸움도 하고 궁금해서 반으로 쪼개서도 논다. 대보다 부들이 굵어서 칼싸움하면 굴렁굴렁한다. 부들끼리 세게 부딪치면 터져서 가루가 펄펄 난다. 부들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동무들 뒤통수를 때리고 숨기고 목에 대고 간지럽히고 시치미를 뗀다. 부들 끝에 올라온 대를 자르고 부들을 마주보도록 둘 놓고 장난도 친다. 하나는 손잡이 대를 짧게 하고 바닥에 놓는다. 다른 하나는 대를 길게 하고 부들이 서로 맞대게 가까이 놓고 긴 대를 손으로 돌리면 바닥에 놓인 부들이 맞물려 제자리에서 내가 돌리는 쪽으로 움직인다. 아버지는 부들이 푸를 적에 낫으로 벤다. 집에 갖고 와서 돗자리를 짜고 방석을 엮는다. 부들이 푸른 풀일 적에 엮으면 풀이 누렇게 마른다. 우리가 방망이라고 하던 이름처럼 부들도 부들부들해서 붙인 이름일까. 진흙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5 ] 살구 풋살구는 유월 볕에 노르스름하게 익어간다. 어린 날 우리 집에는 살구나무가 없었다. 장골 끝에 사는 숙이네에 살구나무가 많았다. 살구나무가 뒤쪽 울타리로 에워쌌다. 길이 좁아 발을 헛디디면 어른 키높이 도랑에 떨어진다. 도랑물은 멧산에서 내려오고 숙이네 집을 휘돌아 마을로 흐른다. 나는 살구가 먹고 싶으면 숙이네 집에 찾아간다. 다른 아이는 숙이네 집에 오지 않다가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몰려왔다. 나는 도랑쪽 살구나무를 잘 탔다. 머스마들은 큰나무에 올라간다. 두 그루에 살구가 많이 달렸다. 장대로 나무를 퉁퉁 치면 살구가 와르르 도랑에 떨어져 물에 동동 뜬다. 살구를 주우려고 바위 틈으로 내려와 첨벙첨벙 들어가서 줍는다. 도랑 바닥이 돌층에 큰돌이 있고 나무가 위로 우거졌다. 살구가 주먹만큼 굵다. 살구를 또개면 살이 보슬보슬하고 도톰하다. 까만 얼룩이 있는 살구는 벌레가 산다. 덜 익은 살구는 두었다가 익으면 먹는다. 살구가 깨끗하게 잘 빠진다. 딱딱한 씨앗 껍데기를 돌로 내리쳐서 하얀 씨앗을 빼먹는다. 우리는 뭔들 안 먹었을까. 숙이는 살구를 우리가 따먹는데도 가면 좋아했다.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