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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발걸음 01] 솥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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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1] 솥뚜껑

 

  할아버지가 죽은 날에 마을 어른이 모여 모둠밥을 장만했다. 한쪽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단지에 삼베를 깔고 쌀가루를 반반하게 놓고 노란 콩고물도 뿌려 시루떡을 찌고, 또 한쪽에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침개를 부친다. 구멍이 나서 못쓰는 솥뚜껑을 잘 닦아 기름을 바르면 쇠가 까맣게 기름을 먹어 반질반질하다. 기름을 종지에 덜어 주먹 크기인 짧은 붓 같은 솔에 찍어 솥에 휘젓거나 주걱으로 기름을 바른다. 맨손으로 밀가루 반죽에 배추를 담갔다가 솥뚜껑에 엎어 놓는다. 주걱으로 솥뚜껑 윗자리로 밀어내고 또 반죽에 적신 배추를 가운데에 펼친다. 솥뚜껑 하나에 배추부침이 서넛씩 한꺼번에 오른다. 다른 뚜껑에는 정구지를 부치고 고구마도 부친다.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내면 우리는 뜨거운 부침개를 먹고 싶어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조른다. 그러면 배추부침 하나를 째서 준다. 마당 한쪽에 솥을 걸고 불을 지피느라 일하는 사람만 해도 어수선하고 불을 지펴 뜨겁다. 아줌마들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허리를 수그리고 부치고 젊은 아재들은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으로 술자리를 낸다. 솥뚜껑은 밥할 적에는 지붕 노릇을 하다가, 기쁘거나 궂은 일이 생길 적에는 뜨거운 불판이 되어 주는데, 어린 나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어느새 잊고서 부침개 한 입 더 얻어먹으려고 목을 뺐다. 솥뚜껑이 참 넓었다.

 

2021. 06. 1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