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9] 닥나무
논둑에 닥나무가 많이 자란다. 아버지가 서울에 가서 번 돈으로 열 뙈기 넘는 논을 사들이고 그해에 내가 태어났다. 마을에서 목골 못을 지나 메를 오르고 멧허리를 둘 넘는다. 멧골에서 물이 흘러 도랑 큰돌 틈으로 물이 콸콸콸 쉬지 않고 시원하게 흐른다. 다랭이논이고 우리 집 큰방이나 작은방만 한 논이 열을 넘는다. 열 살인 나는 동생하고 물이 세차게 흐르는 너럭바위에 앉아 놀고 아버지는 거렁땅에서 닥나무를 낫으로 벴다. 겨울이 되면 가마솥에 물을 붓고 닥나무를 구부려서 넣은 뒤 불을 때며 찐다. 소죽 끓일 적에도 얹는다. 가마솥이 걸린 방에는 호롱불이 있다. 온 집안이 닥나무 껍질을 벗긴다. 나무가 뜨거워도 하나씩 잡고 입으로 물어뜯어 껍질이 일어나면 손에 잡고 줄줄 당기면서 벗긴다. 짙은 밤빛 도는 껍질이 다 벗겨진 닥나무는 노릿하고 빤질빤질하며 울퉁불퉁한 꼬챙이가 된다. 껍질을 빨랫줄에 널어 말리거나 담벼락과 마루에 펴서 말렸다. 마을을 다니며 닥나무 껍질을 거두는 사람한테 판다. 껍질을 벗긴 나무는 땔감으로 썼다. 닥나무는 단단해서 작은 새총을 자르고 고무줄을 끼워 참새한테 돌을 날렸다. 나무가 잘 휘어져서 두 끝에 홈을 파고 우리가 벗긴 닥나무 껍질을 묶어 활이 되면, 화살을 끼워 쌓아 놓은 볏단에 쏜다. 우리 마을에서는 닥나무를 딱(땅)나무라 했다. 나무가 딱딱해서 닥나무일까. 삶으면 더 단단하기에 닥나무인가. 어른들은 닥나무를 어떻게 알았을까. 종이가 되는 줄은 어떻게 알까.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먼먼 할아버지 적부터 오래도록 이어져 왔을 텐데. 겨울 잠을 자고 나면 쑥쑥 자라는데, 해마다 가지가 잘려도 자라서 우리 집 창살문에 바를 문종이로 돌아왔다.
2021. 06. 1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