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92 바라는 대로 《인형 이야기》 루머 고든 햇살과 나무꾼 옮김 비룡소 2023.9.28. 인형은 사람하고 달라요.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지만, 인형은 누군가 같이 놀아주기 전에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게 아니랍니다. (65쪽) 여름에 《인형 이야기》를 장만하고서, 대구에서 시골로 오갈 적마다 꾸러미에 담고 다녔다. 으레 책상 한쪽에 두었다. 두고두고 읽은 느낌을 글로 적어 보는데, 깜빡 잊고 갈무리를 안 한 탓에 그만 글이 날아갔다. 어째 글도 갈무리를 안 해 놓고서 날린담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생각한다. 아마 처음부터 새로 쓰라는 뜻이지 않을까. 《인형 이야기》는 여러 ‘인형’하고 아이들이 마음을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형끼리 주고받는 마음을 마치 누가 옆에서 귀담아들은 듯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바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는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인형을 가슴에 폭 안고서 스스로 바라는 말을 끝없이 속삭이곤 한다. 아이들한테 ‘인형’이란 꿈을 비는 속마음을 말로 털어놓는 알뜰한 동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를 앞둔다. 여섯 달 동안 《인형 이야기》를 책상맡에 놓고서 들여다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91 숲내음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최종규 스토리닷 2024.11.9. 책이름이 긴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를 다시 읽는다. 도시에 있는 책집에 들꽃내음이 있을까? 무슨 소리인가 갸웃거리며 읽다 보니, ‘들꽃내음’은 글쓴이가 일본 도쿄 책거리에 갔을 적에 겪은 일이다. 북적이는 곳도 아니고 큰길도 아닌 마을 안쪽, 골목이 이은 작은집이 잇달은 곳에 핀 들꽃을 보았고, 이 들꽃 곁에 서서 꽃내음을 맡고서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조그마한 책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바둑 전문책집이었고, 이 바둑 전문책집에서 뜻밖에도 우리나라 책을 여럿 만나서 놀랐다고 한다. 글쓴이는 ‘1벌 읽을 책’이 아닌 ‘적어도 100벌 되읽을 책’을 고른다고 한다. 아니, ‘100벌’을 넘어서 ‘300벌이나 1000벌 되읽을 책’이기를 바라면서 고른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해도 같은 책을 100벌이나 되읽을 수 있을까? 우리 집 셋째 아이는 만화책을 좋아해서 만화책에 나온 말을 외우면서 보고 또 보았는데, 스무 벌쯤 되읽지 않았나 싶다. 글쓴이가 출판사에서 일하며 국제도서전에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90 흉내 《한강》 한강 문학동네 2023.6.1. 올해 늦가을에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한강》을 장만했다. 제주에서 보름살기를 하는 동안 제주 마을책집을 돌아보았고, 이때에 눈여겨보았다. 《한강》이라는 책에는 한강 씨가 쓴 소설과 시와 산문을 싣는다. 그런데 〈희랍어 시간〉을 읽으며 자꾸 흐름이 끊긴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길다. 뭔가 낱낱이 그리는 듯하지만 오히려 말만 너무 긴 듯해서 답답하다.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빗대는 듯하지만 잘 모르겠다. 〈종이 피아노〉로 넘어간다. 어릴 적에 피아노를 하고 싶은데 집안살림이 안 되어서 종이 피아노를 놓고서 치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데 한강 씨 아버지는 소설가이고 집에 책이 많았다. 피아노를 만질 수 없어서 종이 피아노를 눌렀다지만, 책이 잔뜩 있던 한강 씨네 살림이 오히려 부럽다. 나는 어릴 적에 교과서를 뺀 다른 책을 만지지도 보지도 못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내가 배우고 싶으면 배워 보라고 피아노학원이라든지 다른 어느 곳도 보낼 수 없었다. 아마 보내려는 엄두조차 못 내었으리라. 의성 멧골마을에 무슨 학원이 있겠으며 무슨 책집이 있겠는가. 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6 두드리다 수박이 잘 익었는지 톡톡 두드려요. 퉁퉁 소리라면 껍질이 두껍습니다. 통통 소리라면 잘 익었다는 대꾸입니다. 새로 지낼 시골집을 두드려 봅니다. 흙을 감싼 쇳소리가 납니다. 문을 두드려요. 들어가도 되는지,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 있는지, 가만히 여쭈어요. 문틀을 망치로 두드려요. 못을 박아 갈대발을 얹어요. 낡고 벗겨진 거울을 살살 두드려요. 조각조각 내어 종이자루에 담아서 치워요. 잇고 싶어서 두드립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라는 옛말이 궁금했어요. 단단한 돌로 놓았다지만 참말로 든든한지 천천히 밟아 봅니다. 그런데 밭둑에서 미나리를 뜯으려고 하다가 한발이 진흙에 푹 빠집니다. 처음부터 도랑에 들어갔으면 안 놀랐을 텐데 싶더군요. 두드려 본다는 뜻은 미리 살핀다는 얘기일 테지요. 모르니까 물어 물어 갑니다. 마음을 열고 싶어 두드립니다. 아직 모르는 하루를 종이에 사각사각 적습니다. 2024. 5. 7.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89 보고 자라요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2》 타카하시 신 정은 옮김 대원씨아이 2021.9. 15.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 2》를 지난해 이맘때에 처음 읽었다. 시골에 가는 날이 잦아서 아예 책을 따로 꾸러미에 담아서 들고 다닌다. 움직이는 작은책집처럼 여긴다. 제주나들이에도 책꾸러미를 챙겼고, 이 책을 담는다. 이 책은 아빠가 아이한테 들려주기보다 보여주는 쪽이다. 혼자 살아가는 길에 익숙한 사람이 어느 날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한테도 짝한테도 서툴렀다. 아이가 제법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 즈음부터 갑자기 아이를 혼자 맡아야 한다. 어떻게 아이를 돌봐야 하는지, 이러면서 살림과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던 젊은 사내가 비로소 어버이로 선다. 처음으로 아이 곁에 씩씩하게 서려고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버이 마음을 만화로 담는다. 아이는 아빠가 해준 밥을 먹으면 힘이 난다. 아버지는 온마음을 담아 밥을 짓는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 키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는데, 으레 혼자 지내야 하면서 말이 없어진 아이인데, 아빠와 새롭게 둘이 살면서 아빠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섬마을에서 여러 이웃과 동무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88 즐거운 일 《이거 그리고 죽어 1》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4.23 지난달 시골에 머물 때 몇 권 들고 간 책 가운데 《이거 그리고 죽어 1》는 쉽게 읽었다. 만화라서 쉽게 읽었을까.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면서 짬이 없거나 지칠 적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모아서 읽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작문’ 시간이 참 따분했다. 그렇다고 그때에 만화를 읽지도 않았다. 《이거 그리고 죽어 1》를 보면, 담임 교사가 아이한테 “만화 같은 건 그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요!(22쪽)” 하고 말한다. 아마 나는 고등학교 때에 이렇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때 어른들도 만화는 삶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테고.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달랐다. 막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읽고 또 읽고 외울 만큼 읽고 혼자 까르르 웃었다. 막내는 만화를 읽으면서 누나가 배우는 눈높이를 조금씩 알아갔다. 그래서 “만화는 거짓이 아니다(24쪽)” 하고 나오는 말에 고개를 끄떡끄떡한다. 가만히 보면 이 만화책은 ‘만화’를 말하는 줄거리인데, ‘만화’를 ‘시’나 ‘글’로 바꾸어서 읽을 만하다. 사람들은, 또 이 나라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우리말 25 뽑는다 큰딸은 짝을 두지 않습니다. 애 아빠는 애가 탄답니다. 큰딸은 저희 집이 있고, 대학교도 잘 마쳤고, 일터도 알뜰한데, 애 아빠는 꼭 짝이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큰딸이 어느 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 저절로 짝이 생기겠지요. 굳이 짝을 두지 않고서 호젓하게 살아가는 길을 나아갈 수 있고요. 곰곰이 보면, 우리 큰딸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르고 솎고 뽑아서 하루를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가야 하지 않아요. 남들이 저 사람이 좋다고 여기니까 저 사람을 좋아해야 하지 않아요. 나라일꾼을 뽑을 적에도 마찬가지예요. 둘레에 부는 바람이 아닌, 내가 바라는 길을 살피면서 알맞게 한 사람을 뽑아서 표를 찍으면 됩니다. 옳거나 그르다고 판가름할 일이 아닙니다. 나도 애 아빠도 큰딸도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알뜰살뜰 가려서 걸어가면 돼요. 억지로 뽑으면 늘 아픕니다. 2024.04.2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88 즐거운 일 《이거 그리고 죽어 1》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4.23 지난달 시골에 머물 때 몇 권 들고 간 책 가운데 《이거 그리고 죽어 1》는 쉽게 읽었다. 만화라서 쉽게 읽었을까.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면서 짬이 없거나 지칠 적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모아서 읽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작문’ 시간이 참 따분했다. 그렇다고 그때에 만화를 읽지도 않았다. 《이거 그리고 죽어 1》를 보면, 담임 교사가 아이한테 “만화 같은 건 그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요!(22쪽)” 하고 말한다. 아마 나는 고등학교 때에 이렇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때 어른들도 만화는 삶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테고.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달랐다. 막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읽고 또 읽고 외울 만큼 읽고 혼자 까르르 웃었다. 막내는 만화를 읽으면서 누나가 배우는 눈높이를 조금씩 알아갔다. 그래서 “만화는 거짓이 아니다(24쪽)” 하고 나오는 말에 고개를 끄떡끄떡한다. 가만히 보면 이 만화책은 ‘만화’를 말하는 줄거리인데, ‘만화’를 ‘시’나 ‘글’로 바꾸어서 읽을 만하다. 사람들은, 또 이 나라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4 짐 꽃을 삽니다. 씨앗을 싹틔운 금낭화 한 그릇이 천 원. 다섯 그릇 그러니까 열 포기입니다. 집밖에 심어야 잘 자란다고 합니다. 값을 치르던 짝은 “이런 걸 왜 사는지 모르겠다.” 합니다. 이러고서는 “시골 올 적에 골목에다 심어라.” 해요. 마루에 모아둔 짐에서 반을 오늘 시골로 옮깁니다. 가게를 꾸릴 적에 쓰던 헌 살림 몇 상자입니다. 시골에서 알뜰히 쓸 짐입니다. 두 이레 뒤에 병아리가 옵니다. 부엌을 고치고 지붕을 고칠 일꾼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싣고 갑니다. 살림을 반으로 쪼갠 듯해요. 뒷간을 새로 들이고 하나 떼줍니다. 티브이 컴퓨터 자전거를 빼둡니다. 혼살림이지만 내 옷과 책만 보태면 한살림이 되어요. 삶을 누리는데 아쉽지 않을 짐입니다. 한 달 일하고 한 달 쉬는 놀이터로 쉼터로 쓸 짐입니다. 내 몸 하나 내 입이 참 큰 짐입니다. 몸을 다스릴 짐뿐입니다. 먹고자는 집이 짐입니다. 짐이 내 몫으로 따라가서 마음이 놓입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023 어질어질 마루가 어지럽습니다. 시골에 가는 짝꿍 짐을 챙겨요. 세간살이를 꺼냅니다. 하루를 묵든 이틀을 묵든 한달살이를 하든,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솥이 있어야 밥을 먹고, 비누가 있어야 씻고, 이불이 있어야 따뜻하게 자요. 혼살림을 하는 아들 짐꾸러미 같습니다. 짐이 나가면 반질반질하게 닦고 말끔히 할 생각에 어지러워도 꾹 참아요. 작은딸네가 주는 손잡이 달린 틀에 커피가루를 한 숟가락 꾹꾹 눌러 담고, 단추를 눌러 뽑습니다. 한 모금 마십니다. 이런! 처음으로 뽑아먹는 쓴맛에 속이 울렁울렁해요. 짙은 냄새는 어질어질해요. 며칠 앞서는 목이 아파 어깨에 주사를 맞고, 엉덩이에도 두 대 맞고, 약을 먹었어요. 버섯을 먹고 간질간질해서 두드러기약도 먹었어요. 자동차를 세우다가 약기운 탓에 길턱에 바퀴가 꼬꾸라지기도 했어요. 지게차를 불러 건졌어요. 물을 더 붓고 마십니다. 눈을 감습니다. 어지러움을 재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