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밥꽃마음 1 누런쌀 논에서 네 손으로 바심한 볍씨 집에서 네 손으로 볍씨를 벗겨 감나무 자루로 들어가는 왕겨 씨눈이 붙어 밝은 누런쌀 담지 누런쌀 겨를 벗길수록 하얀쌀 깎은 쌀겨 쌀눈 가루는 등겨 얼굴에 붙이고 찌개는 걸죽해 소가 먹는 밥이기도 하지 나 오면 흰쌀 두 줌 누런쌀 한 줌 네 혼자 있을 때는 누런쌀 석 줌 꼭꼭 씹어 천천히 먹는 하루 딱딱 턱소리 나도록 오래 씹지 뽀얗게 기름진 흰밥이고 푸스스하고 거친 누런밥 눈으로 보아서는 모르는 온몸 돌며 북돋는 씨마음 2024.04.2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1 쿵 둘이 나들이 갑니다. 짝은 바퀴 달린 가방을 처음 끈다면서 싱글벙글합니다. 마녘으로 네 시간을 차를 몰아요. 짐을 풀고 가자지만 한 군데 돌자고 했어요. 갯벌에 깨금발로 들어가 물신을 신고 건지는 감태를 보는데 짝은 내리지 않아요. 볼 것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해요. 섬에 오기로 하고 섬에서 방을 얻기로 했는데 혼자서 덜컹 먼 곳에 방을 잡았어요. 어디를 가더라도 하루 두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만 해요. 첫날부터 쿵 부딪쳐요. 소리 없이 쿡 지어 박혀요. 왔다갔다 힘만 든다며 맘대로 볼 곳을 바꿉니다. 하룻밤 입을 꾹 닫아버렸어요. 청산섬에서 자전거를 탑니다. 도솔암 숲을 오릅니다. 짝이 하자는 대로 따르니 엇갈린 말이 사라집니다. 짝이 묻습니다. "첫나들이치고 잘 보낸 거제?" "나들이하는 바탕이 없어요." "처음 오니 방을 좀 멀리 잡았제?" 서툴다는 말에 풀립니다. 쿵 하던 마음이 쿵짝을 맞춥니다. 2024.03.13.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0 만나다 해남에 있는 대흥절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어느 이름난 분 글씨가 걸렸습니다. 얼마나 오랜 나날을 이어온 글씨인지 새삼스럽습니다. 이 글씨를 보려고 숱한 사람이 이곳까지 드나들었을 발자취를 더듬습니다. 글씨에는 글로 담은 사람 손길이 있습니다. 뭘 사고서 슥슥 적는 글씨에도, 종이에 붓으로 남기는 글씨에도, 이렇게 절집에 거는 글씨에도, 모두 손으로 스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글씨를 쓰는지 돌아보면, 어느새 낯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즐겁게 차린 밥을 맛보듯, 반갑게 마주하는 마음을 만납니다. 멀리 나들이를 가면서 스치는 길에서 나무를 만납니다. 내가 사는 곳하고는 다른 나무입니다. 내가 쓴 글로 묶은 책은 어떤 나무였을까요? 나를 반기는 분한테 내가 쓴 책을 건네다가 ‘나한테 와준 나무냄새’를 훅 느낍니다. 마르지 않는 하늘빛처럼 만납니다. 2024.03.12.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9 허탕 뭔가 빠진 듯한 하루하루가 흐른다. 비가 오는 날 자동차를 씻었다고 하면 뒷불을 갈아 주기로 한 곳이 있는데, 어쩐지 헛걸음만 했다. 하루도 아닌 이틀째 헛길이다. 손수 뒷불을 갈지 못 하니 어쩌지 못 한다. 잔뜩 불을 내 본들 나 혼자 괴롭다. 좀 걸어 보자고 생각하면서 냇길을 따라서 천천히 마을책집으로 간다. 처음 닿은 곳은 안 열었다. 그러네 하고 두리번하다가 다른 책집으로 간다. 아기를 돌보는 젊은 책집지기가 일하는 곳은 열었다. 반갑게 절을 하면서 들어간다. 책도 책일 테지만, 숨을 돌리고 마음을 고른다. 얼마 앞서 미끄러진 일을 떠올린다. 어디에 글을 좀 냈는데 떨어졌다. 지난해에도 헛물을 켰고, 올해에도 헛바람만 마신다. 새해에 다시 내 볼까? 이듬해에도 또 떨어지면? 헛발에 헛일에 허탕만 자꾸 치면? 그러면 다다음해에 새로 내도 되겠지. 네 해 다섯 해 씩씩하게 걸어가 보자. 2024.03.13.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가능 빗물은 하늘땅 씻고 풀잎 나뭇잎 다독여 햇빛은 들숲 감싸고 냇물 바닷물 간질여 씨앗은 고요히 꿈꾸고 마을에 푸른숨 일으켜 열매는 알알이 영글고 모두들 넉넉히 살찌워 너는 휘파람 불 줄 알고 나는 바람춤 즐긴다 우리는 천천히 걸을 수 있고 함께 온누리 누빈다 해보면 새롭게 된다 그리면 언제나 이뤄 바라보며 하나씩 하고 놀고 노래하며 노을로 ㅅㄴㄹ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처음부터 알 수 있을까요? 얼핏 할 수 있는 듯싶으나, 막상 해보니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둘레에서는 다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정작 해보니 스스럼없이 풀리면서 어렵잖이 될 때가 있어요. ‘가능(可能)’은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에 생각씨앗을 담으면, 우리 걸음걸이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할’ 일놀이를 바라봅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쉬운 일도 그르치거나 어긋나곤 해요. 하려는 마음이 ‘할 수 있음’으로 흐르고, 하려는 마음이 없기에 ‘할 수 없음’으로 굳는구나 싶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별이 돋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기억 마음이 떠나고 나면 어쩐지 떠오르지 않고 마음이 따뜻이 피면 하나둘 떠올라 새록새록 마음이 죽어갈 때면 도무지 생각이 없고 마음이 살아날 적에 도로롱 생각이 솟아 아프고 슬프고 괴로워 멍울로 흉으로 새겼어 기쁘고 반갑고 흐뭇해 볼우물 눈웃음 되새겨 하나씩 적어 볼게 찬찬히 담으려 해 어제도 오늘도 이 마음을 돌아보고 돌이켜서 또렷이 ㅅㄴㄹ ‘기억(記憶)’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을 가리킨다고 해요. 우리말로는 ‘생각하다·생각나다’나 ‘떠올리다·떠오르다’입니다. 물에 떠서 올라오듯, 마음이나 머리에 떠서 올라오듯 나타나는 일·말·이야기이기에 ‘떠올리다’라 해요.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싶으면 ‘담’습니다. ‘새기’기도 하고 ‘남기’기도 합니다. 두려 하기에 ‘두다’란 말로 나타내고 ‘되새기다·되돌아보다·되살리다·되짚다·되씹다’처럼 ‘되-’를 붙여 이모저모 살피곤 합니다. 그리고 ‘간직’합니다. ‘건사’합니다. ‘돌아보’거나 ‘그리’기도 하고, ‘품’기도 합니다. ‘품다’라는 낱말은 “품에 있도록 하다”를 가리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상상 새벽에 멧새노래로 일어나 아침에 오늘살림을 그리고 낮에 벌나비처럼 날다가 저녁에 별빛으로 잠들어 마음에 품는 생각이란 앞으로 이루려는 꿈씨앗 마음에 담는 말글이란 이제부터 가꾸는 얘기꽃 하늘과 땅 사이를 날고 너랑 나 사이를 넘나들고 별과 별 사이를 누리고 마음과 마음 사이를 만나 가만히 그리면 나타나 생각하는 대로 생겨나 날아드는 빛이 일어나 꿈짓는 하루가 거듭나 ㅅㄴㄹ 뜻을 알면 길을 열고, 말을 알면 마음을 읽고, 속을 알면 씨앗을 심습니다. ‘상상(想像)’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을 뜻한다고 해요. 아직 겪지 않은 길을 미리 그리는 일이라면 ‘그림’이요, ‘꿈’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가만히 그리면서 아침을 열 적에 스스로 기쁘게 삶을 누려요. 어제까지 이루거나 해내지 못 했기에, 이튿날에는 꼭 이루거나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서 밤에 잠들기에, 아침에 눈을 번쩍 뜨면서 기운이 솟아요. 사람들 누구나 아기로 태어날 적에는 말길을 트지 못 합니다만, 어버이하고 눈을 마주하면서 소리를 듣던 어느 날부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우리말 18 날개 다리밑에 줄지은 비둘기를 보았습니다. 벼랑에서 바위를 타는 염소가 이 같은 모습일까 싶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라면 비둘기가 아슬아슬하게 다리밑 틈바구니에 깃들지 않습니다. 나뭇가지에 앉는 비둘기라면 가만가만 노래하다가 훌쩍 날아서 다른 나무에 앉고, 하늘을 부드러이 가로지릅니다. 대구는 서울보다 작아도, 비둘기한테 그리 살갑지 않습니다. 서울도 비둘기한테는 사근사근하지 않겠지요. 나무도 숲도 먼 이 커다란 고장에 비둘기는 어쩐 일인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먼 옛날에는 대구도 서울도 숲이었기에, 비둘기는 숲이던 이 터를 잊지 못 하는 듯싶습니다. 일이 바빠 책 한 자락 읽을 틈조차 없었습니다. 버겁고 바쁘던 일을 매듭지으면, 이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책마실도 다닐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날개를 활짝 펴고서 온하루를 훨훨 누비고 싶습니다. 2024. 3. 2.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78. 올날 바로 이곳에 있는 날은 ‘오늘’은 ‘오다 + ㄴ + 날’인 얼개이다. ‘온날 = 오늘’이다. 날이 지났기에 ‘지난날’이라 한다. 그러면 앞으로 올 나날을 헤아릴 적에는 ‘오다 + ㄹ + 날’인 얼개로 ‘올날’처럼 쓸 수 있다. 또는 ‘오는날’처럼 써도 어울린다. 올날 (오다 + ㄹ + 날) (= 오는날·모레·앞날·앞. ← 미래, 후일, 훗날, 내일來日, 후後, 이후, 다음번-番, 초현실, 장차, 장래, 전도前途, 향후, 금후, 차후, 추후, 패스pas, 보류, 이순위, 잠시 후, 차次, 차기次期, 후배, 후진後進, 후임, 후계, 후손, 후예, 후세, 자손, 손孫, 손주, 손자, 손녀, 손자손녀, 격세유전) : 1. 바로 이곳에 있는 이때를 지나면 오는 날. 2. 이제 이곳으로 오는 날. 앞으로 맞이할 날. 아직 이루거나 누리거나 펴지 않았지만, 머잖아 오거나 맞는 날. 꿈으로 그리는 날. 79. 어울눈 영어 ‘gender sensitivity’를 1995년부터 쓴다고 하며, 일본에서는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으로 옮긴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일본말씨를 고스란히 받아들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7 잎망울 매화나무 한 그루에 꽃이 활짝 핍니다. 가지 끝에는 잎망울이 알알이 맺힙니다. 활짝 핀 꽃에는 벌이 바쁩니다. 잎망울은 먼저 피어난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벌이 일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깨어나려고 합니다. 산수유도 잎망울이 벌어져요. 나무는 추울 적에 가지 끝으로 움틔워요. 잘린 가지에 걸터앉습니다. 눈을 감아요. 꽃내음이 향긋이 실려옵니다. 가라앉은 마음이 붕 떠오릅니다. 머리맡에 까치가 노래하고 흙바닥에 신발 미끄러지는 소리, 공을 치는 사람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이 더 살랑입니다. 움츠리다가 옷을 여밉니다. 잎망울은 움츠리지 않네요. 겹으로 여민 꽃잎을 보아요. 핀 날보다 움츠린 날이 깁니다. 잎망울이 터지면 벌은 봄을 데리고 와요. 나뭇가지가 바르르 떱니다. 잎망울이 떨고 꽃잎도 떨어요. 봄은 떨리면서 열리나 봐요. 잎망울처럼 설레며 봄을 기다립니다. 2024. 2. 2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