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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20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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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0 만나다

 

해남에 있는 대흥절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어느 이름난 분 글씨가 걸렸습니다. 얼마나 오랜 나날을 이어온 글씨인지 새삼스럽습니다. 이 글씨를 보려고 숱한 사람이 이곳까지 드나들었을 발자취를 더듬습니다. 글씨에는 글로 담은 사람 손길이 있습니다. 뭘 사고서 슥슥 적는 글씨에도, 종이에 붓으로 남기는 글씨에도, 이렇게 절집에 거는 글씨에도, 모두 손으로 스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글씨를 쓰는지 돌아보면, 어느새 낯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즐겁게 차린 밥을 맛보듯, 반갑게 마주하는 마음을 만납니다. 멀리 나들이를 가면서 스치는 길에서 나무를 만납니다. 내가 사는 곳하고는 다른 나무입니다. 내가 쓴 글로 묶은 책은 어떤 나무였을까요? 나를 반기는 분한테 내가 쓴 책을 건네다가 ‘나한테 와준 나무냄새’를 훅 느낍니다. 마르지 않는 하늘빛처럼 만납니다.

 

 

 

 

2024.03.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