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6 일손 가게를 접습니다. 들인 살림을 몽땅 빼야 해요. 낱낱을 헤아려 덩어리로 묶고 적어 둡니다. 어떤 곳은 내가 미리 찍고 꾸러미에 담습니다. 이 꾸러미를 돌려받아 하나씩 뜯으면 종이에 적힌 대로 보는 셈입니다. 살림을 빼면서 돈이 맞는지 서로 맞추어요. 들일 적에도 하나하나 찍고, 나갈 때도 하나하나 찍습니다. 들어올 적에는 들이는 사람이 밑일을 합니다. 닫을 적에는 내가 밑일을 합니다. 오는 곳마다 꾸러미를 모아 담으려고 여럿이 옵니다. 이런저런 일을 해놓으니 고맙다고 꾸벅 절합니다. 나는 서로서로 섞이지 않게 품을 들이는 하루입니다. 가게를 여는 일도 닫는 일도 품이 잔뜩 들어갑니다. 손이 아프지만, 이 아픈 손으로 허리를 펴라고 톡톡 쳐줍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두 손을 서로 주무릅니다. 깍지를 끼고 꾹꾹 눌러요. 손가락 끝마디가 굽도록 손은 억척스럽게 일합니다. 2024. 2. 22.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74. 네가락놀이 듣기에 즐겁도록 퍼지는 소리를 따로 ‘가락’이라 한다. ‘소릿가락·노랫가락’처럼 쓰는데, 노랫가락이 어우러진다면 ‘가락두레’나 ‘어울가락’이라 할 만하고, ‘가락숲’ 같은 말도 지을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네 가지 ‘가락틀’을 살려서 펴는 ‘가락마당’이 있다. 이때에는 ‘네가락놀이’라 할 만하다. 네가락놀이 (네 + 가락 + 놀이) : 네 사람이 네 가지 가락으로 벌이거나 즐기거나 펴거나 나누는 놀이. 흔히 꽹과리·징·장구·북 네 가지로 노래판을 벌인다. (= 놀이마당·놀이두레. ← 사물놀이四物-, 풍물風物) 75. 풋글 어떻게 쓰더라도 모두 ‘글’이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대로 살짝 적어 놓고서 나중에 다시 살피기도 한다. ‘적다·적바림’을 가르듯, 글을 놓고도 ‘글·밑글’을 가를 만하다. 가볍게 남긴 글이라면, 문득 옮긴 글이라면, 살짝 짬을 내어 후다닥 쓴 글이라면, 앞으로 더 살피거나 살릴 뜻일 테니 ‘풋글’이란 낱말을 새롭게 엮을 만하다. 풋글 (풋 + 글) : 가볍게·처음으로 적거나 옮긴 글. 나중에 살리거나 쓸 생각으로 몇 가지만 적거나 옮긴 글. (= 밑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5 나잇값 열한 해 동안 하루도 가게일을 쉰 적이 없어요. 가게를 아주 닫고서 쉴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둘이 섬에 가고 싶습니다. 둘이 하늘을 날아 이웃나라로 마실하고 싶습니다. 나들이 가방을 한 벌 삽니다. 예전에도 나들이 가방을 산 적 있지만, 그무렵에는 몇 달을 드러눕는 바람에 끌지 못 했어요. 두 딸이 엄마집에 오면 저희 짐을 이 나들이 가방에 담아서 하나씩 갖고 갔어요. 새로 장만한 나들이 가방은 나 혼자 쓰고 싶습니다. 두 딸 앞에서 나들이 가방을 자랑했는데, 이튿날 짝꿍이 꾸지람합니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해요. 딸도 쓸 일이 있으면 마음껏 쓸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군요. 하기는, 나들이를 날마다 다니지 않을 테니, 딸이 빌려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모처럼 혼자 누리고 싶은 살림이기에 나잇값에 걸맞지 않은, 또 엄마답지 않은, 그렇지만 나다운 마음이고도 싶습니다. 2024. 2. 10.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도시 동틀 즈음이면 멧새가 하루를 알리고 개구리도 풀벌레도 잠들고 새벽이슬이 반짝여 아침노을이 춤추면서 온누리에 무지갯빛 밝고 햇볕이 고루 깃들어 풀꽃나무가 춤추네 나비가 나는 낮에는 나도 너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터뜨리고 뛰놀면서 오늘을 실컷 누려 땅거미 질 무렵 제비가 쉬고 박쥐가 깨고 숨바꼭질로 별빛 헤아리다가 우리도 길게 하품 ㅅㄴㄹ ‘도시(都市)’는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지요. 우리말로는 예부터 ‘고을·고장’이라 했고, 가장 커다란 고장은 ‘서울’이라 했습니다. 흙을 지으며 살아가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서울’이라는 낱말로 ‘도시’를 가리킵니다. 이제 온나라 어디에나 쇳덩이(자동차)가 넘치는 바람에 빈터가 거의 사라졌고, 빈터나 골목이나 길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도 사라졌습니다만, 1990년 언저리까지 신나게 뛰놀며 바람을 가를 뿐 아니라, 벌나비랑 새랑 구름이랑 빗물하고 동무하는 어린이가 꽤 많았습니다. 이름은 ‘도시’ 또는 ‘고을·고장·서울’이었어도 철빛이 다르고 하루빛이 다른 살림이었으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전쟁 주먹을 흔드니 사납고 꽃씨 한 톨 쥐니 상냥해 발길질 해대니 거칠고 맨발로 풀밭 거닐어 기뻐 총칼은 그저 죽임길이야 무엇도 안 살리고 스스로 캄캄히 가두어 무엇이든 태우고 밟아 숲짐승은 낫도 호미도 없이 들숲을 푸르게 돌봐 헤엄이는 배도 나루도 없이 바다를 파랗게 감싸 싸우고 다투고 겨루면 빼앗고 가로채고 거머쥐겠지 사람하고 살림하고 살아가면 나누고 노래하고 다사로워 ㅅㄴㄹ 주먹으로 치고박는 싸움도 서로 다치고 아프고 괴롭습니다. 누가 앞서느냐 하는 다툼질도 서로 다치거나 아프거나 괴롭기 일쑤입니다. 누가 뛰어나느냐 하는 겨루기도 서로 다치거나 아프거나 괴롭지요. 모든 ‘싸움·다툼·겨룸’은 살림하고 등진 채 죽음으로 치닫습니다. ‘전쟁(戰爭)’은 “1.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 2.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가리킨다지요. ‘싸움’을 한자말로 옮겨 ‘전쟁’인데, 우리 삶터 곳곳에 이 말씨가 스미거나 퍼졌습니다. 그만큼 우리 하루가 어울림·어깨동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국가 톨스토이는 외쳤어 “국가는 폭력이다!” 나는 속삭여 본다 “숲을 잊으니 사슬이야.” 내가 나답게 날면서 네가 너로서 노래하는 아름누리 별누리 꽃누리 그려 본다 벼슬도 감투도 없이 위아래 왼오른 치워 어진 어른이 일하고 철드는 아이가 노는 “숲으로 사랑하니 사람이야.” 한마디 도란도란 나눈다 오늘 하루를 푸른들로 모든 나날을 파란하늘로 ㅅㄴㄹ ‘국가(國家)’는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主權)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 국민·영토·주권의 삼요소를 필요로 한다 ≒ 나라·방가·방국”처럼 풀이를 하는데, 우리말로는 ‘나라’입니다. 사람들은 예부터 ‘나라·나라님’이라 했고, ‘나라님·임금’처럼 윗자리에 서서 아랫자리에 눌린 수수한 사람들을 옥죄는 벼슬아치를 ‘나리’라 일컫곤 했습니다. 이른바 우두머리가 서면서 힘을 부리는 이가 틀(계급)을 세울 적에 ‘나라(국가)’라 합니다. 사람들은 높낮이(신분·계급·지위)가 없을 적에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이좋게 마을을 이룹니다만, ‘꽃누리·꽃나라·꽃판·꽃밭’처럼 섞어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4 몽돌 바닷가에 옵니다. 드넓은 모래밭을 걷습니다. 그물막 뒤켠으로 모래가 쌓여 작게 덩이를 이룹니다. 썰물로 바닥이 드러나자 몽돌 하나도 드러납니다. 밀물이 밀려오자 몽돌이 모서리만 남습니다. 하염없이 바닷물과 몽돌을 바라보는데, 이 몽돌이 꼭 사람처럼 달리다가 멈추다가 하는 듯합니다. 어릴 적 살던 멧골에는 돌이 참 많았습니다. 바위가 얇은 켜는 살짝 밟으면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돌이 푸스스 떨어지고 떼굴떼굴 굴러가요. 어느 날은 돌을 잘못 밟아 자빠졌어요. 오늘 바닷가에서 보는 납작한 몽돌은 닳고 닳아 둥글둥글 구릅니다. 몽돌은 물결을 타면서 놀이를 하듯 일어났어요. 물살에 휩쓸리다가 바람을 잡아당기며 웃어요. 뾰족하면 ‘모서리’인데, 물과 바람에 모를 깎으면 ‘몽톡’하다고 해요. 모가 나면 뾰족하지만, 세모나 네모는 든든히 서요. 모를 지우면 신나게 구르며 놀고 노래해요. 2024. 2. 7.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우리말 13 늦겨울 비 봄을 몰고 오는 비입니다. 어제 봄맞이(입춘)였습니다. 아침에 내리는 이 비는 봄을 그리는 비이면서 겨울을 보내는 비입니다. 늦겨울비이고, 이른봄비입니다. 구름이 아침해를 가려 어둡고 찌뿌둥합니다. 내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쉬고 싶은 날입니다. 늦잠꾸러기이고 싶습니다. 찬비는 흙을 흔들어 풀을 깨우고 나무를 깨우고 꽃망울을 깨웁니다. 장대비처럼 세차지 않아요. 가랑비처럼 부슬부슬 내립니다. 하늘을 말끔히 씻고 뿌연 먼지를 닦아요. 맵찬 바람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 한 꺼풀 누그러져요. 비 오니 날궂이 해요. 배추지짐 먹고, 수꾸떡 먹어요. 겨우내 자란 새싹을 모판에 옮겨심어요. 처마에서 작대기도 다듬고, 집안에서 쉽니다. 비는 겨울머리에서는 추위를 부추기지만, 여름머리에서는 무더위를 식혀요. 철이 바꾸는 비입니다. 섣달그믐을 지나가는 늦겨울비를 보며 묵은 마음도 씻어냅니다. 2024. 2. 7.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우리말 12 겨울나기 겨울을 앞두면, 우리 어머니는 으레 빨간김치 하얀김치를 독에 담습니다. 처마 밑에는 무잎과 배춧잎을 널어서 시래기로 말려요. 아버지는 여름에 나무를 베어 말려요. 톱으로도 도끼로도 땔나무를 쪼개요. 멧골짝 겨울은 더 일찍 오고 더 춥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엄마아빠가 장작을 피워서 밥을 짓고 물을 데우고 소죽을 끓이고 메주를 쑤고 조청을 고고 두부를 찌고 팥죽을 끓이고 호밤벅벅을 했어요. 나는 이 곁에서 말랑감에 고욤에 배추뿌리에 고구마를 겨우내 주전부리로 삼으면서 산수유를 바수었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오늘 나는 대구라는 큰고장에서 딱히 대수로이 겨울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장작을 안 패도 겨울 걱정이 없어요. 매운바람에도 꽃눈이 부푸는 겨울 끝에 겨울나기를 돌아봅니다. 이미 겨울은 저물어 가지만, 어떤 살림으로 새해를 맞이했는지 되새깁니다. 2024. 2. 4.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1 설거지 나는 밥을 짓습니다. 눌은 판을 불에 올립니다. 짝은 옆에서 무를 갈다가, 어느새 눌은 찌꺼기를 벗겨 놓습니다. 이밖에 다른 설거지를 옆에서 뚝딱뚝딱 하는군요. 집에서 큰일을 치르고 나면 개수대가 수북합니다. 언제 이 설거지를 다 하느냐 싶지만, 곁에서 거드는 손길이 있으니 하나둘 사라집니다. 국을 담던 나무그릇도, 지짐이를 올린 나무접시도, 술을 올리던 그릇도, 하나하나 비누 거품을 내고서 헹구고는 마른행주까지 써서 반들반들 닦아 놓습니다. 나는 밥을 짓다가 흘금흘금 구경합니다. 설거지뿐 아니라 비질에 걸레질도, 빨래에 옷개기도, 살림을 치우고 돌보는 모든 일도, 혼자보다는 둘이서 거뜬히 가볍게 후딱 할 만합니다. 예전에 울 엄마는 쌀뜨물로 그릇을 부셨어요. 구정물을 버리고 맑은물로 한두 벌 헹구고서 마당에 나비물을 뿌렸지요. 오늘 나는 둘이서 짓는 부엌살림을 누립니다. 2024. 1. 3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