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1] 수박
여름이면 마을에 수박 장사가 왔다. 경운기에 가득 싣고 알리면 마을 사람이 몰려와서 고른다. 손으로 톡톡 두들겨 통통 맑은소리가 나면 잘 익은 수박이고 퉁퉁 끊어지면 껍질이 두껍다. 그래도 속은 갈라 봐야 허벅허벅하거나 여물고 짙은지 알기에 아저씨가 세모로 칼집을 내어 속을 보여주었다. 찬물에 수박을 담가 두었다가 시원하다 싶을 적에 쟁반에 놓고 썬다. 수박 한 덩어리 자르면 가운데부터 골라 먹고 숟가락으로 껍질까지 긁어먹었다. 우리는 여름이면 수박이 먹고 싶어 작은고모네와 큰고모네에 갔다. 큰고모네는 살림이 넉넉했는데 구두쇠 이름이 붙어 다녔다. 수박은 마루에도 냉장고에도 있었다. 밭에서 수박을 팔고 남은 수박이 있다고 곤이하고 희야하고 밭으로 갔다. 비탈진 멧기슭 밭에 덩굴을 헤치고 수박을 땄다. 손날을 세워서 힘껏 수박을 내리쳐서 수박을 쪼갰다. 이랑에 쪼그리고 앉아 실컷 먹었다. 코가 수박에 닿고 턱에 닿아 물을 뚝뚝 흘리면서 크다 만 수박 일 곱 통을 그 자리에서 먹었다. 집에 와서도 냉장고에 든 수박을 꺼내 먹었다. 고모는 마루에 서서 많이 먹는다고 눈을 부라리며 성을 냈다. 우리는 아랫칸에 모여 고모는 욕심쟁이라고 흉봤다. 큰고모네 아이들 작은고모네 아이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셋이나 갔으니 열이 넘는 아이들로 고모는 얼마나 어수선했을까. 고모 몰래 먹는 수박은 더 맛있던지. 이제 생각하면 우리가 따먹은 수박은 어른 손바닥에 드는 크기로 먹지 못할 수박인데도 처음으로 수박밭 이랑에 앉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런데 그날 고모가 수박 많이 먹었다고 나무란 일 때문일까. 나는 수박을 잘 안 먹는다. 아주 목이 마르면 몇 조각 먹는다. 수박을 먹으면 오줌이 마려워서 귀찮아 안 먹기도 하지만, 어린 날 놀러 간 곳이라고는 두 고모네 뿐이니깐. 미움받으면 다음에 오지 못하게 할까 봐 꾸중 듣던 일이 떠올라 먹지 못했다. 수박은 뜨끈뜨끈 볕을 먹고 자라서 속이 붉을까. 두껍고 얼룩진 풀빛과 덩굴을 그늘 삼아 단단하게 자라기에 달고 고운 물로 우리 몸에 깃든 찌꺼기를 여름날에 걸러 주는 듯하다.
2021. 08. 3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