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5. 짐꾼 아들하고 가게에 갔다. 유리문이 활짝 열리자 아들이 저쪽으로 뛰어가서 수레를 끌고 온다. 잿빛 장바구니를 얹은 작은 수레에 봄나들이 가서 먹을 샛밥을 골라 담는다. 어쩐 일인지 좋아하는 과자를 안 사고 부피가 큰 과자 둘 담는다. 모자랄까 해서 아들이 좋아하는 초코송이하고 고래밥을 슬쩍 담아 놓았다. 돈을 내는 동안 아들은 가게에서 거저 주는 네모난 종이상자에 주섬주섬 담는다. 이제 상자를 들려고 보니 아들이 먼저 든다. “엄마, 내가 들고 갈게.” “안 무거워?” “어, 괴안아 나는 남자잖아.” “앞 잘 보고 천천히 가.” 자동차를 반듯하게 세우는 동안 아들이 엘리베이터 단추를 꾹 누르고 기다린다. 계단을 둘씩 건너뛰어 오르자 아들이 짐을 무릎에 올리고 상자를 벽에 기대다가 꼭 누르던 손을 떼더니 깨금발하고 10층 단추를 누른다. 짐을 풀고 쌀을 씻는데 방에 들어갔다 나온 아들이 노란 쪽지를 둘 건넨다. “잠 와. 잠 와. 잠 와. 잠 와. 초특급 잠 와.” “엄마 잠 오면 어떡해? 풀이?” “잠 오면 자야지” 말을 마치자 마룻바닥에 벌러덩 눕는다. 빙 둘러서 말하고 얼렁뚱땅 숙제를 미루고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아들 #딸 #좋은말씀 #명언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3- 끝없이 살 것처럼...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어제는 비가 내려서 기분이 참 좋았어. 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깨끗이 가셔 주는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좋았단다. 멀리서 짐을 싣고 온 큰수레에서 짐을 내리는 일꾼들의 빠른 움직임에서 비를 맞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읽을 수도 있었어.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설쳐서인지 집을 나서며 잠을 자면 참 맛있게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알맞게 어두운데다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으면 절로 잠이 오거든. 그래서 그때까지 자고 있는 너희가 부럽기도 했다. 앞낮(오전)에는 토박이말바라기 마름빛모임(이사회) 갖춤을 하느라 바쁘게 보냈고 낮밥(점심)을 먹고는 토박이말바라기 참모람(정회원)과 운힘다짐(업무협약)을 한 일터에 보낼 달자취(달력)와 적바림책(수첩)을 챙기며 바쁘게 보냈어. 일을 마친 뒤 할아버지를 모시고 눈 보는 집(안과)에 다녀왔단다. 눈이 마뜩잖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손을 좀 보셔야 했지만 내 눈은 걱정할 것 없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4. 천 원 다발 학교에 간 아들이 전화기 너머로 조른다. “엄마, 멜로디언하고 리코더 갖다 줘!” “너 그럴 줄 알았어.” 어디에 두었더라, 붙박이장을 열었다. 아이들 문구만 두었기에 부피 큰 멜로디언을 쉽게 찾는다. 리코더는 또 어디 있더라, 학교 종이 울리면 어떡하나. 마음이 바쁘다. 단소는 첫째 아이만 썼으니 거기 있을지 몰라. 첫째 아이 무지개 서랍장 맨 밑 칸을 당긴다. 단소를 둔 곁에서 분홍빛 리코더를 찾았다. 차를 몰고 길 건너 학교로 갔다. 아들이 전화 한 뒤로 쭉 문 앞에서 기다렸는지, 돌기둥에 앉았다가 빨간빛 차를 보고 저만치에서 웃으며 달려온다. 창문을 내리고 애써 찾아온 악기를 건넨다. 근데 아들이 손을 내밀다 멈춘다. 손에 든 악기를 빤히 바라보던 아들 낯빛이 갑자기 뾰로통하다. “왜 그래, 늦겠다 얼른 받아?” “쪽팔리게 빛깔이 이게 뭐야? 너무 했다.” “누나들한테서 물려받아 쓰는 거라 괴안아, 다들 그래.” “멜로디언은 크니깐 그럴 수 있다지만, 리코더는 그렇잖아.” 파란빛을 좋아하는 아들이 누나가 쓰던 꽃분홍빛 리코더를 보자 마지못해 건네받고 샐룩샐룩하며 들어간다. 빛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3. 회초리 편지통을 추스르다가 바닥에 깔린 첫째 아이 일기장을 펼쳤다. 아홉 살 적에 쓴 일기에 셋째 아이 이야기를 썼다. 병원에 따라가서 뱃속 아기를 본 다음 참으로 아기를 빨리 보고 싶어 했다. 태어날 날이 가깝자 아기 옷을 사러 간 이야기도 적혔다. 두세 줄뿐이다. 일기에 있던 아기가 태어나 어느덧 그 애도 아홉 살이 되었다. 며칠 앞서 갖은 일이 슬그머니 드러났다. 아들이 2학년이 된 이레에 일어난 일이다. 첫날인 월요일에 집몫(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네 번 했다. 전화를 받으니 아주 크게 소리내며 엉엉 우는 소리만 들린다. 나는 우는 소리에 다친 줄만 알고 깜짝 놀랐다. “학원에서 카드 잃어 버렸어!”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엉엉 우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이도 새 학년 올라간 첫날이지만 나도 이날은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긴 첫날이라 사람들 눈치를 살핀다. 곁에 앉은 사람한테 우는 소리가 들릴까 싶어 얌전하게 말했다. “엄마 일 마치고 집에 가서 사줄게, 알았지?” 아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내가 한 말을 지키려고 빨리 달려왔다. 학교 앞 문구점으로 아들을 데리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2. 낯씻기 날마다 머리 수그리고 일하느라 사람 얼굴을 제대로 못 본다. 어쩌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쳐도 누군지도 몰라 모른 척하고 내 일을 한다. 누가 곁에 와서 아는 척 건네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살갑게 맞는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들어오면 하얀 입가리개만 눈에 들어온다. 날이 추우니 차림새가 어둡고 입을 가려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도무지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가리개를 해서 눈빛이 여느 때보다 부드럽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더 차갑게 보이는 사람이 더 예쁘게도 보인다. 사람들 얼굴을 제대로 본 지가 아득하다. 그나마 나는 사람들 눈빛을 보고 목소리도 듣지만, 첫째는 집에 갇혔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집에서 일하는 날이 차츰 늘어난다. 이제는 숨이 막히는지 갑갑해서 못 견딘다. 좁은 곳에 갇혀 지내면서 때때로 전화하고 말을 받아 주면 수다가 길어지고 아예 끊을 생각을 않는다. 끊자고 하면 도리어 놀아 달라고 혀짧은 말을 한다. 일을 집에서 하고 셈틀로 보며 일을 주고받고 글뭉치는 사람을 불러서 보낸다. 이참에 얼굴에 난 점을 뺄까 묻는다. 돌림앓이가 한 해를 넘고 집에서 일하니 입을 가리지 않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1. 콩 콩을 아무렇게나 흙에 묻었다. 하룻밤 지나고 나니 싹이 돋았다. 머리에 까만 껍질을 뒤집어쓰고 쑥쑥 오르고 줄기가 가느다랗게 웃자라 넝쿨로 자랐다. 혼잣힘으로 서지 못해 나무젓가락을 꽂아 기대 준다. 몇 밤 자고 나니 더 높이 자라 젓가락을 훌쩍 넘는다. 꽃집에서 얻은 꼬챙이를 둘 꽂았다. 해가 잘 드는 창가로 자리를 옮겨도 줄기가 시들시들 자란다. 잎이 타듯이 말라 한 잎 두 잎 떨어지길래 저절로 폭삭 내려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날 물을 주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잎이 떨어진 줄기에 콩꼬투리가 주렁주렁 달렸다. 콩을 심은 지 넉 달이 접어든다. 지난해 시월에 냉장고에 있던 검은 콩 몇 알을 작은 나무 곁에 심었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 곁이라 물을 먹는 흙을 눈여겨보았다. 한 마디마다 떡잎을 벌리며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알이 여물지 않은 것이 더 많지만 두 알씩 든 꼬투리 둘은 단단하게 여물었다. 내 손으로 처음 키워낸 콩꼬투리를 만졌다. 콩나물로 기르는 일하고 사뭇 다르다. 우리 집 숟가락통을 처음 살 적에는 시루로 쓰려고 했다. 구멍이 숭숭 나고 둥근 도자기가 둘 붙었다. 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0. 운전기사 시동 단추를 켜자 빨간 그림(!)이 뜬다. 집으로 오는 길모퉁이에 있는 바퀴집 마당에 차를 세운다. 아저씨가 바퀴를 빼서 바람을 넣고 물속에 담그고 꾹 누른다. 뽀글뽀글한 물방울이 안 일어나면 바람이 안 센다고 보여준다. 다른 바퀴도 봐야 하는데 바람 넣는 긴 줄 기계가 얼었다. 슬쩍 본 앞바퀴가 무척 닳았다. 곁님은 바퀴를 바꾼 지 몇 해 안 된다고 잘못 몬 버릇이라고 거든다. 차를 몬 지가 스물일곱 해가 넘는다. 갓 면허를 받고 곁님 차를 몰았다. 일터가 집에서 가까운 곁님은 자전거를 타고 나는 곁님 차를 몰거나 가끔 버스를 탄다. 1999해 12월에 빨갛고 작은 차를 샀다. 아들을 밸 적에 몰던 차를 열일곱 해를 몰았다. 기어가 옴짝달싹하지 않아 차를 버렸다. 일터에서 쓰는 차도 있고 곁님 차도 있어 나는 차를 사지 않으려고 했다. 곁님은 안 그래도 된다고 하지만 일터를 잘 꾸려가라고 어머님이 보태주셨는데, 차를 사면 시골 어른이 못마땅히 여길 듯했다. 곁님이 시골에 갈 적에 이러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미는 차를 몰 만하다. 그 차 오래 탔으니 바꿀 때도 됐다. 너도 조금 보태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9.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날인데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기 어렵다. 아이들이 훌쩍 커서 나가고, 믿는 종교도 없어,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듯하다. 그저 쉴 수 있는 날로만 여기지 싶다. 기분을 내려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노래를 올렸는데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대꾸가 없고 딴말만 한다. 내가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우면 교회에 갔다. 며칠 도장 찍는 재미로 가고 선물 받는 재미로 갔다. 그런데 엄마는 교회 나가는 사람을 예수쟁이라 부르고 무엇이 못마땅한지 교회를 가지 못하게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여름 수련회도 가지 못하게 해서 겨우 갔다. 그날부터 교회는 가고 싶어도 참다가, 고2 때 동무 따라 몇 번 가고, 마흔이 되어서는 종교를 하나 갖고 싶었다. 목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았다. 나라밖으로 나들이하는 길로 여겼다. 스스로 아는 언니한테 교회에 좀 데리고 가라고 졸라서 몇 번 나갔다. 다섯 번쯤 나갔을 때 곁님이 눈치를 채고, 교회 나가려면 통장 다 꺼내놓고 아주 가란다. 언니하고 다짐한 세 번을 더 채우고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우리 집안은 종교가 없지만, 시집에서는 교회 다니는 일을 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8. 숨 스물넷 봄에 함께한 뒤 시골에서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옷을 차려입고 아버님께 절을 드린다. 어머님이 차리신 밥을 먹고 일을 다녔다. 세 어른하고 지내면서 집안에서 하는 일을 차근차근 배웠다. 한 달 남짓 함께살다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곁님이 어버이 집을 끔찍이 챙기느라 쉬는 날이면 찾아가 하룻밤 묵는다. 함께살고 여섯 달이 지날 무렵 큰할머니 제삿날에 우리가 쓰던 방에서 첫째 아이를 품었다. 아기가 조금만 늦게 오길 바랐다. 일터에서는 짝을 맺으면 어떤 구실을 달아 내쫓던 때인데, 아기가 있으면 더 눈총을 받는다. 이 무렵 높은 자리 어느 분이 주식하고 증지로 장난질을 하고 밑사람들은 그분을 몰아내려고 자리가 어수선했다. 우리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다. 곁방 하나 딸린 집이고 어설픈 부엌에서 사글세로 살고, 곁님이 예전에 몰고 다니던 자동차 값을 나눠서 갚느라 둘이 벌어도 살림이 빠듯해 아기를 새로 맞아들일 겨를이 없었다. 옛사람이 보내주신 빛으로 여기면서도 나쁜 마음을 먹었다. 딸이면 지우고 아들이면 낳기로 했다. 앞서 아이를 없앤 일이 있어 또 지우면 다시는 아이를 못 밸 듯해 두렵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7. 잠 늦잠을 잤다. 알림소리를 잠결에 두 차례 들었는데 끄고 다시 잤다. 깨어나니 여덟 시쯤 되었다. 눈이 뻑뻑하여 거울을 보니 퉁퉁 부었다. 나이가 들수록 눈꺼풀이 밉게 바뀐다. 잠을 푹 자면 붓고 덜자면 깊은 주름이 드러나고 눈도 뒤통수로 당겨 움푹하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 네 시나 다섯 시만 되면 깨는 몸이라는데, 나는 여섯 시간이나 일곱 시간은 자야만 하루를 버틴다. 자다 깨면 다시 잠들기까지 한두 시간 걸리고 곁님이 뿜는 큰 숨소리하고 입을 쩝쩝 다시는 소리에 쉽게 깬다. 잠귀가 밝다. 셋째가 태어나고 열 살까지 같이 잤다. 열 해를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자느라 잠이 모자랐다. 아들은 아무리 꾸지람해도 못 고쳤다. 잠들었는가 싶어 슬그머니 나오면 바로 안다. 다시 곁에 가서 재운다. 이런 일이 잦아 큰방으로 건너와도 내 귀는 아들 방에 두고 아들은 내 발끝에 둔다, 둘 다 잠귀가 밝다. 갓난아기 때는 아기라서 그렇다지만 일곱 살이 넘어서도 같이 자고 열 살까지 이어졌다. 내 가슴팍에 헐렁하게 안기거나 맨손이 제 몸에 닿아야 포근하게 잤다. 나는 말할 때 뜸을 안 들고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