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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13. 회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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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3. 회초리

 

  편지통을 추스르다가 바닥에 깔린 첫째 아이 일기장을 펼쳤다. 아홉 살 적에 쓴  일기에 셋째 아이 이야기를 썼다. 병원에 따라가서 뱃속 아기를 본 다음 참으로 아기를 빨리 보고 싶어 했다. 태어날 날이 가깝자 아기 옷을 사러 간 이야기도 적혔다. 두세 줄뿐이다. 일기에 있던 아기가 태어나 어느덧 그 애도 아홉 살이 되었다.

 

  며칠 앞서 갖은 일이 슬그머니 드러났다. 아들이 2학년이 된 이레에 일어난 일이다. 첫날인 월요일에 집몫(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네 번 했다. 전화를 받으니 아주 크게 소리내며 엉엉 우는 소리만 들린다. 나는 우는 소리에 다친 줄만 알고 깜짝 놀랐다.

 

“학원에서 카드 잃어 버렸어!”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엉엉 우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이도 새 학년 올라간 첫날이지만 나도 이날은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긴 첫날이라 사람들 눈치를 살핀다. 곁에 앉은 사람한테 우는 소리가 들릴까 싶어 얌전하게 말했다.

 

  “엄마 일 마치고 집에 가서 사줄게, 알았지?”

 

  아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내가 한 말을 지키려고 빨리 달려왔다. 학교 앞 문구점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잃어버린 카드와 똑같은 카드를 고르고서야 숨을 고른다.

 

  화요일은 가위를 잃었다고 운다. 오 센티미터 되는 크기에 손잡이가 파란빛이다. 아주 작아 내 손가락은 안 들어갔다. 아들이 비타민을 하나씩 잘라 먹을 때 쓴다. 아들이 없어졌다고 떼를 썼다. 집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데 집에 바로 와서 그 가위를 찾아 달란다. 전화로 한참을 입씨름하다 뿔이 치밀어 짜증을 냈다.

 

  “날마다 만지는 사람은 너뿐인데, 왜 만날 나한테 없다고 찡찡거리냐고!”

 

  수요일은 학교 마치고 동무하고 서로 빨리 뛰어가다가 넘어졌다. 안경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눈 밑이 조금 찢어졌다. 피아노를 서로 차지하고 빨리 치려다 계단에서 잡아당기고 밀치다 다쳤다. 선생한테 아이를 부탁했다. 약국에 가서 약을 바른다. 나는 일을 마치고 바쁘게 집으로 달려와서 아이를 태워 안경집에 갔다. 잘 부러지지 않는 테로 새로 장만했다.

 

  목요일은 영어 배우고 집으로 오면서 공중전화를 했다. 비가 온다고 우산을 갖고 오란다. 나는 일하느라 가지 못해 곱게 타이른다.

 

  “옷 젖으면 빨면 되니 마음 쓰지 말고, 등짐에서 종이 하나 꺼내 머리만 비가 안 맞도록 덮어쓰고 얼릉 가, 알았지.”

 

  금요일은 길에서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학교 마치고 문구점을 지나가다 한눈을 팔아서 엎어졌다. 엄지손가락에 빨갛게 피가 맺히고 왼쪽 다리에 멍이 들었다. 이마에 두 군데나 0.2 센티미터로 까졌다. 아들은 이참에 조른다. 손가락이 아파 피아노 치러 못 간다고 전화를 붙잡고 핑계를 늘어놓는다.

 

  토요일은 일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아들이 학교 마치고 돈 한 푼 넣지 않고 공중전화를 했다.

 

  “엄마, 돈 천오백 원만 좀 줘. 카드 사고 싶어.”

  “집에 와서 돈 받아 가.”

  “엄마가 좀 갖다 줘.”

  “그럼 문구점에 전화해 놓을 테니 가서 갖고 와.”

 

  전화를 끊고 나니 마침 둘째가 학교 마치고 들어왔다.

 

  “근이가 카드를 외상 하고 사는데, 경안문구점에 돈 좀 주고 온나.”

 

  둘째 아이는 심부름을 시켜도 군소리 않고 돈을 들고 나간다. 둘이 길에서 만나서 집에 같이 들어왔다.

 

  새 학년이 된 날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자꾸 일이 터졌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하고 몸이 지치는데 닷새도 못 넘기고 드디어 곪아터진다.

 

  첫째 아이는 입시 설명회에 엄마가 꼭 가 보란다. 바뀌는 흐름을 알아오란다. 남 탓에 바깥 탓을 하면서 엄마한테 이것저것 시킨다. 입시에 어둡다고 첫째 아이가 살림 탓을 자꾸 해서 크게 나무랐다. 곁에 오 분만 같이 있으면 다툼으로 번진다. 몹시 거북했다.

 

  밤이 깊었다. 셋째 아이가 숙제를 다 했을까 하고 책을 들추어 보니 흉내만 냈다. 아이 나름대로 애쓴 자국은 남았다. 늦었으니 보는 시늉만 슬쩍 하고 넘어간다. 그렇지만 일기는 이대로 넘길 수가 없었다. 아들은 쓴 일기를 보지 못하게 한다. 숙제를 꼬박꼬박 잘하면 안 보여줘도 되나, 제대로 안 해가서 꾸지람 받은 날은 나를 들들 볶아대며 못살게 군다.

 

  멍한 듯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고 눈을 껌뻑이며 눈치를 차린다. 씩씩거리며 버티는 엄마를 보더니 아들 얼굴이 굳는다. 공책을 가리던 손을 치우고 겨우 일기장을 내민다. 어림한 대로 글씨가 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듯 하고 지렁이 한 마리가 지나간 듯 갈기고 달랑 넉 줄 써놓았다. 골난 엄마는 무섭고 선생한테 보여주려는 그 마음은 씩씩하나, 카드놀이에 마음을 빼앗겨 나머지 일을 얼렁뚱땅 넘긴다.

 

  나는 시골에서 꺾어온 대나무 회초리를 꺼냈다. 부러지면 쓰려고 아들이 맞아도 덜 아픈 것으로 골라 꺾어놓은 대나무이다. 놀고 싶은 아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오락게임(닌텐도)에 마음 빼앗기고 또 카드에 홀려 말썽을 부리니 모질게 나무랐다. 그리고 일기장을 빼앗아 아들이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말고 차라리 학교 가서 그냥 몸으로 때워.”

 

  마구마구 못되고 거친 말을 마구 쏟아냈다. 두려운 아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다. 고개 숙인 안경에 가득 고였다. 눈물에 마음 흔들려서는 안 돼. 나는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회초리로 아들을 세 대 때린다. 한 대는 마음 없는 일기, 두 대는 카드로 엉망인 일, 세 대는 두 번 다시 같은 모습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아들 종아리에 내리쳤다. 그리고 내가 나를 못 이겨 방바닥을 세차게 힘껏 한 판 내리쳤다. 대나무 회초리가 내 아귀힘에 터져 끝이 너덜너덜했다.

 

  때리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마음은 갈기갈기 더 찢어지듯 아팠다. 이렇게까지 악을 써야 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버거웠다.

 

  그래서 이제 내가 회초리에 맞는다. 회초리를 첫째 아이한테 건넸다. 힘껏 내 종아리를 때리라고 말했다. 참말로 세게 때린다. 살짝 아팠다. 그다음은 둘째에게 건넸다. 조금 덜 아팠다. 이제 회초리가 아들 손에 넘어갔다. 아들한테 있는 힘껏 엄마 종아리를 때리지 않으면 네가 맞는다고 말했다. 아들은 눈치를 살피다가 내 종아리를 때린다. 때리는지 간지럽히는지 헷갈렸다. 더 세게 때리라고 아들한테 소리를 쳤다.

 

  “다시, 다시 때려!”

 

  이 말을 되풀이하다가 나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집안이 쥐죽은 듯 고요하다.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새 일기장을 아들한테 건넨다.

 

  어느새 마음 가득 담긴 일기를 쓰고 글씨도 반듯하게 쓴다. 아까까지 아프게 괴롭히며 윽박지를 때와는 달리 ‘잘했다’ 고 칭찬했다. 아들이 종아리가 아플 듯한데, 그 말 한마디에 생긋 웃는다. 스스로 잘하고 있는 첫째도 불러 앉히고 ‘우리 잘하자’ 말하고 둘째한테도 같은 말을 했다.

 

  어린 것이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없어 얼마나 허전했을까. 늘 전화하며 보채는 아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쓰리다. 학교에 들어가고 우리는 이 굴레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한다. 아들이 울고 떼쓰면 바라는 일을 이룬다는 나쁜 버릇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나는 학교라는 빛을 본다. 아이를 학교에 맡기고 일을 한다. 집에서 해주지 못 하는 일을 학교서 배우고 또래하고 어울린다. 또 전화가 있어 그때그때 일어난 일을 빠르게 추슬러서, 일하며 늘 아들하고 곁을 나눈다.

 

 아이를 때렸으니 나도 그 값을 치른다. 온힘을 쓰며 쏟아낸 말로 나는 아들이 회초리에 맞은 곱으로 몸이 앓는다.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에 아들 방에 간다. 속옷 바지를 걷어 종아리를 훑는다. 뜻밖에 회초리에 맞은 자국은 없었다.

 

나는 늘 두 얼굴로 산다. 날로 모질고 거친 짓을 일삼는다.  첫째 아이 일기에 꽃님이던 아기, 그 아들한테 이런 못된 짓 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일기를 넉 줄 쓰면 어떻다고, 몹쓸 짓을 했다.

 

2021.01.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