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누구나 나날이 살아가며 밥 먹는 일은 거를 수 없는데요, 밥이란 말과 (밥을) 먹다란 말을 한자 食이 들어와 곳곳에 자리 잡아 하늘같은 우리말 밥을 밀어내고 ‘먹다’를 밀어냈지요. 식사하다 → 밥먹다 식사 → 밥먹기 식당 → 밥집, 밥방 조식 → 아침밥 중식 → 낮밥 석식 → 저녁밥 한식 → 우리밥, 배달먹거리 일식 → 왜밥, 왜먹거리 양식 → 하늬밥, 하늬먹거리 중식 → 되먹거리, 쫑궈먹거리 분식 → 가루먹거리, 국수 혼식 → 섞먹거리, 섞밥 식재료 → 먹을 것, 먹을거리 식문화 → 밥삶꽃 식품 → 먹을 것, 먹을거리 식전 → 밥앞, 먹기앞 식후 → 밥뒤, 먹은뒤 식구 → 밥입, 한집사람 식객 → 밥손님(하는 일 없이 남 집에 얹혀 밥 얻어먹는 사람) 식곤증 → 먹은 뒤 나른함 식기 → 밥그릇 식단 → 밥차림 식대 → 밥값 식도(刀) → 부엌칼 식도(道) → 밥줄 식량 → 먹을거리 식료품 → 먹을거리 식모 → 밥어미 식복 → 먹을 누림 식비 → 밥돈 식성 → 먹성 식생활 → 먹살이 식솔 → 밥솔, 밥입 식수 → 마실 물, 먹을 물 식염 →소금 식염수 → 소금물 식욕 → 먹고픔 식용 → 먹을, 먹어도 되는 식용유 → 먹는 기름
[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우리가 날마다 신고 다니는 양말이 우리말인 줄 아는 이들이 꽤 많다. 스물온해(20세기) 들어와 하늬녘(서쪽)에서 버선과 비슷한 것이 들어오니, 우리 겨레 말살이에서 도무지 쓰지 않았던, 버선이란 뜻을 가진 한자 말(襪)을 찾아내고 하늬녘, 곧 바다 건너왔다고 바다 양(洋)자를 붙여 새로 만든 한자말이 양말이다. 처음부터 하늬버선이라 불렀으면 하늬버선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아니면 ‘바다’ 옛말이 ‘바라’이니 바라버선이라 해도 좋았겠고,,,. 여러분은 잉글말(영어) western을 우리말로 ‘하늬’나 ‘바라’ 가운데 어느 쪽으로 뒤치는 게 좋을까요? 말뜻은 하늬녘(서쪽)인데 하늬녘이 바다 건너 있으니 하늬바다(서양)에서 하늬가 떨어지고 양만 남은 거지요. 양은 바다, 곧 바라이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한자말이 우리말에 꽤나 들어와 있어요. 이들 양 붙은 한자말을 우리말 ‘하늬―’, 또는 ‘바라―’ 로 바로잡아 봅니다. 양철 → 하늬쇠, 또는 바라쇠 양복 → 하늬옷, 또는 바라옷 양장 → 하늬꽃옷, 또는 바라꽃옷 양회(시멘트) → 하늬재, 또는 바라재 양잿물 → 하늬잿물, 또는 바라잿물 양궁 → 하늬활, 또는 바라활 양담배 → 하늬
[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이 글을 우리말에 눈뜨게 해주신 이오덕님과 빗방울 김수업님께 바칩니다.) 저는 우리말이 대단히 빼어나고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우리말이 빼어난 까닭을 짚어보면 첫째, 낱말이 넉넉해요. 낱말 수가 많은 것은 우리 겨레가 누리 속에 살면서 누리가 바뀌어 가고 돌아가는 속내를 일찍부터 깊이 살펴보고 살아왔음을 드러내는 거겠지요. 이를테면, ‘비’를 보기로 들면 먼지잼(비는 오지 않으나 먼지가 물기에 젖어 땅에 가라앉음), 는개(늘어진 안개-안개가 땅 가까이로 떨어져 내림), 이슬비(비는 오지 않으나 나뭇잎이나 풀잎에 이슬이 맺혀 떨어져 내림), 가랑비(가루처럼 아주 가늘게 오는 비), 보슬비(보슬보슬 내리는 비) 같이 아주 가는 비에서부터 단비(가물려고 할 때 알맞게 오는 비), 꿀비(꿀처럼 단 비), 발비(빗방울이 발을 친 듯 줄을 지어 보이게 오는 비), 장대비(장대가 떨어지듯 빗방울이 굵게 쫙쫙 내리는 비), 작달비(굵직하고 억세게 퍼붓는 비), 소나기(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여우비(볕이 쬐는 날 잠깐 오는 비), 된 비(몹시 세차게 쏟아지는 비), 개부심(명개를 부시도록 오는 비) *명개는 흙탕물이 지나간
[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한실 ] 한자말은 왜 우리말이 되지 못할까? 우리 겨레한테 한자말은 아무리 오래 써도 그 뜻이 어렴풋하고 아리송해서 뚜렷하지 않아요. 말뜻이나 말맛이 마음을 울리며 가슴 속으로 파고 들지는 못하죠. 춘우라고 오래 오래 불렀더라도 한번 부른 봄비보다 가슴을 울리지 못해요. 또 동해, 서해, 남해라고 어릴 때부터 듣고 말해 왔어도 우리 겨레한테는 저 넓고 푸른, 그리운 바다로 가슴에 다가오지 않아 동해바다, 서해바다, 남해바다라고 말하지요. 노랫말에조차 ‘저 멀리 동해바다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이렇게 바보 같은 겹말을 쓰지요. 우리가 옛 한아비들처럼 배달말로 샛바다, 하늬바다, 마파다라고 써왔으면 어리석게 겹말 쓰는 일은 없겠지요. 근해는 가까운 바다, 원해는 먼 바다, ~~양(洋)은 큰 바다 또는 한바다란 뜻이니, 태평양은 고요바다, 대서양은 하늬큰바다, 인도양은 인디아한바다로 불러 가면 어떨까요? 왜얼이(일본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런지 왜말쓰기 좋아하는 나랏님들은 멀쩡한 우리말 ‘다리’를 두고 모든 다리에 한자 ‘~교’를 붙여 이름지어요. 그래서 (물)잠김다리는 잠수교로, 한가람 큰다리는 한강대교라 이름 짓고 무슨
[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한실 . 빛박이 CDC ] 올 한해는 온 누리를 빛고리-19 좀알살이앓이( 코비드-19 )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누리 곳곳에서 온갖 수를 써가며 이 좀알살이에서 벗어나려 애써왔지만, 오늘( 2020. 10. 23 )로 네즈믄온골( 4.100만 ) 사람이 넘게 이 돌림앓이에 걸렸고 온열셋골( 113만 ) 사람 넘게 죽었어요. 많이 걸리고 많이 죽은 나라들을 보면 미국이 으뜸이고 인디아가 다음이고 브라질이 셋째에요. 우리가 늘 앞선 나라로 여겼던 유럽과 미국이 이 빛고리-19 앞에 턱 없이 무너지고 있어요. 나라마다 나라는 나라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온나라 모든 백성들이 온 힘을 모아 이 빛고리-19를 물리치려 애 쓰고 있지요. 눈물 겨운 일도 많고 가슴 아픈 일도 한둘이 아니어요. 그 나라 그 겨레마다 생긴대로 저마다 갖은 힘을 다 써 이 좀알살이를 막아내려 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나라가 힘이 모자란 듯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똑바로 이 좀알살이가 어떻게 번지는지,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 좀 더 꼼꼼하게 차근차근 맞서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미리막이 약이나 나숨약을 만들어 내는데도 한참이 더 걸려야 할 것 같고요. 한사람 한사람이
[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한실 ] 우리가 쉬운 으뜸벼리(헌법)를 가진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머리말 일찍이 우리 겨레는 오늘날 쫑궈 한뭍(대륙)까지 널리 퍼져 살면서 온 누리에서 가장 앞선 삶꽃을 아름답게 꽃피운 겨레였음이 뒤늦게 여기저기 땅속에 묻혀있던 삶자취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름답게 꽃피운 삶꽃(문화, 문명)을 이웃겨레와 나누며 사이좋게 골고루 잘 살았던 겨레삶 밑거름은 말할 나위 없이 바른 삶과 겨레말살이였으리라. 겨레 모두가 바르게 살고 쉬운 겨레말만을 쓰는 동안에는 겨레삶이 빛나게 꽃피었다. 그러다 이웃나라 한자를 받아들여 한자를 익힌 사람들만이 벼슬아치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부터는 안으로 고름(평등)과 사이좋음, 어울림이 깨져 겨레 힘이 차츰 여려지고, 밖으로부터 이웃나라가 자주 쳐들어와 겨레삶이 어처구니없이 뒤틀리고 백성들은 오랫동안 어려움과 괴로움에 빠져 살아왔다. 끝내는 오랫동안 삶꽃을 나눠줬던 섬나라 사람들 종살이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안으로 백성위에 버텨 앉은 몇 안 되는 다스림이(임금과 벼슬아치들)와 싸우고, 밖으로는 쳐들어온 무리들과 아주 오랫동안 싸워 겨레와 나라와 겨레말을 지켜왔다. 갑오(1894) 해 온 백성 싸움(
[ 배달겨레소리 글씀이 한실 ] 여러분은 우리말로 몇까지 셀 수 있습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아홉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온.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흔아홉 쉰 또는 쉰아홉까지는 잘 세다가 그 다음에 예순하면 육십으로 넘어가고. 또 그 다음에 육십 칠십 팔십 구십 이렇게 세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온, 온이 백인데요. 온이 백을 밀어내고 안방차지해서 온이라고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온 누리나 온 집안 같은 말에서 그 자취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말로 셈을 안 하다 보니까 옛날 같으면 열줄 스무줄 마흔줄 쉰줄에 들었다 이렇게 말한 것을 오늘날은 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쉰 해 앞만 해도 쉰줄에 들다, 그 사람은 마흔줄일걸? 이랬던 거죠. 그런데 이제 열줄 이러면 거의 귀에 거슬리다시피 안 들어오지요? 그 사람 아직 열줄일걸 아냐 스무줄일 거야 이랬던 것을 오늘날 이 대가 줄을 밀어내고 자리차지한 거죠. 마흔아홉 쉰 쉰하나 이래 가다가 예순 일흔 해야 할 때 육십 칠십으로 건너뛸 뿐 아니라 육순
[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한실 . 빛박이 보리] 마음닦기란 무엇인가 ? * 왜 마음을 닦나요 ?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마음이 더러워지면 우리는 괴로워져요. 곧 바라거나 골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밉거나 싫거나 근심걱정이 생기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어요. 또 이 괴로운 마음을 내 안에만 가두어 두지 못하고, 둘레 사람들한테 퍼뜨리고, 그러면 곁에 있던 사람들 마저 괴롭고 힘들어요. 우리는 오래 묵은 마음 버릇 때문에 늘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더럽히고는 까닭도 잘 모른채 괴로워하며 살아요. 이건 바르게 사는 길이 아니지요. 사람은 누구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언제나 흐뭇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 마음닦기란 뭘까요 ? 마음닦기란 말 그대로 마음을 깨끗이하는 일이에요.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하고, 몸이 더러워지면 씻을 줄은 집에서든 배곳에서든 어릴 때 부터 가르치고 배워서 누구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스스로 마음을 더럽혀, 이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 길, 더러워진 마음조차 깨끗이 닦을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아는 이는 매우 드물어요. 어버이도 가르침이도 스스로 이것을 몰라 아이들한테 가르쳐주지 못하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마음닦을 수 있
[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한실] 우리 글자가 없었을 때야, 우리말을 적어둘 길이 없으니,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받아 적었다손 치더라도, 막둥이 임금님이 빼어난 우리 글자를 만들고 나서도, 우리글로 쉽게 적을 수 있는 우리말을 굳이 한자로 뒤쳐 적어야 한다고, 그래서 아직도 한자를 배워 써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 마음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 하늘은 우리말이어서 한자로 적을 수 없어요 천(天)이라고 뒤칠 수는 있지만. 땅도 한자로 쓸 수 없어요 지(地)라고 한글되말로 옮길 수는 있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리 한자에 목을 매는 사람도 사람이라고 한자로 적을 수 없고 같은 뜻을 가진 한자말 인, 인간이라고 쓰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말은 아니잖아요. 우리말은 우리글로만 적을 수 있고, 우리 글로 적을 때 가장 잘 살아나요. 그러므로 한자로 된 모든 말은 우리말을 밀어내고, 때로는 잡아먹고, 안방 차지하고 있으면서 두고두고 우리 겨레를 좀먹는 목에 가시 같은 말 같아요. 따라서 우리말을 살리는 길은 너무나 뚜렷하게 똑바로 곧게 나 있어요. 우리말을 밀어내고 자리 잡은 한자로 된 모든 한글왜말, 한글되말을 하나하나 가려내 멀리하고, 우리말을 되찾아 즐겨 쓰는 일이에
[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한실 . 빛박이 : 뮘그림(영화) 말모이 ] 꽃봉오리 같은 우리 아이들이 첫 배곳에 들면 빼어나고 거룩한 배달말은 어쩌다가 배우고, 할매 할배들이 오랫동안 살려 가꾸어 온 겨레말에는 아예 없던 (한글)왜말을 배우고 익혀요. 섬나라 사람들 종살이에서 벗어난지 일흔 다섯 해가 넘었는데도 저네들이 배달말 없애려고 세운 “학교”에서는 오늘날에도 왜놈들이 그토록 바라서 씨 뿌려놓은 왜말을 가르치고 있어요. 가슴이 미어질 일이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책(이른바 교과서)을 만드는 사람들도 책속에 담긴 한글 왜말을 가르치는 가르침이(교사,선생님)들도 이런 엉뚱한 짓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답니다. 어떻게 이런 짓거리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여덟살 아이들이 배곳에 들자마자 배우는 첫배곳 ‘배달말 1-1 가’(초등국어 1-1 가)에서 찾아 바로 잡아 볼까요. 본디 국어란 말은 배달말(그때는 조선말)을 죽이려고 저들이 세운 학교에서 가르치던 왜말을 일컫던 말인데 오늘날 우리가 이 말을 써요. 참 어처구니없지 않아요. 이 말부터 어서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막둥이 임금처럼 나랏말이라 하든가 처음 우리말 이름인 배달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요. 하기는 오늘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