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살구 글님 ]
보고 싶은 내 동무 초리에게.
내가 한글이름을 '살구'로 짓겠다 했을 때, 너도 한글이름이 갖고 싶다며 몇가지 들어 달라고 했지.
그 가운데서 네가 고른 건 '초리'였어. '가느다랗고 뾰족한 끝'을 가리키는 '초리'라는 말은 참말로 너에게 딱이었지.
남을 찌르는 말을 잘하는 너를, 벌써부터 네 아우는 '가시'라고 부른다고 했으니 얼마나 찰떡 같냐.
그 이름을, 나는 이제야 불러보는구나.
내가 이곳 푸른누리에 온지 어느새 여덟달이 지났어. 시골에서는 때가 천천히 흐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이리도 쏜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어.
앞으로 내가 이곳에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둘레 사람들에게 글월을 띄워볼까 싶어. 그 가운데 으뜸으로 생각난 사람이 바로 너란다.
우리가 같은 한배곳을 다니다가 일본에 바꿔배움이로 갔을 때, 참말로 많은 글월을 주고 받았는데, 그지?
집안사람들과 떨어져 처음으로 다른나라에서 혼자 지내던 그 때, 네가 보내는 글월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는지 몰라. 그렇다고 그때 외로웠다는 건 아니야. 혼자 있으니까 어찌나 신나고 좋던지!
얼른 이곳 나날살이를 이야기해 줄게.
한달부터 셋달까지는 우리말집 만드는 일을 했고, 넷달과 닷달은 나물뜯기를 하느라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지나갔어. 안 해본 일이라 몸은 좀 고단했지만, 그래도 재미나서 자꾸만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오죽하면 꿈에서도 나물을 뜯었다니까.
거의 처음 해보는 낫질은 또 얼마나 내 마음을 사로잡는지, 요리 조리 휘두르는 맛에 폭 빠지고 말았어. 부드럽게 올라온 통통하고 여린 돌잔꽃풀 줄기를 잘 갈아온 낫으로 삭 하고 베는 맛을 다른 사람들은 알까? 내가 겪어본 '누리에서 가장 부드러운 느낌'이 바로 그거야.
오늘은 새로 온 사내분과 같이 나물밭에 핀 돌잔꽃풀을 베고, 닭똥 거름을 비닐집으로 날랐어.
내게 이곳을 알려 준 쑥부쟁이님이 '사람 손이 범보다도 무섭다'고 늘 이야기하시곤 했는데, 참말로 한 사람 손이 늘었을 뿐인데 일이 몇 곱은 더 쉬워지더라.
오늘은 장마 동안 쌓인 종이 쓰레기를 태우려고 쇠아궁이에 불도 지폈어. 시골에 살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야.
난 불장난이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몰라. 종이나 나무가 타는 냄새도 좋고 불이 붙은 곳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져. 축축한 종이를 태웠더니 내가 많이 나서 눈이 어찌나 따갑던지. 오늘은 내가 맵다는 걸 처음으로 겪어본 날이야. 눈물이 찔끔 났어.
두 즈믄 스물 두 해. 여덟달. 열아홉날.
덥지 않게 맑은 여름날.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