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홀로보기]
제주도에서 1 나들이
비행기 타는 일이 버스 타는 일처럼 흔한 요즘이라지만, 날마다 일하는 몸으로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하기조차 어려웠다. 제주도를 옆마을 가듯 나들이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만 듣다가, 나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내가 여태껏 길에서 멀리 올려다보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렇게 높이 올라가는구나. 땅도 집도 마을도 저렇게 깨알처럼 작게 보이다가 사라지는구나.
목이 돌아갈 만큼 창밖을 내다본다. 나는 창밖을 본다지만, 어쩌면 여태 잘 모르던 우주를 보는가 싶기도 하다. 아니,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고 둘러보니까, 내가 살아가는 집과 내가 일하는 곳은 더없이 작고, 지구라는 별이 새삼스럽구나 싶다. 하늘에서 본 멧줄기는 풀빛 종이를 구겼다 펼쳐놓은 모습 같다. 바다를 날아온 끝없는 물 그림자. 구름이 바다처럼 물결을 치니, 바다가 하늘에서 숨을 쉬는 입김 같다. 바다에서 올라와 언제까지나 하얗게 사라지지 않는 겨울얼음으로 새긴 들판 같다.
이 끝없이 보이는 우주를 비행기를 타고서 보지 않았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로서는 멧길을 오르며 훨씬 기쁘고 반가웠다. 작은 멧골이라도 한 발 두 발 두 다리로 걸어서 올라가면, 헐떡이던 숨을 꼭대기에서 고르면서 멀리 내려다본 밑모습은 참으로 작아 보였다. 집이며 일터에서는 말 한 마디에 괴로워 가슴 끓이며 살았는데, 온마음에 얇게 썰어 그득히 쟁여놓은 멍울이 나를 억눌렀어도, 멧봉우리까지 올라서면 말끔히 털어내곤 했다. 아무리 벅찬 일도 멧숲에서는 풀 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저 멧봉우리보다 높이 올라가며 바다까지 두루 내려다보는 동안 꿈을 키워 본다. 티끌 같은 물방울이 있어 구름이 되고, 구름이 있어 해를 가리고, 그곳에 깃든 숨결은 티끌 같으면서도 커다란 덩이를 이룬다. 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구나. 바쁜 일을 모두 접어놓고서 나들이를 다니는 젊은 사람들 마음을 조금은 나란히 느껴 본다.
이 비행기에서 누구나 아가는 운다. 아가도 힘들겠지. 아가도 비행기는 처음일까? 이 울음소리는 비행기가 제주에 내릴 때까지 이어진다. 창밖을 보다가, 아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다가, 저 아이가 새로 맞이할 제주를 두근두근 기다리다가, 문득 내 숨결을 새삼스레 느낀다. 아줌마도 울고 싶단다. 비행기가 무서워서 울고 싶지는 않고, 비행기를 스물세 해 만에 타고 이렇게 높이 날아 보면서, 나한테도 날개를 달 수 있구나 싶어서 울고 싶단다.
2022. 05. 1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