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숲하루 발걸음 28] 포스터

URL복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8] 포스터

 

열세 살 적인데, 나는 도면을 잘 그렸다. 큰오빠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에 올 적에 하늘빛이 살짝 도는 큰 종이뭉치를 들고 왔다. 나는 오빠가 그리는 설계가 무척 재미있었다. 어떻게 촘촘하게 그릴까. 어떻게 이름 글씨를 살아숨쉬도록 쓸까. 큰오빠가 집에 온 날 졸라서 글씨를 배웠다. 오빠가 종이에 자를 대고 연필로 가볍게 긋는다. 다섯 글씨라면 글씨 크기를 가로세로 5cm나 7cm 눈금을 긋고 칸 사이와 사이는 띄울 만큼 좁게 그린다. 닿소리 홑소리 하나마다 두께 cm를 잡아서 똑같이 그리고 닿소리 ㄱ을 꺾어서 도드람 글씨가 되었다. 오빠가 딱 한 판 알려주었는데 나는 잘 따라했다. 나는 오빠한테서 배워 포스터 글씨를 아주 잘 썼다. 상자 밑그림도 쉽게 그리는 길을 배웠다. 큰오빠와 같이 살면 뭐라도 배우고 싶었다. 작은오빠하고는 두 살 터울이 나서 자주 싸웠는데, 큰오빠하고 여섯 살 터울이라서 안 싸우고 함께 놀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큰오빠가 알려준 글씨로 포스터 숙제는 거뜬히 했고 배움터에서 교실을 꾸밀 적에는 이 글씨도 곧잘 썼다. 오빠처럼 누가 곁에서 조금만 이끌어 주면 즐겁게 배우며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도 가끔한다.

 

2022. 04. 2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