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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1] 접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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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1] 접시꽃

 

열두세 살 적에 마을 가꾸기를 한 뒤로 마을 어귀에도 꽃이 피었다. 열네 살이 되어 배움터 가는 길이 바뀌었다. 왼쪽 오빳골 재를 넘다가 오른쪽 이웃 마을을 가는 길로 바뀌었다. 우리 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 접시꽃이 길가에 피었다. 집으로 돌아올 적에 우리 마을이 다 보이는 길가에 핀 접시꽃 앞에 멈추었다. 커다란 꽃잎이 분홍빛 빨간빛 하얀빛으로 활짝 피었다. 꽃이 지고 날이 쌀쌀하자 접시꽃이 말라비틀어졌다. 여름날 꽃잎이 촘촘하게 난 골이 부드럽게 하늘거리는 꽃잎이 힘차게 펼치던 꽃이 지고 말았다. 꽃대가 꺾이고 그 틈에 열매가 동그랗게 맺혔다. 열매를 하나 땄다. 누런 잎을 펼치니 옛사람이 쓰던 엽전 꾸러미처럼 동그랗게 꿰어놓은 듯했다. 어머니가 양동이로 물을 기를 적에 머리에 얹던 타래처럼 생겼다. 냄비 받침대 같기도 한 씨앗을 낱낱이 보면 납작하다. 접시만큼 꽃이 커서 이름이 붙었을까. 작은 씨앗이 저렇게 큰 몸집으로 자라날까. 어쩌면 씨앗만이 아는 수수께끼일까. 꽃이 떨어지면 시들어 죽는 줄 알고 보기 흉하다고 여겼다. 죽을힘을 다해 씨앗을 맺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물도 없는 자리에 햇볕이 저렇게 키웠을까. 큰 이파리 틈에서 나를 빼꼼히 바라보던 접시꽃이 내가 자란 만큼 몸을 키워 이제는 눈높이를 맞추네.

 

2022. 03. 0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