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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발걸음 15] 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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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5] 등목

 

칠팔월이면 볕이 뜨겁다.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등목을 했다. 웃옷을 홀라당 벗고 바닥을 짚고 엎드리면 나는 바가지로 찬물을 퍼서 허리띠 위에서 물을 부으면 목덜미로 떨어졌다. 우리 집은 땅에서 퍼올리는 물이 아주 차갑다. 비누를 등에 바른 뒤 찬물을 붓는다. 아버지는 ‘아, 시원하다.’ 하고 흐느끼며 목을 든다. 나는 허리춤 옷에 물이 닿지 않게 살살 또 붓는다. 작은오빠 등에도 물을 붓고 어머니 등에도 물을 부어 주었다. 할아버지 등목은 내가 많이 해주었다. 하기 싫어도 할아버지는 몸이 힘들어서 땅바닥에 겨우 엎드려 머리를 내민다. 나는 한참 뒤에서야 방에서 나와 할아버지 목을 씻기고 등에 물을 부어주었다. 할아버지 목은 주름이 많고 미끌미끌해서 기름을 만진 것처럼 손까지 미끌미끌해서 찜찜하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서 목이 쭈글쭈글하다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 닮았는지 젊은데도 목에 주름이 촘촘한 빗금을 친 듯 굵었다. 어머니하고 나는 저녁이면 골짜기에 갔다. 우리가 살던 언덕집 밑 도랑에는 금성산에서 물이 흐른다. 바위가 많아 비렁에 앉아 씻는다. 골짜기 물은 깨끗했지만, 산수유나무가 우거지고 모기가 많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애어른이 목욕을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자취하던 언니와 동무하고 주인집 할머니 따라 넓은 냇가에 갔다. 내에 물이 반쯤 빠지고 자갈을 밟고 들어간다. 비탈진 산 따라 물이 깊지도 얕지도 않아 몸을 씻기 좋았다. 냇가에 가면 음지마을 양지마을 사람이 많아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어렴풋한 달빛으로 몸을 씻고 옷도 찾아 입는다. 여름이면 보와 못 그리고 냇가 물이 깨끗해서 우리 몸을 씻어도 물이 깨끗했다. 뜨겁고 더운 볕에 달군 몸이 찬물에 얼마나 시원할까. 얼얼한 살결에 깊이 스며든 찬 기운을 머금은 물살이 호강을 시키네.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따뜻한 살결을 느낀다.

 

2021.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