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3] 날나무
어릴 적에는 쓰려지거나 마른 나무는 멧골에서 보지 못했다. 나무가 자라기 무섭게 도끼나 낫으로 날나무를 남김없이 벤다. 벤 자리가 뾰족해서 다친 적이 있다. 열한 살 적에 아까시나무가 자라는 멧골을 넘다가 발이 찔렸다. 학교에서 집 사이에 있는 마을에 고모 집이 있다. 사촌하고 놀다가 고모가 일러 준 멧골을 넘었다. 빨리 가려고 폴짝폴짝 뛰며 비껴가다가 가랑잎에 덮인 밑둥을 밟았다. 나는 흰 고무신을 신었다. 뾰족한 나무가 고무신을 뚫고 발을 푹 찔렸다. 피가 멈추지 않아 피범벅이 되었다. 닦을 천도 없었다. 가방에서 두툼한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은 찢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도 어쩌지 못했다. 일기장을 뜯고 뜯어 피를 닦았다. 산에서 내려가고 논을 가로질러야 길이 나오는데 길을 바라보아도 아이들이 안 보인다. 고모 집에서 가운데쯤 왔는데 고모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나는 혼자서 엉엉 울면서 쩔쩔맨다. 너무나 아팠다. 파인 속살을 보니 더 아프다. 그러나 나는 발보다 일기장을 찢은 일이 더 아프다. 나는 일기를 날마다 썼다. 날씨를 적고 밥 먹고 학교 다녀온 일만 적었지만, 아까웠다. 내 일기장이 반에서 가장 두꺼웠다. 일기장을 다 쓰면 위로 포개서 철사나 철끈으로 묶는다. 다섯 권으로 묶은 일기장을 피를 닦는다고 다 찢었다. 일기를 날마다 썼다고 칭찬을 듣고 날마다 들고 다니고 날마다 써서 너덜너덜했다. 일기를 써서 상을 받고 다음 학년에도 이어받았다.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개근상 말고 받은 상이다. 찔린 발에 빨간약을 바르고 상어 이빨을 긁어 가루를 뿌렸더니 빨리 낫고 흉터가 어렴풋이 남았다. 어머니는 내 다친 발보다 밭일만 걱정하고 고모 집에 왜 가서 이리 시끄럽냐고 시큰둥하다. 고모는 뒤늦게 알고 ‘야야 우야꼬 아이고 우야꼬’ 하신다.
2021. 06. 0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