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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1] 빵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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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1] 빵떡

 

  작은딸하고 장갑을 한 짝씩 끼고 빵을 뜯는다. 먹기 알맞게 자르려다 깜빡했다. 크림이 밀리고 녹두가 들었다. 내가 중학교 갓 들어갔을 적에 먹던 빵하고 맛은 다르지만, 딸하고 함께 뜯어먹으니 그때 먹던 빵이 생각난다. 나와 나이가 같은 숙이하고 두 살 많은 숙이 언니하고 셋이서 살림(자취)를 했다. 중학교 삼학년인 작은 오빠가 아침 일찍 잠이 덜 깬 얼굴로 찾아왔다. 아침에 따르릉 소리가 울리면 골목에 나간다. 오빠는 어머니가 보낸 빵떡을 건네준다. 우리는 ‘잘 먹어’라는 말도 ‘잘 가’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뚜껑을 열면 빵이 따뜻하고 단내가 난다. 까맣게 타도 반질반질 기름이 돈다. 엄마는 나한테 보내려고 막걸리에 소다와 밀가루를 섞어 하룻밤 재운다. 아침이면 반죽이 부드럽게 부푼다. 어머니는 손으로 반죽을 뜯어 불판에 담는다. 노란 곤로를 올리고 성냥불을 붙이고 후하고 불면 심지에 빙 돌아가며 불을 이내 붙인다. 그리고 손잡이를 두 쪽 옆으로 왔다갔다 움직여 홈에 딱 맞게 끼운다. 심지를 많이 올리면 시커멓게 자꾸 올라와 불판을 다 그을린다. 심지가 기름에 촉촉하게 젖으면 파란불이 펄럭인다. 굽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초래로 기름을 채우며 눈금을 본다. 기름 타는 냄새가 짙으면 코를 잡거나 숨을 멈춘다. 부엌에 창도 없고 불을 켜도 어두컴컴한데도 부지런하게 빵을 굽는다. 중학교 보내고 이레에 두세 판을 아침마다 구워서 한입에 먹기 좋게 잘라 도시락에 담아 오빠를 거쳐 보낸다. 오빠는 여느 날보다 일찍 집을 나온다. 두 곱이나 걸리는 길을 빙 돌아 곧은 흙길로 온다. 걸어다닐 적에는 봉오리를 둘 넘는 멧길이라 자전거를 타고는 갈 수 없다. 작은오빠는 언제나 씩씩했다. 힘들게 빵을 갖고 와서 살림칸(자취방)에 들어오지 못했다. 숙이가 둘 있고 이 집 아저씨가 무서워 마당에도 들어오지 못했다. 오빠하고 두 살 터울이지만, 나는 오빠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면 오빠는 나보고 ‘가스나야’ 부른다. 오빠가 짓궂은 말로 쥐어박으면 나는 바락바락 한마디도 지지 않고 달겨든다. 빵 심부름을 하는 고마운 오빠인데, 오빠 소리가 왜 그렇게 낯설고 안 나왔을까. 나이 터울이 없어서일까. 어머니 아버지한테 말썽꾸러기로 찍혀서 얕잡아보았을까. 나는 오빠라고 부르는데 열 해가 더 걸렸다. 말길을 트는데 참 길었다.

 

2021. 05. 3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