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9] 흙
길섶 흙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잘렸다. 흙에 스며든 물이 이 틈을 타고 흘러내리고, 푸르스름하게 이끼가 자란다. 조금 더 오르니 돌이 잘렸다. 돌 틈에 흙을 지팡이로 살짝 찔러 보았다. 겹겹 쌓인 얇은 돌이 우르르 굴러떨어진다. 흙길로 더 오르자 신발에 흙이 덕지덕지 붙어 무겁다. 갓길에는 웅덩이가 파이고 흙이 미끄럽다. 흙이 빗물에 씻기니 어떤 흙인지 드러난다. 어린 날 흙을 캐러 다녔다. 우리 마을은 내를 끼어 목골로 이어지는 끝집까지 작은다리가 일곱이나 있다. 마을 언저리에 첫 다리를 잇는 산 한쪽이 반듯하게 잘려나갔다. 길을 낸다면서 등성이를 깎았지 싶다. 내 키보다 높고 흙담이 울퉁불퉁하다. 담흙이 패여 물길이 굵직하게 흐른다. 맑은 날에는 흙이 말라 단단하고 비를 맞으면 어떤 자리는 흙이 잿빛이 돈다. 찰흙이다. 동무들하고 서로 캐려고 가파른 흙벽에 올라간다. 잿빛 물이 흐르는 자리를 맨손으로 둘레를 긁으며 흙을 후벼판다. 매끄러운 찰흙을 뜯고 깊은 자리에는 뾰족한 돌로 둘레를 긁어내고 또 캔다. 흙담에 구멍이 송송 난다. 둘씩 셋씩 뭉치를 비닐에 싸서 마르지 않게 그늘에 둔다. 심심할 적에 손에 물을 묻혀 미끄러운 흙을 이 손 저 손 옮기며 손가락 틈으로 미끄럼을 태운다. 사람도 빚는다. 학교 준비물이 있는 날이면 흙을 캐서 갖고 가면 학교 문구점에서 사지 않아도 된다. 찰흙이 그곳에만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까. 마을 어른들은 집짓기를 할 적에 붉은 흙에 짚을 섞어서 틀에 삽으로 퍼담아 네모난 흙벽돌을 찍던데 붉은 흙은 또 어떻게 찾았을까. 멧자락에 쌓인 터전에서 땅을 일구어 흙을 짓는 일을 해서 척척 알아냈을까. 나는 흙만 보면 마음이 들뜨고 까닭 없이 좋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흙집에서 살고 흙하고 놀았던 어린 날 몸짓 때문일까.
2021. 05. 2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