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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5] 가는잎그늘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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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5] 가는잎그늘잔디

 

  참나무 곁을 지나가다 가는잎그늘잔디 앞에서 멈춘다. 손으로 만지니 보드랍다. 서리 내린 뒤에도 홀로 푸르게 자라던 풀이다. 여느 풀이지만 푸르기에 눈길이 쏠린다. 보드라운 잎이지만 참 질기다. 어릴 적 일인데, 마을을 막 벗어나 오빠골을 오를 적에 앞서간 마을 언니오빠를 따라잡으려고 막 뛴다. 마음은 바쁜데 뛰다가 풀에 걸려 꼬꾸라진다. 옷도 버리고 손도 따끔한데 윗길에서 보고 낄낄 웃는다. 나는 씩씩거리면서도 누가 한 짓인지 묻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옷을 털고는 지름길 멧턱을 한숨에 오르려고 도움닫기를 하며 힘차게 뛰어오르면 재를 넘을 무렵에 따라잡는다. 이 자리에 덫이 있는 줄을 아이들은 안다. 이 재를 넘으며 수레가 다니자 흙이 파이고 바퀴 자국이 이랑이 되고 흙이 솟은 자리에 풀이 자랐다. 두 길에 두 쪽으로 풀을 풀끼리 묶는다. 묶는 아이도 뒤에 오는 아이를 넘어트리려는 마음을 품었다. 풀이 가늘어 잘 묶이고 질겨서 발이 슬쩍 걸리면 엎어지거나 비틀거리다가 겨우 선다. 나는 이 풀에 걸려 넘어지면 아주 싫었다. 옷 버리고 손 다치는 일보다 뿔이 잔뜩 난다. 어느 날 나도 똑같이 하더라. 빨리 가서 묶어 두고 시침을 떼고 내가 묶은 풀에 누가 걸려 넘어지면 찔리지만 재밌다. 내가 넘어지면 나쁘고 남이 걸리면 고소하다. 풀은 제 몸에 걸려 넘어지는 나를 비웃었을까. 내가 묶어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해 얄미워서라도 땅을 더 불끈 붙들고 버티었을 테지. 보드랍던 그늘잔디는 개구쟁이 아이를 만나 개구쟁이 풀로 마음에 남은 듯하다.

 

2021. 05. 2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