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 깨
농약을 물에 섞어서 등에 짊어지고 약을 친 어머니가 바람결에 약을 마셔서 그런지 어질어질하다고 눕는다. 붉은상추가 있어 낮밥을 먼저 먹으려는데 어머니가 일어나 쌈장을 한다. 된장을 푸러 가다가 주저앉는다. 나는 종지를 받아 일러준 단지를 찾아 된장을 네 국자를 푼다. 어머니가 참기름을 듬뿍 붓는다. 참기름을 골고루 섞고 한 통 따로 담아 챙긴다. 부엌에 참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어머니는 지난해부터 깨를 사서 참기름을 짠다. 내가 어릴 적에는 깨를 심었다. 깨가 다 자라면 목에 닿을 만한 키였다. 잎에 푸른 깨벌레가 꼬불꼬불 올라가면 깜짝 놀랐다. 깨를 찔 때가 다가오면 아버지가 낫으로 이파리를 쓱쓱 치고 나무 같은 깨를 벤다. 마늘 묶을 때처럼 두 단씩 두 쪽을 묶고 네 단을 하나로 묶는다. 밭이랑에 탑처럼 세워 놓고 깨나무가 누렇게 말라 탁 벌어지면 밭에 천막을 깔고 어머니가 하나씩 잡고 작대기로 살살 턴다. 한 벌 털고 다시 네 단을 아버지가 묶어 두면 나는 밑으로 기어 다니며 놀았다. 어머니는 한 톨이라도 깨가 땅에 떨어질까 싶어 살살 터는데 깨단 밑으로 지나가면서 흔들려 깨가 땅에 많이 떨어진다. 며칠 뒤에 또 한 번 깨를 털고 이튿날 또 턴다. 어머니가 세 판쯤 털면 아버지가 빈 깨단을 지게에 짊어지고 온다. 마당에 부라리면 할아버지가 소죽 끓일 적에 땔감으로 썼다. 깨가 몇 톨 털리지 않은 나무는 불에 넣으면 타닥타닥 터지는 소리가 난다. 어머니는 깨를 키질해서 쭉정이는 바람에 날리고 알곡만 모았다. 깨가 몇 자루 나왔다. 읍내에 깨를 팔아 돈을 마련하여 우리를 가르치고 살림에 보태느라 우리는 깨소금하고 참기름 맛도 몰랐다. 설날이 되면 어머니는 깨를 볶아 깨소금을 빻고 참기름도 짠다. 깨단은 바짝 말랐을 적에 흔들면 깨가 떨어진다. 어머니 아버지는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데 나는 지루해서 깨단에 들어가서 놀았다. 내 눈에는 깨가 많아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 때문에 버린 알곡이 많다. 어머니는 아직 독한 농약 마시며 밭일하는데 나는 그때나 이제나 어머니 앞에서 아이처럼 놀기만 한다.
2021. 05.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