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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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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 금낭화

 

  고샅길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면 대문 바로 밑에 분홍빛 고운 금낭화가 피었다. 기다란 줄기에 금낭화가 주렁주렁 달려 꽃가지가 휘청인다. 마당에 들어서 허리춤에 오는 담벼락에 발길이 멈춘다. 도랑 하나 사이 둔 아랫집 뒤꼍이다. 어린 담쟁이덩굴이 흙벽을 타고 지붕에 기웃한다. 흙벽을 버텨 주는 나무가 까맣다. 마흔 해 동안 살던 우리 집은 허물고 빨간 벽돌로 집을 새로 지었는데 앞집은 내가 어린 날 보던 그대로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다. 앞집에 숙자가 살았다. 나보다 한 살이 적은 데 샘에 갈 적마다 지나간다. 마당도 작고 집이 작아 오두막 같았다. 숙자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큰소리를 쳤다. 시골에서는 이 집 저 집 내 집처럼 드나드는데 숙자 집에는 아버지가 무서워 겨우 한 번 놀러 갔다. 언니오빠하고 뛰어놀 적에 숙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어 숙자가 죽었다. 읍내서 기차에 치였다. 졸업하던 날은 넓은 집에 사는 소꿉친구 남자애가 대구서 기찻길로 뛰어들었다. 우리 집 흙담 밑에도 금낭화가 몇 뿌리 피었다. 아랫집에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엄마가 캐다 심었는지 모르지만, 꽃이 이뻐 나도 한 뿌리 캐려다가 참았다. 빨리 떠나간 둘 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빈집에 금낭화가 필 때면 문득 둘이 떠오른다.

 

2021. 05.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