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9] 홍시
비슬산에 오르니 바람이 차다. 10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 입춘이 지났다고 곁님은 얇은 바지를 입고 오더니 덜덜 떤다. 참꽃 필 적에 가기로 하고 돌아선다. 건너쪽 꼭대기에 오른다. 맵찬 바람을 막고 볕이 든 알림말이 선 바위에 퍼질러 앉아 새참으로 말랑감을 꺼낸다. 햇빛에 빛나 반짝하는 감이 달다. 그래도 어린 날 먹던 우리 집 감이 더 달다. 금성산 밑에 마을이 들어서고 멧턱 밭에 감나무가 자란다. 이슬이 맞지 않을 적에 땡감을 따낸다. 서리가 내린 뒤에도 말랑감을 딴다. 아버지는 장대를 비틀어 가지를 꺾었다. 꼭대기가 높아서 장대가 닿지 않으면 까치밥으로 두었다. 밭 위아래에 두 가지 감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찬감, 밑에 또 한 그루는 도감이다. 찬감은 납작하고 말랑말랑하고 껍질이 얇고 발갛고 도감은 대봉처럼 뾰족하고 껍질이 두껍다. 찬감은 달고 씨가 없다. 도감도 씨앗은 없지만, 씨앗 닮은 결로 타박타박하고 뽀드득 알갱이로 씹힌다. 아부지가 그 먼 곳에서 따다 놓은 홍시를 아랫방에 두고 겨울에 온집안이 먹는데, 작은오빠하고 나하고 몰래 많이 꺼내 먹었다. 배추 뿌리나 날고구마를 먹다가 말랑하고 달달한 붉은감, 떫거나 터지거나 곰팡이 피지 않은 잘 익은 말랑감만 골라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비슬산에는 참꽃이 많던데 까치밥이 될까.
202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