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8] 솔가리
청도 밤티재에서 길을 헤매고 남산에 오른다. 들머리에 잣나무가 쭉쭉 뻗었다. 우거진 숲으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폭신하다. 붉은 잣나무 이파리가 땅에 두툼하게 쌓였다. 가파른 등성이를 따라 오르자 바위가 가득하다. 돌 틈마다 소나무가 힘들게 자란다. 낭떠러지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 밧줄을 잡고 곁님이 오를 적에 나는 솔가리를 밟고 발로 파 본다. 두툼해서 땅이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가 많아 풀꽃도 드물고 솔가리를 파헤쳐 소나무 냄새가 짙다. 소나무 잎은 태워도 소나무 냄새가 난다. 내가 열한두 살 적에 멧골에 가서 땔감을 마련했다. 작은오빠를 따라가기도 하고 마을 언니들과 몰려다녔다. 까꾸리(갈퀴)로 그러모으고 마른 솔방울도 줍는다. 자루에 들고 가기 좋게 맞춤하게 채운다. 그리고 소나무 겉껍질을 낫으로 깎는다. 하얀 속껍질이 보이면 이로 깨물어 하모니카를 불듯 왔다갔다 하면서 송구를 뜯어먹었다. 맹 맛이고 뻐덕뻐덕한데도 배고파서 먹었다. 솔가리는 부엌에 두고 불쏘시개로 썼다. 더러 날소나무도 아버지가 베어서 쇠솥에 장작을 지펴 밥을 짓고 물을 데웠다. 그런데 마을에 순사가 떴다. 집집이 다니면서 소나무는 물론 솔가리를 땔감으로 쓰는지 들여다본다. 우리는 정지(부엌)두 짝 나무를 닫고 빗장을 걸었다. 부엌 깊숙이 넣어 다른 나무로 솔가리를 덮고는 시침을 뗐다. 어릴 적에는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지퍼야 따뜻했다. 죽은 나무를 주우려 해도 없고 날소나무는 톱으로 베고 도끼로 쪼개 땔감으로 썼다. 솔가리를 쓰지 못하게 해서 가시가 많은 어린 아까시나무와 참나무를 베어 아버지는 지게에 지고 왔다. 솔가리를 끌어 쓰면 뿌리가 언다고 그랬을까. 소나무가 떨군 잎이 땅을 기름지게 하고 우리 집도 따뜻하게 해주었다. 누가 떨어진 잎이 숲속에 쓰레기라고 했을까. 땅속에 사는 벌레한테도 이불이 되어 주는 고마운 솔가리이다.
2021.05.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