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7] 순이나무
일터에 갈까 망설이다가 뒷골을 올라가기로 한다. 개나리 풋풋한 내음하고 아까시 꽃내음이 짙다. 꽃꿀을 찾는 벌이 바쁘다. 언젠가 이 뒷골에 아까시나무를 보러 온 적이 있는데, 그날 내가 ‘순이나무’라고 이름을 붙인 나무를 만났다. 일에 바빠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긴 내 모습을 나무 한 그루에서 보았다. 나는 일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나무는 어디로도 못 가고 그 자리에 서서 꼼짝을 못한다고 여겼다. 너무 바쁘게 묶인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일을 잊고 싶어 뒷골에 올라서 순이나무를 찾았다. 여섯 해 만인가. 순이나무는 껍질이 홀라당 벗겨지고 불에 그을린 듯 까맣다. 나무줄기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우듬지에 흰꽃을 피웠다. 누가 이 나무를 보아줄까. 누가 이 나무에 핀 꽃을 알아보나. 꽃이 피니 잎도 돋고. 잎이 돋으니 나무는 늘 싱그러이 살아간다. 그 자리에 꼼짝을 못하고 박힌 듯하지만, 알고 보면 바람을 마시고 해를 머금으면서 홀가분하게 서서 푸르게 꿈꿀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일에 묶여서 살아가는 오늘이 아닌, 이 일을 하려고 여기에 와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좋은 일도 싫은 일도 아닌, 볼품없거나 못난 일이 아닌, 이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아이들하고 오늘을 누릴 수 있는지 모른다. 흰꽃을 피우는 순이나무처럼 나한테도 흰꽃이 필 날을 그려 본다.
2021. 05. 0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