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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27. 피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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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7. 피를 뽑다

 

  문구점에 가려고 병원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나무 밑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느 아저씨가 나무에 올라 톱으로 가지를 자르다가 다리를 다쳐 피를 흘리고 실려 갔단다.

 

  며칠 뒤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했다. 방학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피바침(헌혈)을 떠올렸다. 세 아이가 보는 앞에서 피를 뽑아서 주는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다. 피를 뽑으러 가려고 밥을 든든하게 먹는다. 피를 뽑는 집은 자주 가던 큰 문구점 맞은쪽에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고요하다. 종이에 무엇을 적어서 내고 기다린다. 두 딸은 자리에 얌전히 앉고 아들은 폴짝 뛰면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기웃거린다. 핏심(혈압)을 잰 다음 노란 고무줄을 팔에 묶고 바늘을 찌른다. 주먹을 움켜잡았다 펼치는 사이 피가 주욱 나온다. 나는 몸에 바늘을 꽂기가 무섭다. 바르르 힘주며 떠느라 바늘이 부러지지 않게 다시 힘을 빼지만 나도 모르게 절로 아야 하고 소리를 낸다. 세 아이 눈이 지켜보는데도 아프다고 엄살을 부린다. 간호사는 뽑은 내 피를 갖고 갔다가 혈액형이 o형이라고 말한 뒤 내가 앉은 자리로 온다. 물이 담긴 병에 뽑은 피를 똑똑 떨어뜨린다. 내 피가 묽어서 뽑아 줄 수 없단다.

 

  “어제 잠 한숨도 못 자서 그럴지 몰라요?”

  “그래도 오늘은 못 해요. 보름 뒤에 다시 와 보세요.”

 

  두 이레 뒤, 다섯 살 아들만 데리고 다시 찾아간다. 다시 피를 조금 뽑아 갔다. 어떻게 나올까 조마조마했다. 잠도 푹 자고 커피도 안 마셔서 오늘은 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 피가 묽다고 나온다. 한 판은 어쩌다 나올 수 있다지만 두 판 다 그렇다니. 믿기 어렵다. 내 몸이 말썽인가. 남들 하는 피뽑기를 하지 못한다니 마음이 안 좋더라. 나는 이날까지 내 피가 아주 맑고 튼튼한 줄만 알았다. 핏심은 낮다지만 어지러울 적에도 그냥 지냈다. 이렇게 피를 뽑겠다고 싶어 안달이 나 두 판이나 와서 못한다니. 아이들한테 큰소리치며 자랑삼으려다 부끄러웠다.

 

  피를 뽑으려고 한 까닭은 두 가지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좋은 일을 하도록 거울이 되기를 바랐다. 피도 돈처럼 쌓아(저축) 두려고 했다. 우리 집 다섯은 모두 O형이라서 피를 서로 나눌 수 있지만, 살다가 어떤 일이 닥쳐 피를 받아야 할 적에 혈액은행에서 바로 꺼내 쓰려고 했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 열흘씩 있다 보면 아픈 사람들이 드나든다. 몸 한쪽을 들어내거나 몸을 크게 가르느라 피를 많이 쏟은 사람이 비싼값을 치르고 다른 사람 피를 넣는 일을 보고 들었다. 내 피를 이웃과 나누고 내가 아쉬울 적에 다른 사람 피를 받고자 했다. 내가 안 받더라도 우리 아이를 생각하고 곁님을 생각했다.

 

  우리 집 다섯이 같은 피이지만 숨결은 다르다. 나는 작은글 o이고 다들 큰글 O이다. 나는 삐치면 세 해는 간다는 말을 우스개로 하면서 삐졌고 마음을 작게 굴었다. 가끔은 사람들 피가 궁금할 적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겪다 보면 마음이 좋다고 여길 적보다 아리송할 적에 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A라서 그렇고, B라서 그렇고, AB라서 그렇네, 잣대를 한다. O가 다른 피보다 수수하다고 더러 듣는다. 우리 큰딸은 터무니없다고 말하지만, 나로서는 어렴풋이 몸으로 느낀다. 뒤늦게 사람을 알고 보면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머리를 끄떡끄떡하는 일이 적잖다.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을 적에 묻더라.

 

  우리 집은 피가 모두 같아서 좋은 일이 하나 더 있다. 다투고 나면 언짢은 일을 쉽게 잊는다. 꽁하지 않다. 쉽다는 말에 맞장구 칠 만큼 느낀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바깥일을 하고 집에 들어올 적에는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까마득히 잊는다. 나와 곁님 사이도 그렇고 아이들 사이도 그렇다. 하루는 회초리로 두 동생을 나무랐다. 나는 이틀이 지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에서 털어내는 데 사나흘은 꼬박 걸려 아직 마음이 무겁기만 한데 첫째 아이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해서 청바지를 사러 나왔다. 차를 세우고 걸어 나오니 첫째 아이가 팔짱을 낀다.

 

  “우리 그제 다툰 사이 맞나?”

  “다투지 않았는데.”

  “안 하던 팔짱 끼니깐 왜 이리 예쁠까.”

  “히히, 엄마가 좋아.”

 

  웃는 얼굴을 보면 좋다. 우리는 그제 아무 일 없듯이 새롭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학교에 있는 딸이 쪽글을 보낸다.

 

  “엄마, 우리 학교에서 피 뽑는 데, 나도 할까?”

  “다음해에 혀라. 너 피는 수능에 쏟을 힘이야!”

  “알았어염. 빡공.”

  “오늘도 즐겁게 배워.”

 

  딸은 밤에 자습을 할 적에 졸음이 몰려오거나 배우기 따분하면 엄마한테 쪽글을 보낸다. 우리는 날마다 싸우고도 이러고 지냈다.

 

  요즘 손전화에 피뽑기 알림이 자꾸 뜬다. 아직 갈 마음도 없는데 집 가까운 곳이 어딜까 본다. 딸도 나도 그날 뒤로 피를 뽑은 적이 없다. 다섯 살이던 우리 아들만 군대 가서 처음 피를 뽑았다. 피 뽑고 초코파이 받았다던데, 어쩐 일인지 다시는 피를 뽑지 않겠단다. 아들도 나처럼 바늘 꽂는 일을 무서워한다지만, 뜻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바쁘게 살면서 그동안 피뽑기는 나와 먼 일처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우리 아들이 다섯 살, 우리 딸이 열세 살 적에 하려다 못한 피뽑기를 처음으로 해볼까 어쩔까 생각이 많다. 그나저나 군대에서 피를 뽑은 아들내미는 왜 피를 더 안 뽑겠다고 했을까? 이다음에 군대를 마치고 나오면 물어봐야겠다.

 

2021.3.2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