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4. 미꾸라지
아들이 미꾸라지를 갖고 놀았다. 넓고 둥근 빨래그릇에 물을 담고 미꾸라지를 담아 두었다. 아들은 좋아서 윗옷을 둥둥 걷고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모아 미꾸라지를 건져 보고 달아나는 미꾸라지 앞을 손바닥으로 막는다. 한 마리 잡아 꼬리를 잡고 놀다가 물에 넣는다.
“미꾸라지 만지니깐 어때?”
“몸통 만지니깐 방귀 소리가 났어.”
“엉? 미꾸라지 방귀 소리인지 어떻게 알아?”
“거품이 올라왔어. 어제는 열 판이나 봤는 걸.”
“너무 웃긴다. 미꾸라지도 방귀 뀌는구나!”
“오늘 죽은 큰 미꾸라지가 쫘아 하고 방귀 소리 냈어.”
이제는 부엌 곁방에 둔 미꾸라지를 따로 담는다. 몇 마리를 바가지로 건져서 하얀 대야에 옮긴다. 거실로 들고나와 미꾸라지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가 또 가만히 지켜본다. 바닥에 엎드리고 보다가 그대로 미꾸라지 곁에 팔을 괴고 잠이 들었다. 큰아이가 새벽에 마루에 나오는 소리에 나도 깼다. 큰아이가 말했다.
“간밤에 아주 큰 미꾸라지가 몸서리치다가 밖으로 튀어나와 죽었어.”
큰아이 말을 듣고 마루에 가 보니 미꾸라지가 살았다. 바닥에 깔아둔 신문에서 퍼드럭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나는 두 손으로 미꾸라지를 얼른 잡아 물에 넣었다. 물에 들어간 미꾸라지가 거세게 몸서리를 친다. 물 밖에서 힘을 다 썼을 텐데도 씩씩했다. 대야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물에 있어야 할 미꾸라지가 밖에 있었으니 얼마나 몸이 탔을까. 그러나 물 밖에서 너무 오래 버킨 탓인지, 끝내 몸이 발라당 뒤집히고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우리 아들이 노는 미꾸라지는 아빠가 잡아 왔다. 아빠는 읍내 저잣거리에서 뻥튀기를 하는 아저씨하고 약국 아저씨하고 셋이서 돈을 만 원씩 모아 철물점에서 던짐그물을 아홉 벌 샀다. 된장을 풀어 놓고 미꾸라지가 모여들도록 미끼를 놓았다. 미꾸라지가 들어가면 밖으로 다시 못 나오는 그물을 뻥튀기 아저씨가 물가에 갖다 놓기로 했다. 풍산 들녘은 논물이 깊지도 얕지도 세지도 않다. 던짐그물을 밤새도록 두었다가 아침에 건진다.
첫날 잡은 미꾸라지는 뻥튀기 할배가 가지는데 아주 많이 잡혔다. 둘째 날은 우리가 갖고 오고 셋째 날은 약국 아저씨가 가졌다. 그런데 약국 아저씨 몫은 몇 마리뿐이다. 알고 봤더니 뻥튀기 할아버지가 이른 아침에 몰래 한 판 걷어갔다. 우리 미꾸라지는 곁님이 일터에 갖고 가서 찜해서 나누어 먹고 몇 마리를 집에 들고 왔다. 그래서 미꾸라지는 우리 아들이 곁에 두었다.
얼마 뒤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들 먹이라고 아버님이 미꾸라지를 보내왔다. 반찬 솜씨가 좋은 동무한테 묻고 곁님이 일러 준 대로 국을 끓이고 곁님은 다른 냄비에 두부하고 미꾸라지를 넣는다. 물이 끓으면 두부 속으로 미꾸라지가 숨어들고, 그러면 두부하고 같이 익어서 먹기 좋다고 했는데 미꾸라지는 물이 끓자 그대로 히떡 디비진다.
아들이 아빠가 하는 미꾸라지를 다 본데다가 내가 하루 쉬는 날 저랑 같이 미꾸라지국을 끓였다. 미꾸라지가 뜨거운 물에 익자 냄비에 손잡이가 긴 칼날 방망이를 넣고 미꾸라지를 갈았다. 팔딱팔닥 살던 미꾸라지가 뜨거운 물에 뜨자 가루를 내는 몸짓을 지켜보았다.
“미꾸라지국하고 저녁 먹자.”
“난 못 먹어!”
“왜?”
“살아 있는 것 봤는데 그걸 해 먹으니깐 그렇잖아!”
“그럼 쇠고기하고 돼지고기는 어떻고.”
“엄마가 끓이는 것 보고 섞으며 갈아 버리는 일을 봤는데 어떻게 먹어?”
“그래도 너그들 몸 살찌우려고 할아버지가 주었잖아. 맛이라도 봐.”
“내가 모르면 괴안은데, 난 못 먹어.”
아들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안 먹는다고 머리를 흔들고 한 숟가락 떠주어도 고개만 돌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끝내 미꾸라지국은 혀끝에도 대지 않았다. 밥을 먹던 곁님이 아들이 안 먹으려 하자 눈살을 찌푸린다. 방으로 들어갔던 아들은 어쩌지 못하고 아빠 앞에 불러 나왔다. 또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아들 먹이기를 그만두자 곁님은 미꾸라지국 타령을 한다. 된장을 많이 넣어서 된장 맛만 짙게 우러난다고 투덜거린다. 아이들한테 몸에 좋은 국을 먹이려고 했는데 아들이 안 먹자 두 누나도 먹지 않는다. 뜻대로 안 되자 곁님이 언짢아하며 말을 툭 던졌다.
“맛이 없으면 다 버려, 버리면 되잖아!”
“된장으로 간을 맞추면 안 되니깐 그러지.”
“맛이 없다고 하더니만 두 그릇이나 먹고도 투덜거리네.”
곁님은 두 그릇을 후딱 비웠다. 한 그릇 더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을 마주친다. 곁님은 혈압이 높아 짜게 안 먹으려고 골을 내고, 나는 미꾸라지국을 처음으로 끓이니 냄새를 잡는다고 된장을 넣고 또 어림잡아 더 넣다 보니 짰다.
우리가 먹은 미꾸라지는 아침까지만 해도 숨을 쉬었다. 미꾸라지가 이틀 밤을 우리 집에서 잤다. 아들은 산 목숨하고 놀기를 좋아한다. 어항에서 노는 물고기는 만질 수 없어 바라만 보고 미꾸라지는 만지며 논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쉴새없이 움직이던 저를 닮은 줄은 알기나 할까.
우리는 아들을 미꾸라지라고 불렀다.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배드민턴 하러 가는 작은누나 따라 건너 운동장에 따라나선다. 쫄랑거리며 한 손에는 축구공을 들고 나간 우리 집 미꾸라지는 늦은 밤에도 뛰어놀았다.
다 자란 아들이 군대에 가기 며칠 앞서도 미꾸라지국을 먹이려고 했지만, 그날도 먹지 않았다. 문득 군대에서 미꾸라지국이 나올까 궁금했다.
“군대에서도 나오나?”
“안 나와. 나와도 난 못 먹어. 미꾸라지를 어케 갈아.”
아직도 숨길로 바라본 미꾸라지를 먹기 꺼린다. 앞으로도 안 먹을까. 산 목숨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을까. 열 살 아들이 궁금하다고 해도 내가 가려 가면서 보여 주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런데 아들아, 미꾸라지뿐 아니라 쌀알도 과일도 나물도 다 산 목숨이란다. 우리는 산 목숨을 끓이고 삶고 지지고 볶아서 먹는단다.
2021.3.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