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12] 능소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 삶 12] 능소화 라면을 먹을까 하고 물을 채우는데, 곁님이 일꾼하고 밖에서 먹고 오란다. 그동안 밥때를 넘기고 집에 가서 먹는데 모처럼 밖에서 먹는다. 가랑비가 그치고 담벼락 따라 걷는 마음이 산뜻하고 가볍다. 김밥집 바람갈이(환풍기)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린다. 벌써 능소화가 피었네. 바닥에는 꽃이 떨어졌네. 이 길로 차를 몰고 다녀서 못 보았구나.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에도 꽃을 피우다…
- 숲하루 글쓴이
- 2022-07-23 07:19
[작은삶 11] 연꽃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1] 연꽃 몇 해 앞서 반야월 연꽃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벼가 한창 익은 가을이었다. 이미 연꽃은 지고 뿌리를 캐는 밭이었다. 열매가 송송 박힌 연이 꽃만큼이나 소담스러웠다. 물이 말라 논바닥을 드러내기에, 연대를 꺾으러 논둑을 밟고 깊이 들어갔다. 진흙이 미끌미끌하다. 철퍽 미끄러졌다. 발이 푹푹 더 빠질 듯해서 그만 나왔다. 그런데 허리에 묶은 웃옷이 사라졌다. 미끄러지면서 잃어버린 옷을 찾으러 …
- 숲하루 글쓴이
- 2022-07-23 07:19
[작은삶 10] 소나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 소나기 소나기가 쏟아진다면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감기 들지 않을 만큼 소낙비 실컷 맞고 싶다. 그렇지만 소나기처럼 쏟아내는 말은 실컷 들어서 이제는 그만 비껴가고 싶다. 시골로 가는 길에 소낙비가 내렸다. 곁님 입에서도 소낙비가 쏟아졌다. 둘 다 바빴다. 내가 먼저 집에 왔다. 문 앞에는 출판계약서가 왔다. 발간신청일이 며칠 남지 않아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몇 가지 적고 두 종이를 붙여서 가…
- 숲하루 글쓴이
- 2022-07-07 20:44
[작은삶 9] 두부비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 두부비지 곁님은 두부비지를 차리면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먹으면 구수한데 왜 안 먹느냐고 물으면 ‘그건 못 먹고 살 때나 먹었지, 난 안 먹어’ 하면서 숟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이렇게 구수한 비지를 맛보면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올까. 약을 살살 올려도 먹을 생각을 않던 사람이 어쩐 일인지 비지찌개를 먹었다고 한다. 바나나가 점박이가 찍혀 곧 안 먹으면 물러 버릴 듯했다. 뒤에 빼두고 아줌마들이 오면…
- 숲하루 글쓴이
- 2022-07-07 20:38
[작은삶 8] 심부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 심부름 부엌종이가 똑 떨어졌다. 뒤쪽에 있나 싶어 가니 없다. 지하실에 있는데 가지러 가지 못한다. 아침 일꾼이 없어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이따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자니 그래서, 신문을 손바닥 크기로 잘랐다. 그릇에 올리고 버섯을 담는데. 마침 상자 할아버지가 왔다. 얼음 담는 가방을 하나 달라는데 지하실에 있다. 가지러 가지 못한다. “할배가 찾아 보실래요?” “어디 있는데?” “이쪽…
- 숲하루 글쓴이
- 2022-07-07 20:34
[작은삶 7]떨어지다(탈락)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작은삶 7] 떨어지다(탈락) 쪽글이 왔다. 기다리던 ‘ㅎ’이라는 알림을 보니 콩닥콩닥 뛴다. 바로 쪽글을 열어 보려다 망설었다. 붙었을까 떨어졌을까, 붙었을 테야 하는 부푼 마음이 일고서야 열었다. ‘선정 미선정’ 한 마디만 보이면 좋겠는데 글월이 길다. 쭉 읽어 보니 ‘결과 사유에서 해당사유 확인가능’ 하다는 말에 떨어졌구나. 바람 빠지듯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또 이름난 사람들이 되었겠지. 글을 쓴 지 세 …
- 숲하루 글쓴이
- 2022-07-01 20:17
[작은삶 6] 받은대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 받은대로 갓 시집에 왔을 적에 큰시누네 딸이 열 살이었다. 조카인 셈인데, 나는 외숙모가 된다. 나를 가장 반겨준 사람이 조카 소정이가 아닌가 싶다. 편지를 꼬박 보내왔다. 외숙모를 참 좋아하는 아이처럼 느꼈다. 동생이 또 열 살이 되자 둘이 같이 편지를 보냈다. 집을 몇 군데 옮겨다니고, 우리 집 아이를 셋이나 낳아 키우면서 소꿉만 해도 많지만, 두 아이가 보낸 편지는 서른 해도 넘었지만, 버리지…
- 숲하루 글쓴이
- 2022-07-01 20:16
[작은삶 5] 손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 손질 집을 나서는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직 가게에서 일할 사람을 못 찾았다. 가게에 들어서면 몇 가지 걸레부터 들고 가방을 둔다. 하루 쉰 날은 나물 손질이 많다. 잘라 놓은 양배추가 하나뿐이다. 통으로 둔 양배추 잎이 누렇다. 마르고 뜬 잎을 떼어내고 한 통을 넷으로 쪼갠다. 손님이 왔다. 칼을 내려놓고 뛰어갔다. 자른 양배추를 둘둘 감는다. 손님이 왔다. 또 뛰어가서 값을 치러 준다. 이제 …
- 숲하루 글쓴이
- 2022-06-27 21:20
[작은삶 4] 다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 ] 다툼 우리 가게에서 나물을 손질하는데 누가 “사장님 되세요?” 묻는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인데 둘 다 모자를 쓰고 입을 가려서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하고 물었다. “어제, 저녁 여섯 시 조금 넘어서, 여기에서 카드를 썼는데 화면을 좀 보여줄 수 있나요?” 하신다. “네, 그러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여덟 살 딸이 독서실에서 동무와 싸웠단다. 싸운 아이 마음을 풀…
- 숲하루 글쓴이
- 2022-06-27 21:20
[작은삶 3] 나무 안아 보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 나무 안아 보기 또 앞산에 가자고 한다. 나는 가보지 않은 숲으로 가고 싶은데 선뜻 간다는 말이 안 나온다. 밤이 깊었으니 갈지 안 갈지는 일어나서 어쩌기로 했다. 곁님은 멧골로 가고 나는 몽돌이 있는 바닷가로 떠날까. 살짝 생각하다가 따라나선다. 앞산은 몇 걸음 갔지만 골골이 다니지 않았으니 가자, 숲에 가면 답답한 마음이 풀어질지도, 아니야 숲 그대로 보자. 그렇지만 나무를 꼭 안아 봐야지, 혼…
- 숲하루 글쓴이
- 2022-06-24 18: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