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54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히니 이르비치 2023.10.27.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히니, 이르비치, 2023)를 읽고서 한참 자리맡에 두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새 ‘서울·서울곁·서울밖’ 셋으로 가르는 담벼락이 높은데, ‘서울밖’ 다음으로 ‘시골·두메·섬’으로 더 가르곤 합니다. 곰곰이 보면 ‘서울곁’도 다 다릅니다. ‘고양’보다 ‘일산’이라는 이름이 드높은 고장은 ‘서울곁·서울밖’이어도 굳이 서울바라기를 안 한다고 느껴요. ‘성남’보다 ‘분당’이라는 이름이 높은 고장도 구태여 서울바라기를 안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부천과 인천은 ‘서울곁’이어도 ‘서울밖’에 가깝습니다. 남양주나 의정부나 구리는 어떨까요? 적잖은 ‘서울곁’조차 ‘서울밖’이기 일쑤요,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는 온통 ‘서울나라’인 터라, ‘서울로(인 서울)’를 이루지 못 하면 찬밥처럼 여겨요. 그렇다면 왜 ‘서울·서울곁·서울밖’ 같은 굴레가 생길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서울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부터 ‘시골·두메·섬’을 밑에 깔더군요. 서울곁으로 가지 못 하더라도 시골이나 두메나 섬으로는 안 가려고 합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53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03.10.15.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아스트리드 린드그렌/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03)은 나중에 《리사벳이 콧구멍에 완두콩을 넣었어요》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옵니다. 리사벳하고 마디켄 두 아이가 보내는 하루를 가만히 들려주는 줄거리입니다. 모든 나날이 놀이인 아이들 삶을 보여주고, 동무를 헤아리는 마음을 밝힙니다. 스스로 생각을 짓는 길을 알려주고, 꿈으로 나아가는 새빛을 속삭입니다. 예전에는 배움터에 다니건 안 다니건 모든 아이들이 들숲바다를 스스로 품으면서 뛰놀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배움터가 선 지는 이제 고작 온해(100년)입니다. 참말로 아이들은 어버이랑 마을 어른한테서 배웠어요. 책이 아닌 삶을 배웠고, 부스러기가 아닌 살림짓기를 배웠습니다. 돈으로 밥옷집을 사다 쓰는 틀이 아니라, 손수 밥옷집을 지어서 스스럼없이 이웃하고 나누는 살림새를 배웠어요. 《리사벳》에는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아이들 집안은 그다지 가멸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어느 아이는 무척 가난합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52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5.16.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을 새삼스레 읽습니다. 2024년에 〈건국전쟁〉이란 이름을 붙인 보임꽃이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되는 듯이 나오더군요. 이런 거짓부렁은 아무런 삶그림(다큐)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거짓부렁에 눈속임에 길들이기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24년에 ‘망나니 이승만’을 ‘나라 아버지’로 치켜세우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온다면, 2054년 무렵에는 ‘얼간이 전두환’도 이와 비슷하게 기리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올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뜨려 하지 않으면 거짓부렁에 놀아납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감은 채 힘·돈·이름에 사로잡혀서 멱살질만 해댄다면, 앞으로 아이들은 우리 발자취를 잊을 뿐 아니라, 우리 앞길마저 잃어버릴 만합니다. 망나니나 얼간이가 잘못했기에 그들을 돌로 쳐죽여야 하지 않습니다. 서정주나 고은 같은 얼치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이들을 바위로 쳐죽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이들 민낯을 낱낱이 밝혀서 어떤 허물이었는지 남기고서, 이제부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읽기 51 《그때 치마가 빛났다》 안미선 오월의봄 2022.10.4. 《그때 치마가 빛났다》(안미선, 오월의봄, 2022)는 치마하고 얽힌 삶길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여러 가지를 놓치거나 등돌리려고 합니다. 치마가 워낙 순이옷일까요, 아니면 누구나 두르던 옷일까요? 오늘날 치마는 어떤 옷가지일까요? 오늘날은 누구나 바지를 뀁니다. 치마를 입고 싶다면 치마를 두르고, 바지를 꿰고 싶다면 바지를 뀁니다. 순이뿐 아니라 돌이도 치마를 두르고 싶으면 즐겁게 두를 노릇입니다. 그저 옷이거든요. 이렇게 해야 하거나 저렇게 갈라야 하지 않습니다. 웃사내질로 순이를 억누르는 짓은 언제부터 누가 어디에서 일삼았을까요? 이 대목도 곰곰이 짚을 일입니다. 조선 오백 해는 어떤 틀이었고, 조선이 사라진 지 백 해 남짓 지나는 동안 우리 삶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우두머리는 한자·중국글을 ‘수글’로 여기고, 훈민정음을 ‘암글’로 여겼습니다. 중국말을 한자로 담아서 써야 ‘참글(진서)’이라고까지 여겼어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쓰는 글은 ‘무늬만 한글’이지는 않나 돌아볼 노릇이에요. 우리 삶과 넋과 마음을 우리말에 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8 《봉선화가 필 무렵》 윤정모 푸른나무 2008.9.1. 《봉선화가 필 무렵》(윤정모, 푸른나무, 2008)은 꽃이 필 무렵에 꺾여버린 꽃이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서 늦꽃으로 피어나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꽃을 지켜보는 분은 다 알 텐데, 이른꽃은 맑고 늦꽃은 짙습니다. 일찍 피는 꽃은 밝고, 늦게 피는 꽃은 환합니다. 어린꽃도 할매꽃도 모두 꽃입니다. 아기꽃도 할배꽃도 나란히 꽃이에요. 꽃은 모두 꽃일 뿐, 꽃이 아닌 꽃이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그러니까 나라가 서서 임금님이 있고 나리가 있고 벼슬아치가 있고 글바치가 있던 무렵에, 수수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글을 모르더라도 말로 모든 살림을 가르치고 물려주면서 아이를 사랑하던 사람들을 ‘들풀’이나 ‘들꽃’으로 가리키곤 했습니다. 들풀은 들풀이고, 들꽃은 들꽃입니다. 들풀하고 들꽃은 ‘민(民)’도 ‘백성’도 ‘민초·민중’도 ‘인민·시민·국민’도 아닙니다. ‘임금·나리·벼슬아치·글바치’는 예나 이제나 ‘들풀·들꽃’이라는 이름을 좀처럼 안 쓰려 하거나 꺼리거나 내칩니다.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풀도 꽃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7 《오른손에 부엉이》 다테나이 아키코 나카반 그림 정미애 옮김 씨드북 2021.6.23. 《오른손에 부엉이》(다테나이 아키코/정미애 옮김, 씨드북, 2021)를 읽었습니다. 아이하고 어른·어버이가 서로 어떤 사이로 지낼 적에 서로 보금자리를 이루면서 마을이 아늑할까 하는 실마리를 잘 들려주었구나 싶습니다. 어린이는 집에서 얼마든지 느긋하게 배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어버이가 집에서 함께 배우고 같이 살림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밑바탕으로 둘 노릇입니다. 어린이를 배움터(학교)에 넣기만 한대서 아이들이 배우지 않습니다. 틀에 맞추어 따박따박 외우도록 내모는 배움틀이라면, 아이들은 골이 아프고 벅차고 힘들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어린이는 놀 틈을 누려야지요. 책을 펴서 배우기도 해야겠습니다만, 먼저 집안일을 거들 줄 알아야겠고, 집살림을 거느리는 길도 차근차근 익혀야지요. 집안일하고 집살림을 등진 채 머리에 부스러기(지식)만 잔뜩 집어넣으면, 어느새 애늙은이처럼 시들고 말아요. 왼쪽하고 오른쪽이 오래도록 헷갈릴 수 있습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보면 왼쪽이지만, 나를 보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4 《제1권력》 히로세 다카시 이규원 옮김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3.20. 《제1권력》(히로세 다카시/이규원 옮김,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은 글쓴이가 앞서 선보인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를 가다듬고 보탠 판입니다.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처럼 작은이름을 붙인 이 꾸러미는 숱한 말썽과 말밥이 어떤 뒷낯으로 하나하나 생겨났나 하고 짚습니다. 우리나라가 겪은 사슬판(일제강점기·식민지)뿐 아니라 한겨레싸움(한국전쟁)에도 깊이 발을 담근 그들(권력자)은 독일 나치하고도 얽혔다지요. 2022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갑니다. 러시아는 2022년에 앞서도 쳐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도 푸른별 여러 나라로 몰래 쳐들어가기 일쑤였고, 숱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한싸움(민족분쟁)에도 깊이 얽혔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쪽하고 저쪽이 엇갈려 미워하면서 싸우는 얼개이지만, 뒷낯을 보면 ‘그들 한놈’이 슬그머니 두 일터(회사)로 갈라서 이쪽하고 저쪽에 조금 다른 총칼(전쟁무기)을 팔아먹은 발자취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총칼은 돈이 쏟아지는 장사판일 뿐 아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3 《오만한 제국》 하워드 진 이아정 옮김 당대 2001.1.9.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이아정 옮김, 당대, 2001)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요즈음 이분 책을 곁에 두는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나, 이분이 싸움날개(전투폭격기)를 몰며 꽝꽝 터뜨리던 무렵 스스로 지저른 죽임짓을 밝히는 대목은 앞으로도 눈여겨볼 글줄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쪽만 ‘때린이(가해자)’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올바르다(정의의 편)고 외치면서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죽임짓을 일삼은 무리가 있어요. 하워드 진이라는 분은 그이 스스로 ‘미국 싸움날개’를 몰지 않았다면, 또 그 싸움날개가 무슨 뜻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다면, ‘역사’라는 이름을 내세운 온갖 거짓말을 캐내려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보짓을 일삼은 적이 있어도 깨우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보짓을 한 적이 없더라도 오히려 바보스러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못 헤어나오기도 합니다. 눈을 뜨고 참길을 걸어가면서 참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언제나 되새기려 하지 않는다면, 그만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휘둘리는 허수아비 노릇을 하기 일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2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 조민제·최동기·최성호·심미영·지용주·이웅 엮음 심플라이프 2021.8.15.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조민제와 다섯 사람 엮음, 심플라이프, 2021)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풀꽃나무에 붙은 이름을 《조선식물향명집》을 바탕으로 다시 하나하나 짚으면서 새롭고 깊으면서 넓게 돌아보는 얼거리입니다. 1928쪽에 이르는 두툼한 풀꽃책이고, 웬만하다 싶은 풀꽃나무 이름을 이 꾸러미로 차근차근 찾아볼 만합니다. 엮은이 여섯 사람은 풀꽃나무를 틀에 박힌 굴레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풀이름도 꽃이름도 나무이름도 처음에는 언제나 숲사람(시골사람)이 숲을 품고 살아가는 길에 숲빛을 담아서 고을·마을·고장뿐 아니라 집집마다 다르게 가리킨 뿌리를 헤아리려고 애씁니다. 풀꽃나무 이름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말도 처음에는 모두 ‘사투리’입니다. 고을·마을·고장·집마다 다르게 쓰는 말씨였는데, 서울이 크고 나라가 서면서 ‘맞춤말(표준말)’을 세웠을 뿐입니다. 맞춤말은 으레 한 가지 이름만 세웁니다만, 사투리는 하나일 수 없어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1 《한국 고라니》 김백준·이배근·김영준 국립생태원 2016.3.28. 《한국 고라니》(김백준·이배근·김영준, 국립생태원, 2016)를 읽고서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들짐승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나라가 드뭅니다. 범에 여우에 늑대가 자취를 감추었고, 곰도 없다시피 하지만 겨우 몇 마리를 살려서 풀어놓는데, 멧돼지하고 고라니를 아주 숨도 못 쉬도록 짓밟아요. 우리나라는 틀림없이 작습니다. 작되 멧골과 숲과 들과 바다가 넓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나라지기도 고을지기도 이 작은 나라에 깃든 아름다운 들숲바다를 아름빛으로 살리는 길을 여태·아예·그야말로 안 갑니다. 이 작은 나라에 총칼(전쟁무기)은 끔찍하게 많고, 이 작은 나라에서 돌이(남성)는 갓 스무 살에 싸움터에 끌려가서 바보로 뒹굴어야 합니다. 그런데 돌이 가운데 돈·이름·힘이 있으면 싸움터에 안 끌려가고 뒷길로 빠져나옵니다. 또는 종잇조각(대학생 신분)이 있으면 싸움터를 한참 미루거나 빠져나올 길이 있어요. 이 땅에 고라니가 몇 마리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지요. 푸른별(지구)에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용케 살아남은 작은 들짐승인 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