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지키는 돌보는 ― 경남 진주 〈형설서점〉 돈을 버니까 하는 일은 모든 사람을 좀먹습니다. 왜냐하면, ‘일’이라는 낱말은 ‘일다·일어나다’가 바탕이요, ‘일으켜서 잇는’ 결이 밑동이거든요. 바람이 일고 바다가 인다고 합니다. 밥을 지으려고 쌀을 입니다. 하면서 차근차근 이루어 가기에 ‘일’이요, 하는 동안 서로 이야기가 태어나기에 ‘일’입니다. 어깨에 이듯 차곡차곡 올리면서 살림을 넉넉하게 가다듬는 ‘일’입니다. 가만히 있는다면 어느새 고입니다. 고이는 결이라서 ‘고요’라고 합니다. 숨도 몸짓도 소리도 없는 ‘고요’인데, 그만 넋이나 빛이 사라지면 ‘고이’고 말아서 썪어요. 그저 꿈꾸는 씨앗이나 ‘고치’라면 머잖아 깨어날 텐데, 넋이나 빛이 사그라들면 죽음(썩음)으로 치닫습니다. 일이란, 마음을 잇고 손을 이으면서 땅을 일구고 서로 생각을 일으켜서 너울너울 싱그럽게 바람과 바다를 하나로 여미는 길입니다. 이러한 숨빛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서 돈바라기로 흐르는 오늘날 숱한 ‘일자리(직업)’는 오히려 모든 사람을 갉아요. 사랑바라기나 꿈바라기가 아닌 돈버러지로 치닫거든요. 진주에 깃들어서 〈형설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늦봄 바라봄 ― 수원 〈책 먹는 돼지〉 인천 배다리에서 마실하고서 우리말 이야기꽃을 폈습니다. 수봉산 기스락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아침에 보낼 글을 매듭짓고서 수원으로 전철을 타고 넘어갑니다. 여름을 앞둔 늦봄 끝자락은 뜨끈뜨끈합니다. 어제 들려준 여러 낱말을 되새깁니다. ‘굴’을 캐는 바닷가 시골에서는 ‘굴’이라 말하지 않고, 으레 ‘꿀’이라고 말합니다. 곰곰이 보면, ‘굴’이란 스스로 멈추면 ‘구덩이’요, 스스로 흐르면 ‘구름’이요, 스스로 씨앗으로 삼아서 품으면 바다구슬(진주)을 낳는 ‘꿀’로 갈 테니, ‘굴’이란 ‘꿈’을 품은 바닷빛이지 싶어요. 바다라는 곳은 ‘바탕’을 이루는 ‘바닥’이기에, 모든 꿈도 바로 이곳 바다에서 태어나니, ‘굴’이란 스스로 밤빛(어둠)으로 잠들면서 포근히 쉬면서 새로 깨어날 첫길이라고도 여길 만할 테고요. 이제 세류동 〈책 먹는 돼지〉에 닿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그림책 《응시》를 기리면서 김휘훈 님이 책수다를 폅니다. 좀 늦게 닿았기에 책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기다립니다. 그림책 《응시》는 ‘바라봄’을 말없이 들려줍니다. 바다에서 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이미 벌써 아직 ― 부산 〈학문서점〉 이미 읽은 책을 되읽습니다. 예전에는 그무렵까지 살아온 나날을 바탕으로 읽었고, 오늘 읽는 책은 오늘까지 살아낸 숨결을 바탕으로 익히는 살림입니다. 열 살에 읽은 책을 스무 살에 되읽으면 남다르고, 서른이랑 마흔이랑 쉰에 되읽으면 새롭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떻게 느꼈는지 돌아보면서 되읽습니다. 지난날 무엇을 놓쳤는지 짚고, 어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한결같이 바라보는 대목을 곱씹습니다. 속깊은 책이라면 두고두고 되읽습니다. 얕은 책이라면 몇 쪽 넘기지 않아도 벌써 줄거리가 다 보이고 허전합니다. “나라면 이런 줄거리를 이처럼 안 쓸 텐데.” 하고도 생각하고, “나라면 이 줄거리를 어떻게 살릴 수 있나?” 하고 살핍니다. 굳이 모든 사람이 책을 쓸 까닭이 없지만, “내가 책을 쓴다면 글결을 어떻게 북돋울 만한가?” 하고 톺아보면서 더 깊고 넓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아직 안 읽은 책을 장만합니다. 앞서 읽은 책을 되사더라도 오늘 손에 쥐는 책은 ‘새책’입니다. 새책집에서도 새책을 장만하고, 헌책집에서도 새책을 사들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책은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길, 메, 내 ― 구례 〈봉서리책방〉 00시에 하루를 엽니다. 05시 30분에 택시를 불러 고흥읍으로 갑니다. 06시 20분 첫 시외버스로 여수로 건너가고, 09시부터 여수 어린배움터에서 글읽눈(문해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겉으로 적힌 글씨만 훑을 적에는 ‘읽기 아닌 훑기’입니다. 둘레에서는 그냥 일본말 ‘문해력’을 쓰지만,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글읽기’를 얘기해야 생각을 나눌 만하다고 느낍니다. 북중미 텃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면서 땅을 빼앗은 이들은 ‘북중미 텃사람 말’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숱한 글바치(작가·교사·기자)는 어린이 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쳇바퀴에 갇힌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를 외우라고 닦달하는 얼거리입니다. 처음부터 어린이하고 푸름이 모두 못 알아들을 얄궂은 말을 쓰면서, 이 얄궂은 말을 억지로 외우라고 내모는 틀이 ‘문해력 교육’인 셈입니다. 순천을 거쳐 구례로 건너갑니다. 다시 택시를 탑니다. 택시 일꾼은 책집 앞까지 모시겠다고 자꾸 말씀하지만, 저는 책집을 둘러싼 마을을 걸을 마음이기에 “내려서 걸어갈 생각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 ― 전남 순천 〈도그책방〉 새로 여민 책을 들고서 순천마실을 갑니다. 어릴 적부터 ‘책숲마실’을 해왔고, 이 삶을 고스란히 《책숲마실》이라는 이름으로 담았습니다. 책을 사고파는 곳도 숲이고, 책을 빌려서 읽는 데도 숲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마음에 안 드는 책이 있을 텐데, 뭇책이 어우러지기에 책숲입니다. 사람은 숲을 품고서 살아가기에 사람답습니다. 숲을 품지 않고서 살아간다면 사람빛을 잊다가 잃습니다. 몸짓에 마음이 드러나고, 말씨에 마음이 나타납니다. 글줄에 마음이 퍼지고, 눈망울에 마음이 흘러요. 책이 태어나려면 먼저 삶을 일굴 노릇입니다. 스스로 그려서 일구는 삶이 있기에, 이 삶을 누리는 하루를 마음에 담습니다. 삶을 마음에 담으니 날마다 천천히 가꾸고 돌봐요. 가만히 자라나는 마음에서 말이 피어납니다. 삶이 있기에 마음에서 말이 샘솟고, 삶이 없으면 마음에서 아무런 말이 안 나옵니다. 고흥 시골집부터 순천책집을 오가는 길은 서울 오가는 길 못지않게 품과 돈이 듭니다. 시골에서 살며 이 대목을 또렷이 느낍니다. 서울에서야 인천이나 연천이나 남양주나 안산쯤 가볍게 오갈 만하고, 천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파란바닥 ― 인천 〈모갈1호〉 우리 집 큰아이는 돌을 맞이하기 앞서 찰칵이를 손에 쥐었습니다. 한 손에는 붓을 쥐고, 다른 손에는 찰칵이를 쥐었어요. 어머니가 쥐는 뜨개바늘은 이따금 쥘 뿐, 아버지가 쥐는 찰칵이하고 붓을 으레 낚아챘습니다. 이러다가 열 살 즈음부터 찰칵이는 시큰둥하더니 거의 붓하고 부엌칼을 쥡니다. 작은아이는 찰칵이는 시큰둥한 채 뛰어놀며 자라다가 낫이랑 도끼랑 호미랑 삽을 으레 쥐더니, 어느 날부터 누나 곁에서 붓을 쥐고, 또 찰칵이를 자주 쥡니다. 작은아이도 가끔 부엌칼을 쥡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나무를 천천히 늘립니다. 나무는 서둘러 자라지 않으니 얼른 심어서 빨리 키워야 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주렁주렁 달아도 반갑고, 열매가 없이 지나가도 고맙습니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있기에 흐뭇합니다. 한봄볕을 누리면서 인천 배다리 〈모갈1호〉로 걸어갑니다. 해는 언제나 고루 비춥니다. 어느 곳만 더 비추지 않아요. 어느 곳을 덜 비추지 않습니다. 바람도 어느 곳에나 찾아갑니다. 바람이 안 찾아가는 데는 없어요. 우리는 한겨레라고 일컫습니다. 하늘겨레이자 해겨레이고, 하나인 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누가 사읽는가 ― 부산 〈국제서적〉 책이란 마음을 틔우는 조그마한 씨앗이면서, 이 마음에 스스로 사랑을 심는 길을 넌지시 비추는 빛줄기인 줄 천천히 받아들였습니다. 열 살 무렵에 흰고니나 여우나 지게꾼이나 옛 시골사람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책이란 싱그러운 이야기샘이라고 느꼈어요. 예전에는 ‘마을책집’보다는 ‘글붓집(문방부)에 딸린 책시렁’이 흔했습니다. 어린이는 ‘글붓집 책시렁’에서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만났고, 어른은 큰책집보다는 조그마한 책집에 “이 책 좀 들여놓아 주십시오” 하고 여쭈고서 여러 날 기다린 끝에 받곤 했어요. 요새야 누리책집에서 바로바로 살 뿐 아니라, 하루조차 안 기다리고 책을 받는다고 하지만, 손에 쥐어 차근차근 넘기는 책은 빨리 읽어치우는 종이뭉치가 아니었어요.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마음을 새기고 가꾸는 빛씨앗인 책입니다. 푸름이하고 어린이는, 책을 안 사더라도 책집마실을 하는 틈을 내는 마음으로도 넉넉히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느껴요. 책시렁을 돌아보는 눈망울로도 즐겁게 생각을 밝힐 수 있는 푸름이입니다. 골마루를 거니는 발걸음으로도 신나게 하루를 노래할 수 있는 어린이예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이미 벌써 아직 ― 부산 〈학문서점〉 이미 읽은 책을 되읽습니다. 예전에는 그무렵까지 살아온 나날을 바탕으로 읽었고, 오늘 읽는 책은 오늘까지 살아낸 숨결을 바탕으로 익히는 살림입니다. 열 살에 읽은 책을 스무 살에 되읽으면 남다르고, 서른이랑 마흔이랑 쉰에 되읽으면 새롭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떻게 느꼈는지 돌아보면서 되읽습니다. 지난날 무엇을 놓쳤는지 짚고, 어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한결같이 바라보는 대목을 곱씹습니다. 속깊은 책이라면 두고두고 되읽습니다. 얕은 책이라면 몇 쪽 넘기지 않아도 벌써 줄거리가 다 보이고 허전합니다. “나라면 이런 줄거리를 이처럼 안 쓸 텐데.” 하고도 생각하고, “나라면 이 줄거리를 어떻게 살릴 수 있나?” 하고 살핍니다. 굳이 모든 사람이 책을 쓸 까닭이 없지만, “내가 책을 쓴다면 글결을 어떻게 북돋울 만한가?” 하고 톺아보면서 더 깊고 넓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아직 안 읽은 책을 장만합니다. 앞서 읽은 책을 되사더라도 오늘 손에 쥐는 책은 ‘새책’입니다. 새책집에서도 새책을 장만하고, 헌책집에서도 새책을 사들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책은 새책이면서 헌책입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하루 2023.9.28. 가시아버지 떠나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가시아버지가 오늘 낮에 몸을 내려놓았습니다. 아침에 고흥 도양읍 마을책집 〈더바구니〉로 책꾸러미를 챙겨 가서 노래꽃(시)을 천에 열두 자락 옮겨적고서, 고흥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나와서, 북적이는 한가위 시골에서 저잣마실을 한 뒤에, 시골버스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한참 볕바라기를 하며 걸었는데, 가시아버지 얘기를 듣고서 부랴부랴 길(교통편)을 살폈습니다. 이튿날이 한가위라, 용케 순천에서 용산으로 가는 이른아침 칙폭(기차)이 몇 자리 있습니다. 단골 택시 기사님한테 말씀을 여쭈어, 새벽바람으로 택시를 달려 순천으로 가기로 합니다. 가시아버지는 내내 앓았습니다. 여든네 해를 앓았습니다. ‘끔찍한 좀(병)’을 앓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길하고 먼 ‘불앓이(화병)’를 했어요. 이래도 불앓이에, 저래도 불앓이였습니다. 처음 가시아버지를 만나던 날, 바로 이 불앓이가 가시아버지 몸마음을 불태울 텐데 싶었으나, 그무렵 가시아버지는 ‘아직 웬만해서는 팔씨름도 안 진다’고 여기는 웃사내 같은 마음마저 짙었습니다. 앓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하루 ― 인천 〈시와 예술〉 날마다 나무를 바라보노라면, 이렇게 춤을 잘 추면서 아름답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인천을 떠나던 2010년 가을에 곁님하고 “우리는 나무로 우리 집을 빙 두를 수 있고, 마당에서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보금자리를 누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곁님은 ‘시골 아닌 멧골’로 가기를 바랐기에, 아직 머무는 시골은 작은 보금자리요, 앞으로는 너른 보금터인 멧숲을 누리려는 꿈을 그려요.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에도, 큰아이를 2008년에 낳고서 같이 골목마실을 하는 사이에도, 큰고장이며 서울에서 자라나는 나무는 늘 ‘춤스승’이었습니다. 작은 골목집에서 지붕을 덮는 나무도, 길거리에서 매캐한 기운을 걸러내는 나무도, 바닷물결 소리를 내면서 춤추기에 누구나 숨쉴 수 있다고 느꼈어요. 칠월 한복판은 한여름이기에 한 해 가운데 햇볕을 가장 신나게 듬뿍 누리는 철입니다. 둘레에서는 이맘때가 가장 덥다고 여기거나 놀이철(휴가시즌)로 치는 듯싶으나, 실컷 햇볕을 머금으면서 몸을 살찌우고, 신나게 땀을 쏟으면서 찌꺼기를 내놓는 나날로 맞아들입니다. 어제 〈시와 예술〉을 들렀으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