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노래 우리말꽃 숲에서 짓는 글살림 47. 셈꽃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배움책(교과서)을 보면 ‘算數’처럼 한자로 적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꽤 오래 썼고, 요새는 ‘수학(數學)’으로 쓰지요. 총칼수렁(일제강점기)이 끝난 뒤에 지긋지긋한 일본말 굴레에서 벗어난 만큼, 배움책을 새로 엮을 적에 끔찍한 일본 한자말을 걷어내자는 물결이 일었습니다. 이즈음 ‘셈본’이란 이름으로 교과서가 나왔어요. 이러다가 남북이 갈려서 싸움수렁이 불거졌고, 남녘에 군사독재가 서슬이 퍼렇게 으르렁대면서 ‘셈본’이란 이름은 짓눌려 사라져야 했고, ‘수학·산수’ 두 가지 이름만 나돌았습니다. ‘셈’이란 무엇일까요? ‘세다’는 어떤 결을 나타낼까요? 적잖은 분은 ‘셈’은 얕거나 낮은 낱말이요, ‘수학’이나 ‘계산’ 같은 일본 한자말을 써야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칠 만하다고 여깁니다. 참말로 그럴까요? 우리는 ‘셈’이라는 낱말을 아직 모르거나 찬찬히 생각한 적이 없지는 않을까요? 셈(셈하다·셈나다) ← 계산, 산(算), 산수(算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45. 꿍꿍쟁이 일본책을 읽다가 ‘일본사람은 이런 데에서 이런 영어를 흔히 쓰는구나?’라든지 ‘일본사람은 이런 한자말을 참 좋아하네?’ 하고 느낍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영어나 한자말을 쓰지 않았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만하지요. 일본에 네덜란드를 비롯한 바깥물결이 출렁이기 앞서까지는 ‘그냥 일본말’을 썼어요. 일본에서도 벼슬아치나 먹물을 뺀 여느 사람들, 이를테면 흙을 일구고 바다를 마주하던 수수한 마을사람은 언제나 마을말을 썼습니다. 어느 나라이건 마을사람은 마을말을 쓰고, 바닷가 사람은 바다말을 씁니다. 숲에 깃든 사람은 숲말을 쓰며, 멧자락에 깃들어 살기에 멧말을 쓰고, 너른 들판을 품에 안으면서 들말을 쓰지요. 우리나라나 일본은 한자가 스며든 지 얼마 안 됩니다. 한자가 스며들었어도 임금이나 벼슬아치나 먹물 언저리에서나 조금 쓸 뿐, 99.99퍼센트에 이르는 조촐한 삶터에는 한자가 스미지 않았어요. 한자말이라 하면 으레 중국말을 떠올릴 만하지만, 막상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44. 돌봄칸 아픈 사람이 퍼집니다. 불길처럼 번집니다. 곳곳에서 앓기에 ‘돌림앓이’라고 합니다. 돌고도는 아픈 눈물은 무엇으로 달랠까요. 비가 주룩주룩 내려 씻어 줄까요. 바람이 싱싱 불어서 보듬어 줄까요. 비가 뿌리고 바람이 스친 하늘은 파랗습니다. 비바람이 훑은 뒤에는 한결 상큼하면서 맑은 날씨로 갑니다. 어느 무엇으로도 비바람처럼 맑으면서 싱그러우면서 고우면서 파랗고 푸르게 달래듯 씻어 주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우리 삶터에 아픈 사람이 사라지고 앓는 사람도 기운내어 일어나도록 하자면, 틈틈이 비바람이 찾아들어 온누리를 어루만져 줄 노릇이지 싶습니다. 돌림앓이 요사이는 ‘병(病)’이란 말을 흔히 쓰고, ‘병원’이란 이름을 붙이며, 이곳에는 ‘병실’이 가득합니다. 이 땅에서 ‘병’이란 한자를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참으로 오래도록 이 땅에서 쓰던 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아프다’요, 둘은 ‘앓다’입니다. 몸이 다칠 적에 ‘아프다’라면, 몸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움직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43. 수수께끼로 배우는 삶말 수수께끼란 무엇일까요? 한자말로 비겨 본다면 ‘비밀·정체불명·불가사의·불가해·원인불명·비결·미궁·오리무중·미로·난맥·묘하다·신묘·신비·신기·의문·미해결·미제·형이상학·기이·기묘·기상천회·오묘·괴상·괴이·비정상’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비겨 본다면 ‘퀴즈·미스터리·베일·퍼즐’이기도 합니다. 가볍게 한두 가지 뜻풀이로 ‘수수께끼’를 바라볼 수 있으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말 그대로 수수께끼가 되어 도무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수렁이나 바다밑으로 풍덩 빠져든다고 할 만해요. 얼핏 단단해 보여. 아마 딱딱해 보이지. 어쩌면 튼튼해 보이고. 그런데 무척 부드럽지. 모래를 품었지. 흙을 품었어. 뜨거운 불길을 품었고. 비바람 듬뿍 담았어. 눈을 감고 돌아다녀. 조용히 온누리를 돌아. 묵직한 몸을 두고 다녀. 그저 마음으로 날지. 너희는 날 다리로도 삼고. 디딤자리로도 삼고. 집으로도 삼지. 무덤으로도 삼더라. (수수께끼 001) 2020년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22. 길벗 우리 삶터에서 말살림을 돌아보면 아직 우리 손으로 새말을 짓거나 가꾸는 힘이 모자라지 싶습니다. 손수 짓거나 스스로 가꾸려는 마음이 퍽 모자라구나 싶기도 합니다. 이웃나라에서 쓰는 말을 고스란히 따오는 분이 많은데,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말을 지어서 쓰자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구나 싶기도 해요. 나라(정치·행정)나 배움터(초·중·고등학교·대학교)뿐 아니라, 글을 쓰는 이까지, 제 나름대로 깜냥을 빛내어 말 한 마디를 새롭게 길어올리지 않기 일쑤입니다. “새 술은 새 자루에”라는 이웃나라 삶말이 있습니다. 저는 ‘속담(俗談)’이 아닌 ‘삶말’로 고쳐서 쓰는데요, 한자 ‘속(俗)’은 ‘속되다’처럼 여느 사람을 낮거나 하찮게 보는 마음을 담아요.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하게 쓰는 말은 낮거나 하찮게 보면서, 힘을 거머쥔 이들이 쓰는 한자를 높이려는 기운이 서린 ‘속담’이란 낱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속담이란 수수한 사람들이 저마다 삶자리에서 길어올린 짧은 말이에요. 삶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21. 막말잔치 어릴 적에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옛말을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린이가 이 옛말을 알아듣기에는 어려울 만해요. 그러나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면 “바람이 살랑 분다”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는 결이 다르니, 아 다르고 어 다른 까닭을 어렴풋이 헤아릴 만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말맛’입니다. 말끝을 살짝 바꾸면서 말맛이 바뀌어요. 다시 말하자면 말끝마다 말결이 달라 말맛이 다릅니다. 말끝을 바꾸기에 말결이 새롭고 말맛이 살아나면서 말멋까지 생길 수 있어요. 말잔치 : 말로만 듣기 좋게 떠벌리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막말 : 1.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 ≒ 막소리 말을 둘러싼 두 가지 낱말을 헤아려 봅니다. 먼저 ‘말잔치’입니다. 말잔치를 한다고 할 적에는 말로 즐거운 잔치가 아니라 떠벌이기를 가리켜요. ‘잔치’라는 말이 붙는데 뜻은 딴판이지요. 다음으로 ‘막말’을 헤아리면, 마구 하는 말이기에 줄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9. 책숲마실 제가 어릴 적에는 어디를 갈 적에 그냥 ‘간다(가다)’고 했습니다. 그저 갈 뿐이었어요. 옆집에 가든 아랫집에 가든 동무가 사는 집에 가든 늘 간다고 했어요. 배움터에도 가고 저잣거리에도 가며 작은아버지네에도 그저 갔습니다. 책집에도 가며 가게에도 가고 기차나루에도 갔지요. 좋아하는 곳이 따로 있어서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뿐 아니라 둘레에서도 하나같이 ‘간다’고 했고, ‘가자’고 했으며, ‘갈까’ 하고 물었어요. 때로는 ‘찾아가다’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여행’이나 ‘산책’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여행·산책’ 같은 말을 곳곳에서 쓰며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부쩍 줄어요. 그러고 보면 “바람을 쐰다”고도 으레 말했지만, 이 말도 어느새 자취를 감춥니다. 저는 책집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집을 퍽 자주 갔습니다. 책집을 자주 가니 ‘드나든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고, ‘쏘다닌다’라든지 ‘들락거린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2. 가을에 기쁘게 짓는 말 예전에는 누구나 스스로 말을 지어서 썼습니다. ‘예전’이라고 첫머리에 말씀합니다만, 이 예전은 ‘새마을’ 물결이 생기기 앞서요, 배움터라는 곳이 없던 무렵이며, 찻길이나 씽씽이(자동차)가 시골 구석까지 드나들지 않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전에 누구나 스스로 말을 지어서 쓰던 때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누구나 스스로 삶과 살림을 짓던 때입니다. 돈으로 밥이나 옷이나 집을 사지 않던 때에는, 참말로 사람들 누구나 제 말을 스스로 지어서 썼어요. 남한테서 배우지 않고 어버이와 동무와 언니와 이웃한테서 말을 물려받던 때에는 고장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다 다른 말을 저마다 즐겁고 고우며 정갈하게 썼어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시골말이 차츰 밀리거나 사라집니다. 오늘도 즐겁고 어여쁘게 고장말을 쓰는 할매와 할배가 많습니다만, 할매와 할배가 아닌 마흔 줄이나 쉰 줄만 되어도 고장말을 드물게 쓰고, 스무 살이나 서른 살 즈음이면 높낮이를 빼고는 고장말이라 하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 손수 짓는 살림을 잃으며 말을 잃다 한자말을 쓰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영어를 쓰는 일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한자말하고 영어를 안 쓰는 일은 놀랍지 않습니다. 어느 말을 골라서 쓰든 우리 마음을 알맞게 나타내거나 즐겁게 쓸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알맞게 나타내거나 우리로서는 즐겁게 쓰는 말이라 하지만, 우리가 쓰는 말을 이웃이나 동무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어렵게 여긴다면 어떠할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이들은 씨앗을 심습니다. 봄에 심은 씨앗이라면 으레 가을에 거두기에 가을걷이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골살림이 흙두레(농협)나 열린배움터(대학교)나 나라일터(관청)에 가면 달라져요. 흙두레·열린배움터·나라일터에서는, 또 책을 쓰는 이들은 ‘흙’이 아닌 ‘토양’을 말합니다. ‘흙을 만진다’고 하지 않고 ‘토양을 관리한다’고 하지요. ‘씨앗을 심는다’는 말을 ‘파종을 한다’고 하고, ‘봄’을 ‘춘절기’라 하며, ‘거두기’를 ‘수확’이라 하고, ‘가을걷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