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0] 사위 온다고 “엄마, 우리 내일 옷 편하게 입고 가도 되나?” “그래, 그래도 깔끔하게 입고 절은 해야지.” “나도 같이 하면 되나?” 지난해 설에 사위가 처음 우리 집에 왔다. 처음 오는데다가 그날이 설날인데도 세배를 하지 않았다고, 처음 온 애한테 말도 걸지 않고 싸늘하게 굴었다. 이잔치를 치르고서 처음 우리 집에 온다. 잔치를 치르던 무렵에 사위가 엉덩이를 수술하느라 노래를 듣지 못했다. 우리는 딸이랑 사위가 힘들게 신혼여행을 갔다가 잘 쉬지도 않고서 우리 집으로 오면 또 덧날지 몰라, 좀 쉬엄쉬엄 다 낫거든 오라고 했다. 여행 때도 안 좋아 힘들었다는데, 돌아와서 바로 다시 수술했단다. 아직도 거즈로 닦는다. 며칠 더 있으면 한결 나을 텐데, 저희들도 시집 인사를 미루기엔 눈치가 보였나. 내가 눈치를 주었나. “엄마 나 원서 네 군데 냈잖아, 다 붙었어. 처음 붙은 데가 가장 좋아서 다른 세 곳에는 못 간다고 했어.” 자랑하는 딸을 보니 이 아이를 걱정하던 어린날 딸이 아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한테 사랑을 가장 못 받았을지 모르는 작은딸인데, 작은딸은 동생을 오히려 귀여워했다. 작은딸이 나서서 동생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9] 딸이 온다고 이틀 뒤에 작은딸네가 온다. 짝을 맺으니 사위가 덤으로 따라온다. 딸은 따라오는 일이 있는 이름 같다. “장모님!” 하고 부르는 말이 처음에는 낯설다가 이제는 살갑다. 처음 인사 왔을 적에는 목소리에 꽤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부드러운데 저도 나처럼 낯설 테지. 그나저나 무얼 해야 하나. 그제는 둘이 덮을 이불을 빨고 어제는 화장실 구석구석 씻고 오늘은 떡을 맞추고 고기집에 갔다. 서로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딸 잘 봐달라고 조금 흉내만 낸다. 엄마가 마음 쓰는 줄은 모르고 받으면 마음이 느긋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딸이 벌써 남이 된 듯하다. 장만했니 안 했니 말을 먼저 하지 않다가 하룻밤 자고 갈 적에 짠하고 차에 옮겨 실어 주어야지. 딸아이는 아직 이쪽 일터를 매듭짓지 않아서 살림살이가 어설프다. 일터를 옮겨야 해서 새해 첫날 면접을 보았단다. 우리 딸은 처음부터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유치원이 낫다고 해서 이제껏 유치원에서 일했다. 이 유치원에서는 수녀님하고 일한다. 이 유치원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결혼을 하면서 그만두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8] 드디어 책이 왔다 책이 온다는 쪽글을 받고 책맞이를 한다. 책 낼 적에 살피고 모아둔 종이를 버리고 책상을 닦았다. 책상 밑도 물걸레도 닦고 책꽂이에 올려둘 자리에 쌓인 먼지도 닦는다. 두 시가 훌쩍 넘자 문을 열어 봤다. 네 시가 되자 또 열어 보았다. 아저씨한테 전화하니,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더 걸린단다. 어제 새벽에는 ㅎ 신문에 새책 알림글이 뜬다고 잠 설치면서 보고, 보고 나니 누리책집(인터넷서점)에 책이 안 떴다. 뜨기까지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이제는 책이 오는데 하루가 길다. 상자를 뜯어 책을 꺼냈다. 막상 펼치려니 또 떨렸다. 가슴에 꼭 안았다. 오돌토돌한 겉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냄새도 맡았다. 가운데 적힌 책이름을 만지니 도톰하다. 먹빛으로 살짝 솟은 글씨가 있으니 결이 살고 겉그림도 겉종이도 나무를 만지는 듯하다. 우리 집 수국이 새로 꽃을 피웠다. 자그마하지만 벌써 네 송이째. 책을 가까이 놓고 찍었다. 아스파라거스가 푸르게 수북하게 자란 잎을 당기고 봄부터 한 해 내내 꽃을 피우는 작은 보랏빛 꽃줄기를 당겨 책이랑 또 찍었다. 해가 넘어가느라 어둡다. 밝은 날 다시 꽃이랑 풀잎을 얹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7] 부조금 꽃잔치(결혼식)를 마쳤다. 딸은 괌으로 떠났다. 괌에서 보내는 하루를 사진으로 보내온다. 딸아이 눈과 손을 거쳐서 저 너머 모습을 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닷가가 그림 같다. 구름이 물결치는 듯하다. 사람들이 헤엄치는 바닷물이 맑다. 물속으로 모래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놀면 참 신나겠다. 두 사람이 여기에 오기까지 숱한 사람들이 기뻐해 주었다. 꼭 올 만한 사람한테 모심글(청첩장)을 먼저 뿌렸다. 그리고 한때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먹은 사람한테 보내 보았다. 글동무한테도 보냈다. 누리마당에도 띄웠다. 우리 아이 꽃잔치(결혼)를 누가 말하면 고마웠다. 막상 날이 다가오니 못 오는 사람들이 돈을 보낸다. 이 꽃돈을 받지만 마음이 무겁다. 도리어 가라앉고 슬프다. 차라리 벌써 보낸 모심글을 까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들어오는 돈이 그동안 내가 쌓은 살가운 값일까. 꼭 오리라 꼭 하리라 여긴 사람은 안 하고, 뜻밖이라 여길 사람이 성큼 내고 온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를 찾아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고맙다. 눈물이 글썽했다. 물이 닿으면 곱게 꾸민 얼굴이 망가진다기에 눈물을 꾹 참는다. 친척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6] 눈떨림 눈이 떨린다. 바른쪽보다 왼쪽이 좀 들어가고 눈꺼풀이 처져도 떨리지는 않았는데, 팔딱팔딱 떨리다가 멈추기를 사흘째 한다. 일이 한꺼번에 몰려서 그런가. 작은딸 잔치(결혼식)도 이제 이틀 남았고, 내 새로운 책이 곧 나온단다. 씻는데 숨 쉬는 길이 쏴하다. 이대로 멎을 듯 어질하다. 내가 많이 떠는구나. 날이 겹치거나 다른 일로 못 온다는 사람이 많다. 꽃돈(축의금)이 들어오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일을 치른 뒤 쪽글을 보낼 생각이지만, 그래도 바로 쪽글을 보낸다. 어쩐지 미안하고 고맙다. 이렇게 받아도 되나, 마음이 답답했다. 그제는 잔칫날 주례로 나눌 말 때문에 아빠와 딸 사이에 앙금이 생기느라, 두 마음을 풀어주느라 쩔쩔맸다. 그래, 내 큰일도 있는데 안이 시끄러울 적에는 밖으로 나가지 말자 싶어 하루는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잘 나가던 내가 “바빠서 못 가요.” 한마디 했는데 “삐침인가?” 하고 묻는다. 뭔가 했더니,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내가 어떤 상을 못 받았대서 그 모임에 안 오는 줄 알았는가 보다. 아니, 그런 흐름으로 몰아간다. 간밤에 집안에서 터진 일을 말해야겠구나 싶어 이 얘기 저 얘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5] 흰김치 시골에서 배추를 잔뜩 갖고 왔다. 요즘은 예전하고 달라서 이웃한테 좀 팔까 싶어도 팔리지 않는다. 싱싱할 적에 김치를 담그면 좋겠지만, 올해 나는 김치 안 한다. 엄마가 한 통 담아 놨고 묵은김치도 아직 있다. 곁님은 어디서 봤는지 물김치를 담그는 길을 적어 왔다. 바구니에 물김치에 들어갈 마늘이며 양파, 쪽파, 양배추, 생강, 배, 사과, 무, 배추를 담아 왔다. 믹서기가 가게에 있어 김치물에 넣을 것을 다시 담는다. 나는 시키는 대로 마늘과 생강 홍고추를 넣어 갈고, 미나리와 실파를 총총 썰어 놓았다. 가게서 소금물에 배추를 절여 물을 빼서 갖고 왔다. 가게 문을 거의 밤 12시에 닫는데, 졸음을 참고 기다렸다가 둘이서 담근다. 큰 그릇에 내가 갈아 놓은 양념을 붓고, 채설어 놓은 무와 대추를 넣어 버무리고, 배추이파리에 집어넣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리고 무를 통으로 썰어서 넣고 곁님이 마련해 온 양념물을 붓고 밖에 두었다. 아침에 한 포기 꺼내 주니 잘 먹는다. 국물이 좀 짜서 생무를 썰어 넣었다. 그리고 한 포기 담아 가게에 갖고 갔다. 우리 곁님은 짜면 먹지 않는 사람인데, 스스로 우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4] 남동생 금값이 스무 해 앞서보다 여섯 곱이나 올랐다. 막내네 두 아이가 돌인데 반지 하나 못 받았다길래 한 돈 장만했다. 둘을 한꺼번에 치르자니 짐이 크지만 우리는 따로 이십만 원 더 넣는다. 하룻밤 묵을지도 몰라서 짐을 챙겼더니 가방이 무겁다. 그만 긴 끈이 뚝 떨어진다. 손잡이를 팔에 걸고 들기로 하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거꾸로 보는 자리에 앉는다. 앞으로 달리는데 뒤로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동안 천천히 달리지만 빠르다. 붉게 물든 담쟁이가 타고 올라간 높다란 담벼락을 본다. 캄캄한 굴을 지나는가 싶더니 호수가 나온다. 가까운 나무보다 멀리 있는 가을물이 든 나무가 잘 보인다. 칸칸이 물고 달리는 기차는 아늑한 쉼터 같다. 창밖을 보는 사람은 적다. 다들 고단한 몸을 쉬는 듯하다. 바퀴가 빠르게 굴러가는 쇠소리와 덜커덩 흔들리는 소리에 이따금 귀가 먹먹하다.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기차가 가운데 달리고 해와 달은 마주한다. 두 시간 달리는 기차에서 책을 읽으려 했는데, 길을 나서다가 가방 끈이 떨어지는 바람에 책을 빼놓고 나왔다. 쪽잠을 자다가 멍을 때린다. 서울길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3] 기차 탔네 기차를 탔다. 1호차이다. 타고 내리기 쉬운 가운데쯤 맡으면 좋았을걸. 차표 끊는 일이 서툴어서, 알림창에 뜨는 대로 끊었더니, 처음과 끝이다. 서울길은 첫머리에 가까운 1호차이고, 대구길은 맨 끝이다. 쭉 뻗은 곧은 줄에 처음이고 끝이 따로 있을까, 뾰족한 기차 머리를 앞과 뒤에 마주 잇대어 이쪽저쪽 한 줄만 타는 기차이다. 같이 나온 곁님은 시골로 배추를 가지러 간다. 가는 길에 배웅을 받는다. 무척 바라던 일인데, 이런 날도 있네. 이른아침에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타는곳에 일찍 나왔더니 한 대가 지나간다. 한쪽은 앞을 보는 자리이고, 한쪽은 뒤로 보는 자리이다. 기차도 자리처럼 맞물고 휙 지나간다. 하늘빛이 온통 뿌옇다.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숲은 가을이 깊다. 바깥 그림은 가만히 있는데 달리는 기차를 타니 누가 누구를 보는지 모르겠다. 살림집에서 작은 창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여기서는 창문을 보지 못해도 가만히 있는 곳에서는 달리는 기차를 더 잘 볼 테지. 가까운 그림은 스치고 멀리 있는 집은 천천히 스친다. 더 멀리 있는 숲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다. 오래 산 숲은 다르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2] 글손질 넉걸음 새로 낼 책을 놓고서 이제 마지막 글손질이라고 여기고 넘겼는데, 더 손질한 글월이 왔다. 어느새 넉벌이나 손질하는 글이다. 책 하나를 내는데 이렇게 또 손질하고 더 손질하고 자꾸 손질을 해야 하나? 넉벌째 손질한 글을 쭉 살피는데, 묶음표에 붙인 뜻이 틀렸다. 어머니 시골말인 ‘짜들다’는 ‘쪼들리다’가 아닌 ‘깨지다’이다. 어릴 적에 듣고 쓰던 사투리를 글에 그냥 썼는데, 다른 고장에서는 우리 어머니 사투리를 다르게 읽을 수 있구나. 미처 몰랐다. 이다음에는 먼저 묶음표에 서울말씨를 넣어야겠다. 더 손질해서 보내온 꾸러미를 새로 읽을 적마다 덜컹거리는 대목이 눈에 띈다. 막판에 더 붙이다가는 자칫 틀린글씨를 바로잡지 못한 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더 손볼 데라든지, 보태야 할 곳을 차근차근 적어 놓는다. 일을 다 마치고서 출판사로 보낸다. 이다음에 다른 책을 내놓을 적에는 글을 더 살펴서, 앞뒤로 이야기가 부드럽게 이어지는지 제대로 추스르고 써야겠다. 그나저나 이 책이 곧 나오면 내 삶이 발가벗을 듯해서 이만저만 마음이 무겁지 않다. 이렇게 나를 다 드러내도 될까 콩닥이는데, 곁님이 전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1] 공해 어떤 모둠누리칸(단체 카톡방)에 몇 사람이 그림(이모티콘)을 올린다. 그런데 그곳에 올라온 글은 거의 안 본다. 나와 뚝 떨어진 이야기라 그런지 읽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그곳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하겠고, 빨간 숫자만 지우려고 열어본다. 모둠칸(단체방)은 어쩐지 새로운 ‘공해’라고 느낀다. 작은딸이 꽃잔치(결혼)를 열기에 모둠누리칸에 카톡을 보낸 일이 있다. 작은딸 꽃잔치를 기뻐해 주는 이야기를 처음 볼 적에는 반갑더니, 어느새 이것저것 파는 알림글을 나한테 아침저녁으로 몇씩 보내는 언니가 있다. 며칠 꾹 참았다. 읽어 보지 않고 알림숫자가 거슬려서 열어 보는데 밤에 또 온다. 언니는 예전에 화장품을 하다가 이제는 몸에 좋다며 다른 것도 판다. 너무 달라붙듯 사라고 하니깐 싫다. “언니, 내가 사야 할 적에 살 테니깐, 자꾸 보내지 마세요. 버거워요. 일하다가 알림소리가 나서 열어 보기도 벅차요. 좀 봐주세요.” 언니는 이 글월을 본 뒤로는 알림 카톡을 보내지 않는다. 마음이 좀 무겁지만, 말을 해야 하는 쪽이 나을 듯했다. 한쪽이 어떻게 버거운지 모를 수 있다. 어쩌다가 보내면 덜 할까 모르지만, 번거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