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4. 손질 셋째 아이가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 들고 몸을 이리저리 휘젓고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비행기 놀이를 했다. 침대에도 올라가고 끄트머리를 등지고 앉아 비행기를 들고 몸을 틀다가 그만 기우뚱 뒤로 넘어졌다. 미닫이를 박고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얼떨결에 일어난 아들은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머리를 박은 유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엄마 유리 깨서 어떡해?” “좀 얌전히 놀아. 클날 뻔했잖아.” 유리에는 아들이 세게 박은 곳에서 사방으로 촘촘하게 금이 가고 머리 자국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맑은 유리가 아닌 부옇고 두꺼워서 금이 나도 와르르 떨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조각이나 가루가 떨어졌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우리 아들 눈하고 머리하고 얼굴이 박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덜컹했다. 잘게 금 간 유리를 쓱윽 훑으니 날카롭다. 유리가 깨지면서 살짝 꺼지고 흔들렸다. 아이들이 모르고 손을 댔다가는 베일 듯하다. 금이 난 유리가 떨어지지 않게 안팎을 단단히 붙였다. 우리 집은 마루를 가른 방이 있다. 미닫이를 닫으면 아들 방이 되고 열어 두면 부엌하고 트여 지나가는 자리인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하루’는 전남 고흥에서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책숲(도서관)을 꾸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꽃을 짓는 길에 곁에 두는 책숲에서 짓는 하루 이야기인 ‘책숲하루 = 도서관 일기’입니다. 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5.3. 소양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어제 낮에 풀다가 매듭을 못 짓고서 넘긴 ‘소양’이란 한자말이 있습니다. 으레 ‘기본’을 붙여 ‘기본소양’처럼 쓰기도 하지만, 이때에는 겹말입니다. ‘기본소양’이 겹말인 줄 깨닫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한자말을 쓰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말결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아무 말이나 덕지덕지 붙이면 그만 우리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펴려고 했는가 하고 동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말밑을 하나하나 파다 보면 어느새 ‘덕지덕지 붙여서 어렵게 늘여뜨리는 말이나 글이 얼마나 덧없고 바보스러운가’를 깨닫지요. 깨달은 사람은 어려운 말을 안 씁니다. 쓸 턱이 없어요. 깨달은 사람은 언제나 가장 쉽게 이야기를 들려줘요. 절집에서 펴는 한마디(화두)는 언제나 매우 쉬워서 어린이부터 다같이 알아들을 만한 낱말이자 이야기이기 마련입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3. 돌보기 시골에 살던 둘째 아이가 네 살이 되어 집에 왔다. 두 딸이 어린이집에 함께 간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서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둘째 아이가 자꾸 운다. 안 들어가겠다고 울어 언니가 손잡고 가자고 말해도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이 층 문 앞에서 샘님이 안고 달래도 숨죽여 운다. 샘님이 가라고 손짓해서 내려오는데 우는 소리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백 미터 떨어진 곳에 아빠 일터가 있고 삼 층이 우리 집이다. 아빠가 여섯 시에 데리러 못 가면 언니가 동생 손을 잡고 데리고 온다. 차가 안 다니는 바로 이어진 골목길을 일러 주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 오십 미터 길인 우리 집으로 오는 사이에는 찻길이 있어 가게가 들어선 쪽으로 바짝 붙어서 온다. 전봇대가 있고 비스듬한 하수구가 지나가는 길로 걷는다. 일곱 살 첫째 아이는 걸음이 늦은 동생을 어깨동무하고 허리를 굽혀 동생 눈높이에 맞추고 살살 데리고 온다. 하수구를 덮은 넓적한 돌에 구멍이 둘씩 있어 어른인 나도 가끔 발이 걸러 엎어질 뻔한 적이 있는데, 동생이 빠지지 않게 비껴 오느라 신발 앞머리가 구멍에 걸러 엎어졌다. 동생 손을 잡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2. 시골아이 “옷 산다고 하디 샀나?” “아니. 아직 안 샀어.” “꽃샘추위 지나가면 봄을 건너뛰고 바로 여름이 오지 싶다. 짧은 철이라도 옷은 제때 바꿔 입어야지.” “응 쉬는 날에 나가 볼게.” “그래라. 니 동생 집에 왔다.” “알아. 어제 말했어.” “아. 어여, 엄마가 옷값 보태 주까?” “응, 얼마나?” “돈은 없어. 10이나 20?” “돈 없음 안 줘도 돼.” “어디로 보낼까?” “농협으로. 외우는 게 이뿐이야.” “응. 그날 입고 온 겉옷이 하도 낡아서 사주는 거야! 불쌍해 보여.” “다들 왜 그러지. 난 아무렇지 않은데. 오예 받았슴다. 고맙습니당.” “옷 사면 찍어서 보내.” “네, 네, 그렇게 남기겠슴다. 그럼. 쉬십셔. 난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찍 잘랭. 요즘 한쪽 머리가 너무 아파.” “그래. 푹 자. 잘 때는 잠만 자” “잠을 깊이 못 자. 새벽에 자꾸 깨서 머리가 더 아픈 듯. 쭉 자야 하는데. 어제는 한 시간마다 깼어. 미치는 줄 알았어.” “뒷산이라도 가서 숲 보면 나은데.” “음. 내일은 시장에 나가서 돌아다녀 볼게.” “너 어릴 적에 시골에서 지내서 몸이 서울을 밀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살림꽃’은 ‘육아일기’입니다. 시골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배운 살림살이 이야기를 짧고 굵게 갈무리하려는 이야기입니다. 살림꽃 2 살림꽃 우리는 ‘살림의 여왕’이나 ‘살림의 왕’이 될 까닭이 없다. 왜 임금(왕) 타령을 하나? 우리는 꽃이다. 가시내도 꽃, 사내도 꽃이다. 어른도 꽃, 아이도 꽃이다. 서로 꽃순이 꽃돌이가 되어 살림꽃을 짓자. 쉽게 가자. 아이들이 소꿉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살림을 놀이처럼 받아들이듯, 어른도 소꿉살림부터 천천히 하자. ‘키친·주방’이 아닌 ‘부엌’에서 살림을 하자. ‘제로 웨이스트’가 아닌 ‘쓰레기 없는’ 정갈한 살림길을 가자. 말 한 마디가 무어 대수냐고 따지는 이웃이 있는데, 말조차 못 바꾸면서 살림을 어찌 짓나? 말부터 안 바꾸면 살림을 어찌 가꾸나? 아이들한테 아무 밥이나 먹일 생각이 아니라면, 아이들 곁에서 아무 말 큰잔치를 벌이지 말자. 살림길이란 노래길이요 꿈길이다. 살림길이랑 사랑길이며 삶길이다. 가시내도 배우고 사내도 익힐 길이다. 혼자 할 길이 아닌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춤추고 노래할 길이다. 그러니 “우리 다같이 서로 다르면서 즐겁게 아름다운 ‘살림꽃’이 되자”고 얘기하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1. 꽃돈 첫째 아이가 첫 배움꽃돈(장학금)을 탄다. 어느 곳에서 꽃돈을 준다는 말을 듣고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을 떼어서 부친다. 대학원생 둘, 대학생 하나, 고등학생 스물둘을 뽑아 임하 서암당에서 장학금을 건넨다. 옛집 문턱을 넘어 마당에 들어서니 우리를 부른다. 사람들이 부른 쪽에서 이름을 적고 그곳 사람을 따라 마당에 펼쳐 놓은 자리로 갔다. 자리마다 태극기를 하나씩 놓았다. 우리는 태극기를 보고서야 삼일절인 줄 알았다. 학생들은 들어오는 대로 마당에 펼쳐 놓은 제 자리에 앉고 나는 커피 한 잔을 받아 집 둘레를 돈다. 돌조각상 밑에 새겨 놓은 글이 있다. 멈춰서 읽는다. ‘하루를 살아도 불꽃처럼’ 가만히 보니 꽃돈을 주는 사람을 돌로 깎아서 세웠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단다. 해마다 3월 1일에 꽃돈을 건네고 치사랑(효)도 널리 알린다. 치사랑(효행)을 편 아이들까지 서른일곱이 꽃돈을 받는다. 이곳 어른이 살아온 이야기를 누가 말한다. 맨주먹으로 집을 나서서 부산인가 서울인가 저잣거리에 처음으로 터를 잡아 큰돈을 벌면서 열다섯 해째 젊은이들한테 꽃돈을 준단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살림꽃’은 ‘육아일기’입니다. 시골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배운 살림살이 이야기를 짧고 굵게 갈무리하려는 이야기입니다. 살림꽃 1 기저귀 아기는 똥오줌기저귀를 댄다. 똥오줌기저귀를 대려면 소창을 끊어야 한다. 소창을 끊으려면 모시나 삼이나 솜 같은 풀을 길러서 실을 얻어야 한다. 실을 얻으려면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아야 한다. 베틀을 밟아 천을 얻기에 비로소 알맞게 끊어서 요모조모 살림에 쓴다. 오늘 우리는 모시나 삼이나 솜 같은 풀을 기른 다음에 물레랑 베틀을 다뤄 실이며 천을 얻는 길을 거의 잊거나 잃었다. 가게에 가면 천이야 널렸고, 누리가게에서 손쉽게 소창을 장만한다지만, 아기가 가장 반길 기저귀란 어버이가 땅에 심어서 길러내고 얻은 천조각이지 않을까? 우리가 살림꽃을 피우려 한다면 이 얼거리를 생각할 노릇이다. 모두 스스로 다 해내어도 좋다. 이 가운데 하나를 챙겨도 좋다. 어느 길을 고르든 아기가 가장 반길 길이 무엇인지는 알 노릇이다. 아기가 가장 반기는 길을 알고 나서 ‘오늘 나로서 할 만한 길’을 추스르면 된다. ‘무형광·무표백’을 왜 찾는가? 우리가 스스로 실이랑 천을 얻는다면 ‘형광·표백’을 안 하겠지. 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0. 제주도 한 시에 일을 마치는 날이면 시골로 갔다. 옆마을 윗마을로 달리는 차가 많아 밀린다. 마을 언저리에서 오른샛길로 빠져서 다시 오른쪽 골목으로 꺾은 다음 왼쪽 고샅길 언덕집이다. 윗마을에서 탈춤을 보고 옛집을 그대로 이어온 마을을 한 바퀴 돌거나, 강을 낀 마을에 백일홍이 피면 옆마을 배움집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두 마을이 시골집을 가운데 두지만 나는 잘 가지 못한다. 쉬는 날은 첫째 아이를 우리 집에 데리고 나오거나 시골에서 하룻밤 묵는다. 우리가 딸을 보러 다니다가 이제 딸이 네 살이 되어 우리 집에 데리고 나왔다. 낮에는 어린이집에서 놀고 저녁에는 우리 둘 가운데 일찍 마치는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온다. 소꿉놀이를 하거나 인형을 갖고 놀다가 틈나면 엄마 아빠 꽃잔치(결혼) 때 찍은 사진을 꺼내 보았다. 하루는 사진을 보다가 엉엉 운다. “왜 울어?” “나만 두고 엄마 아빠만 갔잖아!” “그래서 울었구나! 그런데 네가 태어나지 않았을 적에 갔어. 엄마 아빠 둘이서 다녀온 다음에 우리 딸이 엄마를 찾아왔지.” 엄마 아빠가 꽃빔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겨례옷으로 갈아입고 족두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하루’는 전남 고흥에서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책숲(도서관)을 꾸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꽃을 짓는 길에 곁에 두는 책숲에서 짓는 하루 이야기인 ‘책숲하루 = 도서관 일기’입니다. 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4.8. 일상적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그제부터 실랑이를 하던 ‘예정·기질·격투’란 한자말을 놓고서 하나씩 실마리를 풀다가 오늘 아침에 이르러 ‘반출·엄하다·문화공간’을 지나 ‘인권침해·석불’에다가 ‘일상적’이란 일본 말씨까지 닿습니다. 하나를 풀자니 더 풀 낱말이 줄줄이 찾아들어요. 이럭저럭 마무리를 보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쉬운 말이 평화》는 겉그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펴냄터(출판사)에서 마지막 꾸러미를 보내 주셨고, 참말 마지막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곧 새책으로 태어나겠지요. 아이들은 오늘도 무럭무럭 크고, 어버이는 오늘도 씩씩하게 살림을 짓습니다. 서로 오가는 말을 새로 읽고, 아침에 피어나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저녁에는 아이들하고 〈천국의 아이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두 아이 모두 예전에 본 줄 까맣게 잊었더군요. 본 지 좀 오래되었나 싶습니다. 일하는…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좋은말씀 #명언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2-하지 않으려는 그 생각을... 어제는 들말마을배곳 알음알이 잔치를 하는 날이었다. 빛무리 한아홉(코로나 19) 때문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만나서 좋았다. 여러 날 동안 잔치 갖춤을 해 온 갈침이 네 분과 자리를 함께해 준 배움이들과 어버이, 바쁘신 가운데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고 북돋움 말씀까지 해 주신 새로나꽃배곳(신진초등학교) 김호연 교장 선생님과 김춘애 교감 선생님까지 모두 참 고맙더라. 잔치에 자리했다가 바로 집으로 와서 여느 날보다 일찍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셈틀에 앉아 일을 하는데 자꾸 졸리더구나. 그래서 좀 자고 일어나야지 하고 누웠는데 두 때새를 잤지 뭐니.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자려면 넉넉하게 자기는 어렵지 싶구나. 오늘 알려 줄 말씀은 "하지 않으려는 그 생각을 하지 마라. 그만두려는 그 마음을 그만두어라."야. 이 말은 '베르지트'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베르지트'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곳을 찾지 못했단다. 사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