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섬나라 사람들 종살이에서 벗어난 지 여든 해 가까이 되었습니다. 지난 여든 해 동안 한글만 쓰자, 한자 섞어 쓰자고 물고 차고 싸운 뒤끝은 이제 저절로 한글만 쓰자 쪽으로 오롯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누구도 말글살이에 한자 쓰자는 사람들이 힘을 떨치기는 어렵습니다. 아직도 몇몇 힘깨나 쓰는 이들이 어떻게든 한자를 배워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지만 큰 흐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것만 보면 우리말을 붙잡는 우리글이 이겼으니 우리말도 덩달아 좋아졌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말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말살이에서 니혼 한자말과 하늬 꼬부랑말이 말 줄기를 차지하고 우리말은 가뭄에 콩나듯 합니다.
지난 여든 해 동안 우리말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쓰지도 않은 열매입니다. 갈수록 니혼 한자말과 유에스 꼬부랑말이 말살이에서 늘어나 와이프니, 주방이니, 멘토니, 고객이니 하며 왜말 하늬말을 씁니다. 배곳에서 니혼말과 꼬부랑말을 가르치고 우리말은 헌신짝처럼 버린 뒤끝입니다.
한 겨레가 사람답게 살고, 임자답게 살려면 겨레 얼이 살아있고 겨레 줏대가 서 있어야 합니다. 겨레얼과 겨레줏대는 겨레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겨레말을 쓰지 않으면서 겨레얼을 말하고 겨레줏대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우리 겨레는 글 없이도 누리 어느 겨레보다 먼저 아름답고 빼어난 삶꽃(문화)을 꽃피웠습니다. 그것은 우리 겨레 옛 삶터에서 쏟아져 나온 땅속 자취에서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런 훌륭한 삶꽃을 남 먼저 꽃피웠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했다는 뜻이고 사람 사이를 잇는 겨레말이 일찍이 꽃피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가 우리말을 잡아둘 우리글을 지어내지 못해서 이웃 나라 한자를 빌어 적으면서 어려운 한자를 배워 익힌 윗사람들과 일하며 사는 여느 백성 사이가 물과 기름처럼 갈라집니다. 마땅히 겨레 힘이 여려지고, 겨레말에 한자가 끼어들어 우리말이 더럽혀집니다. 세종 임금 때에 모처럼 쉬운 우리 글을 만들었는데도 어리석은 벼슬아치들 얼이 쫑궈와 쫑궈글에 물들어 아까운 때를 놓치고 그 뒤끝은 섬나라 종살이로 굴러떨어졌고요. 쫑궈 한자를 배워 익힌 무리나 니혼 한자말을 배워 익힌 사람들이나 하늬 꼬부랑말을 배워 익힌 이들은 예나 이제나 말글살이에 남 말을 끌어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말이 이렇게 헌 걸레 꼴이 된 것도 뿌린 대로 거두는 열매입니다.
일찍이 ‘아름다운 우리말 살려쓰기’를 지은 김정섭님은 이것을 ‘겨레말 얼굴에 쫑궈 한자말 몸뚱이, 니혼말 팔다리, 하늬말 옷을 입은 꼬락서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짓눌릴 대로 짓눌리면 반드시 일떠서서 그릇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야릇한 버릇이 예로부터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말이 마치 바람 앞에 촛불처럼 숨이 간당간당합니다. 아직은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말을 살려 쓰지만, 우리말이 놓인 꼬락서니를 아람(백성)들이 제대로 아는 날이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이 쓰레기 말들을 다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니혼말을 배곳(학교)에서 가르치고 새뜸(신문)과 널냄(방송)에서 떠들고, 그위집(관청)에서 니혼말을 우리말인 것처럼 써버릇하니,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니혼말을 우리말인 줄 잘못 알고 삽니다. 정치·경제·교육·문화·사회·혁명·운동·환경·노동·민족……이런 말, 이거 다 니혼말입니다. 거기에 걸맞은 우리말은 다스림·살림·배움·삶꽃·모둠·뒤엎기·뮘·터전·일·겨레……입니다. 왜말이 더 쉽고 우리말이 더 어렵지요? 그만큼 우리가 거꾸로 된 말살이에 물들어 있습니다.
종살이 때 배워 익힌 왜말을 나라 찾았으면 마땅히 깡그리 버렸어야 옳았습니다. 바로 버리기는커녕 여든 해가 다 된 오늘날까지 그대로 씁니다. 그대로 쓸 뿐만 아니라 여든 해 동안에도 스스로 우리말을 나날살이에 지어 쓸 생각을 하지 않고 니혼 사람들이 만든 말을 쭉 들여다 썼습니다. 새뜸과 널냄과 멀봄(텔레비전)이 베끼고 배곳에서 곁눈질하고 배움집(학원)에서 그대로 들여다 썼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로 새말을 지어 쓰려 아무도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법 생각이 바른 사람조차도 우리가 왜말살이한다는 것을 모르고 버젓이 왜말을 쓰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눈과 귀와 입과 생각이 왜말에 다 물들었습니다.
이것이 여든 해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여든 해 동안에도 여러 차례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기운들이 일어났지만, 왜얼이(몸은 배달겨레지만 얼은 왜얼에 물든 사람)들 힘이 워낙 세어서 그때마다 그 기운이 꺾였습니다. 왜얼이들 힘 뿌리가 뭘까요? 돈과 힘(권력)입니다. 돈과 힘으로 백성들 겨레말살이 기운을 찍어눌러 주저앉혀 왔습니다. 돈과 힘이 아이들에게 가르칠 책에 우리말은 싣지 않고 니혼 한자말을 잔뜩 넣어 가르치고, 온갖 책은 왜말로 모두 펴내고 새뜸과 널냄에도 왜말로 쓰고 말하고, 나라살림살이말(행정용어)에도 니혼말을 그대로 씁니다. 벼리말(법률용어)에 이르면 아예 우리말은 토씨밖에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나라를 찾은 것 같고 우리 겨레가 우리나라 임자인 것 같은 데 속내는 다 왜얼에 물들고 저도 모르는 새에 왜얼이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나날이 쓰는 말로 생각을 하고 꿈을 꿉니다. 나날말살이를 한자말로 한다는 말은 생각을 한자말로 하고 자면서 꿈도 한자말로 꾼다는 뜻입니다. 얼이 한자말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사람한테 우리 겨레 얼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겨레 얼이 살아있는 사람은 겨레말을 쓰고 겨레말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써도 겨레말로 쓰고 꿈을 꿔도 겨레말로 꿉니다.
우리 겨레가 이제라도 겨레말을 살려 쓰자는 뜻에서 이 말집을 지었습니다. 멀리는 열 해가 걸렸고, 바짝 매달리기는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겨레가 나날말살이에 물 흐르듯 매끄러운 우리말을 살려 쓸 수 있을까? 옛 한아비들이 큰 마음으로 두루 널리 퍼뜨렸던 삶꽃을 오늘에 다시 꽃피울 수 있을까? 두루 널리 누림(홍익인간)으로 삶꽃을 꽃피운 우리 겨레 높은 뜻이 다시 이 땅별(지구) 위에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리 말을 되찾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
우리말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사이좋음(평화)과 어울림(조화), 두루살림(큰 정치)을 품는 말이라는 생각이 깊어집니다. 나나 내 나라, 내 겨레가 잘되려면 남이나 남 나라, 남 겨레를 찍어누르고 못 올라오게 해야 한다는, 오늘날 누리를 판치는 날도둑 다스림이 아니라, 나와 남, 내 나라와 남 나라, 내 겨레와 다른 겨레가 함께 손잡고 사이좋게 두루 잘 사는 누리를 만드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일을 우리 겨레가 나서서 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려면 날도둑 마음이 스며든 쫑궈말, 나혼말, 꼬부랑말을 버리고, 사랑과 너그러움과 어짊이 가득 담긴 우리 겨레말을 다시 살려내어 써야 합니다. 우리말을 쓰고 보듬어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어 그 마음, 그 얼로 온 누리를 새롭게, 사이좋게, 어울리게 살리는 길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나날살이말을 우리말로 되찾아야 합니다.
이 과녁을 어떻게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왜말살이, 꼬부랑말살이를 뿌리에서 다 쓸어 없애야 합니다. 나아갈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첫 배곳(초등학교) 배움책을 한자말 마디를 다 빼고 우리말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새로 써야 합니다. 첫배움해(일학년)부터 엿배움해(육학년)까지 모든 배움책을 차례차례 우리말로 짓습니다. 갑배곳(중학교) 배움책도 우리말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말로 짓고 높배곳(고등학교) 배움책을 우리말로 짓습니다. 한배곳(대학교)에서 쓰는 온갖 책과 밑감(자료)을 우리말로 짓고요.
둘째, 모든 새뜸을 우리말로 내게 하고 널냄과 멀봄에서 우리말만 쓰게 합니다.
셋째, 나라살림살이에 쓰는 말을 겨레말로만 쓰게 합니다.
넷째, 으뜸벼리(헌법)를 비롯하여 모든 벼리(법률)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우리말로 새로 짓습니다.
다섯째, 나라이름, 땅이름, 길이름, 고을이름, 메이름, 가람이름, 내이름, 들이름, 절이름, 벌데(회사)이름, 사람이름……을 모두 우리말로 짓습니다.
이 일을 나라와 겨레가 해 나갈 으뜸 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집이 이런 큰 겨레 일을 해가는 길에서 작은 징검돌로 써 주기를 바랍니다. 차근차근 곳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서 우리말을 배우고 익히고 살려 써가면서 느긋하고 끈질기게 해가야겠지요. 나날이 한 마디씩이라도 우리말로 바꿔 쓰면서…….
이를테면, 안녕·감사하다·계속하다 같은 한자말을 잘있어·잘가·고맙다·이어하다 같은 우리말로 바꿔 가는 거지요.
이 말집 어느 쪽을 펼치더라도 구슬 같고 깨알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만날 겁니다. 이제 오랫동안 우리 겨레 숨통을 죄었던 한자말을 모두 버리고, 새로 이른바 누리되기(세계화)란 그럴듯한 속임수로 엄청난 힘으로 밀고 들어와 우리 얼을 좀먹는 유에스 꼬부랑말 꼬임에도 넘어가지 말고 우리말살이로 나아 갈 때입니다.
우리 겨레 글살이에 한자를 섞어 쓰느냐 한글만 쓰느냐가 처음부터 싸움이 판가름난 일이었듯이 말살이에 한자말을 섞어 쓰느냐 배달말만 쓰느냐 하는 것도 온 해(백년)쯤 뒤에는 틀림없이 뚜렷이 판가름 나 있을 것입니다. 온 해를 내다보고 우리말을 살려 써 갈 얽이(계획)와 슬기와 꾀를 내야 합니다.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나, 처음에는 좀 힘겨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힘겨움은 우리 겨레 기운을 솟게 하고 우리 겨레가 힘을 모아 넘어가도록 하는 힘겨움입니다. 우리 다 기꺼이 우리말 살려 쓰는 길로 나아가요.
우리말을 살려 쓰자는 뜻은 우리 겨레라면 누구 가슴이라도 뭉클 울립니다. 가슴이 뭉클하지 않다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나도 모르게 왜얼이가 되었는지, 유에스얼이가 되었는지, 아니면 한자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것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큰 뜻으로 말집을 지었지만, 아직 첫걸음이라 군데군데, 곳곳에 모자람이 있습니다. 앞으로 누구라도 더 좋은 우리말을 지으면 언제라도 바꿔서 더 좋은 쪽으로 바꿔 써야겠지요. 이 말집에는 먼저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요? 라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우리말을 새로 지은 말이 제법 섞여 있습니다. 우리말로 오롯이 자리 잡으려면 뭇입이 써보고 다 좋다고 해야 자리 잡습니다. 여기 실린 말은 겨레말 큰 바닷물 가운데 조금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직 다듬지 못한 말, 새로 생겨날 말을 깨끗한 우리말로 다듬어 가는 일은 우리 겨레가 다 나서서 함께 해갈 일입니다. 오랫동안 두고두고 다듬어 나가야 할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