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아이] 12. 낯씻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2. 낯씻기 날마다 머리 수그리고 일하느라 사람 얼굴을 제대로 못 본다. 어쩌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쳐도 누군지도 몰라 모른 척하고 내 일을 한다. 누가 곁에 와서 아는 척 건네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살갑게 맞는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들어오면 하얀 입가리개만 눈에 들어온다. 날이 추우니 차림새가 어둡고 입을 가려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도무지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가리개를 해서 눈빛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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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6 20:20
[내가 사랑하는 아이] 11. 콩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1. 콩 콩을 아무렇게나 흙에 묻었다. 하룻밤 지나고 나니 싹이 돋았다. 머리에 까만 껍질을 뒤집어쓰고 쑥쑥 오르고 줄기가 가느다랗게 웃자라 넝쿨로 자랐다. 혼잣힘으로 서지 못해 나무젓가락을 꽂아 기대 준다. 몇 밤 자고 나니 더 높이 자라 젓가락을 훌쩍 넘는다. 꽃집에서 얻은 꼬챙이를 둘 꽂았다. 해가 잘 드는 창가로 자리를 옮겨도 줄기가 시들시들 자란다. 잎이 타듯이 말라 한 잎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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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3 14:40
[내가 사랑하는 아이] 10. 운전기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0. 운전기사 시동 단추를 켜자 빨간 그림(!)이 뜬다. 집으로 오는 길모퉁이에 있는 바퀴집 마당에 차를 세운다. 아저씨가 바퀴를 빼서 바람을 넣고 물속에 담그고 꾹 누른다. 뽀글뽀글한 물방울이 안 일어나면 바람이 안 센다고 보여준다. 다른 바퀴도 봐야 하는데 바람 넣는 긴 줄 기계가 얼었다. 슬쩍 본 앞바퀴가 무척 닳았다. 곁님은 바퀴를 바꾼 지 몇 해 안 된다고 잘못 몬 버릇이라고 거…
- 숲하루 글쓴이
- 2021-01-10 11:12
[내가 사랑하는 아이] 9. 크리스마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9.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날인데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기 어렵다. 아이들이 훌쩍 커서 나가고, 믿는 종교도 없어,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듯하다. 그저 쉴 수 있는 날로만 여기지 싶다. 기분을 내려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노래를 올렸는데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대꾸가 없고 딴말만 한다. 내가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우면 교회에 갔다. 며칠 도장 찍는 재미로 가고 선물 받는 재미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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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8 13:01
[내가 사랑하는 아이] 8. 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8. 숨 스물넷 봄에 함께한 뒤 시골에서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옷을 차려입고 아버님께 절을 드린다. 어머님이 차리신 밥을 먹고 일을 다녔다. 세 어른하고 지내면서 집안에서 하는 일을 차근차근 배웠다. 한 달 남짓 함께살다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곁님이 어버이 집을 끔찍이 챙기느라 쉬는 날이면 찾아가 하룻밤 묵는다. 함께살고 여섯 달이 지날 무렵 큰할머니 제삿날에 우리가 쓰던 방에서 …
- 숲하루 글쓴이
- 2021-01-01 18:21
[내가 사랑하는 아이] 7. 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7. 잠 늦잠을 잤다. 알림소리를 잠결에 두 차례 들었는데 끄고 다시 잤다. 깨어나니 여덟 시쯤 되었다. 눈이 뻑뻑하여 거울을 보니 퉁퉁 부었다. 나이가 들수록 눈꺼풀이 밉게 바뀐다. 잠을 푹 자면 붓고 덜자면 깊은 주름이 드러나고 눈도 뒤통수로 당겨 움푹하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 네 시나 다섯 시만 되면 깨는 몸이라는데, 나는 여섯 시간이나 일곱 시간은 자야만 하루를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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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8 19:15
[내가 사랑하는 아이] 6. 이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6. 이불 말린 이불을 꺼내려고 뚜껑을 연다. 뺨에 뜨거운 기운이 부딪치며 한 김 빠진다. 따뜻한 이불을 꺼내 가슴에 꼭 안으니 새물내가 풍긴다. 이불이 뺨에 닿으니 부드럽고 뽀송뽀송하다. 큰방하고 작은방을 다니며 침대에 올린다. 얇은 이불을 깔고 덮을 이불을 가지런히 놓는다. 밖에 걸어 둘 틈도 없이 말라 일손 하나를 덜어 준다. 바깥바람이 차갑고 이불 밑에 불을 넣어도 발이 자꾸 바싹 …
- 숲하루 글쓴이
- 2020-12-25 21:40
[내가 사랑하는 아이] 5. 물렁팥죽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5. 물렁팥죽 첫째한테 안경을 언제 꼈는지 묻다가 두 동생 일도 물었다. 날이 추워서 그러나, 돌아오는 말이 쌀쌀맞다. “엄마가 떠올려야 할 걸 나한테 묻지 마.” “…….” 뾰족한 날에 베인 듯 아린 금 하나가 가슴을 타고 밑으로 살짝 스친다. 내가 어릴 때 우리엄마가 부지깽이 들고 때리러 올 적보다 더 아프다. 둘째하고 셋째는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물음에 애써 글을…
- 숲하루 글쓴이
- 2020-12-23 22:52
[내가 사랑하는 아이] 4. 배꼽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4. 배꼽 서랍을 뒤지다가 주머니 하나 집어든다. 안이 훤히 보이는 봉지에 배꼽이 들었다. 하늘빛 집게에 꽉 물렸다. 내 몸에서 떨어진 끄트머리 쪽은 마른오징어처럼 누렇고 작다. 아기 몸에서 떨어진 배꼽줄은 까만빛이 감돌고 반질반질한 돌빛이 돌고 더 크다. 아무것도 없는 배꼽줄은 푸르스름하다. 아들이 태어나고 열 해 동안 내가 지니다가 따로 방이 생기고 책상을 들인 열 살 때 넣어 건네준 …
- 숲하루 글쓴이
- 2020-12-19 21:57
[내가 사랑하는 아이] 3. 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 코 남을 추켜세우는 일에 쩨쩨한 큰딸내미가 내 코에는 말씀씀이가 참으로 너그럽다. 턱 가까이 달라붙어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본다. 거뭇하고 주름투성이인 얼굴을 살피면 뜨신 숨이 코로 훅 들어온다. “엄마 코는 아주 잘 생겨서” “어디가?” “틀, 생김새가 고친 듯해. 높이하고 기울기하고 코볼하고 크기가 그래. 오죽했으면 한참 멋을 부리는 일에 마음이 쏠린 원이한테 엄마 코를 고쳤다 하니…
- 숲하루 글쓴이
- 2020-12-17 2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