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30] 우체국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0] 우체국 며칠 우체국에 들렸다. 일터 가는 길에 두 군데가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은 어쩐지 딱딱하다. 책꾸러미 하나를 저울에 올리고 나머지 무게가 같다고 말해도 ‘올려 주세요’한다. 나는 ‘똑같아요’ 말했다. 팔을 뻗기 귀찮은가, 말하기가 더 번거로운가. 나도 모르게 발끈거린다. 그러다가 보내는 글자루에 적힌 이름을 생각하며 꾹 참는다. 세 판쯤 이런 일을 되풀이하자 입이 거칠어질 듯해서 일터 가…
- 숲하루 글쓴이
- 2022-09-16 18:48
[작은삶 29] 맑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9] 맑음 ‘맑음’은 내가 나한테 붙인 첫 이름이다. 영어로 하면 닉네임일 테고, 우리말로 하면 글이름이다. 2020년부터는 내가 나한테 ‘숲하루’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맑음’이라는 글이름을 그대로 써도 되지만, 어쩐지 새롭게 둘레를 다시 바라보면서 새길을 가야겠다고 느껴서, 글이름을 새로 지으려고 했다. 처음 ‘맑음’이란 이름을 나한테 붙일 적에는 문득 마음으로 스치는 낱말을 붙잡으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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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6 18:46
[작은삶 28] 되새김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8] 되새김질 문닫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한가위가 코밑이라 곁님은 시골로 떠났다. 친척 몇이 모여 무덤에 풀을 벤다. 그가 없으니깐 가게에 나가 봐야 한다. 시계를 맞추어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문득 잠이 깼다. 혼자서는 어디 가지도 갈 곳도 마땅찮다는 생각이 일고, 같이 다닐 동무 하나 없다는 생각이 겹치자 잠이 확 깬다. 이대로 고히 자면 안 된다는 생각이 사로잡혀 벌떡 일어났다.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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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20:13
[작은삶 27] 과일바구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7] 과일바구니 택배가 왔다. 상자가 묵직하다. 부피가 이만큼 되는데 뭘까, 칭칭 감아 잘 뜯기지 않는다. 궁금하니깐 마음이 더 부산스럽다. 칼로 돌아가며 뜯으니 얇고 까끌한 분홍보자기가 나온다. 보자기가 곱다. 풀어서 뚜껑을 여니 과일이다. 누가 보냈지? 상자에 적힌 이름을 보니 작은딸 짝꿍(남자친구)이다. 한가위에 못 오겠구나 하고 어림한다. 상자에는 메론, 배, 사과, 태주, 자몽, 레드향, 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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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20:13
[작은삶 26] 감자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6] 감자눈 나물 손질을 마쳤다. 밥때가 훌쩍 지났다. 배가 고프니 손이 느리다. 어서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뒷자리를 추스르다가 까만 뚜껑을 연다. 감자가 싹이 났다. 넷씩 담은 감자를 뜯는다. 과일 깎는 칼끝을 거꾸로 잡는다. 노랗게 올라온 눈을 파낸다. 손으로 밀면 부러지지만 배꼽에 싹이 남아서 이내 삐죽 올라온다. 후벼 파고 다시 넷씩 담아 싼다. 작은 상자에 담아 놓은 감자에도 싹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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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2 21:49
[작은삶 25] 이력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5] 이력서 가게에서 저녁에 일하는 학생이 그만둔다. 이학기 수업이 모두 낮으로 잡혔다. 새로 일할 사람이 다녀갔다. 나는 새사람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곁님이 이력서를 보냈다. 빽빽하게 적혔다. 어떤 사람일지, 일을 오래 할지, 일을 잘할지 훑어본다. 여느 이력서와 다르다. 꼼꼼하게 적었다. 학력을 보니 여상을 나왔고 마흔 넘어 대학공부를 하고 사이버대에서도 배웠네. 자격증은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아동…
- 숲하루 글쓴이
- 2022-09-02 21:45
[작은삶 24] 문 닫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4] 문 닫기 가게에 일 나가기 싫은 날이 가끔 있다. 한두 가지를 손질하려고 가자니, 씻고 차려입기가 귀찮다. 모자를 눌러 쓰고 간다. 어제 받아들인 조선 단배추 세 단과 조선 열무 넉 단을 담아 계산대에 주고 오늘은 물건만 싼다. 파프리카가 올랐네. 값만 붙여 자리에 올린다. 잘라 놓은 양배추가 아무래도 적어 보여 반쪽 잘라 놓은 양배추를 또 잘랐다. 바나나는 비닐을 빼서 다 꺼낸 뒤 칼로 반을 자…
- 숲하루 글쓴이
- 2022-09-02 21:44
[작은삶 23] 개구리 소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3] 개구리 소년 그제 와룡산엘 다녀왔는데 이 숲에서 사라진 아이들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다. 안동에도 와룡산이 있다.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밤꽃이 한창 필 적에 그 밑으로 풀밭을 헤치며 올랐다. 오솔길에 바위가 하얗고 돌부리가 많다. 커다란 바위에 앉다가 까투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때도 와룡산이라는 이름이 무서웠고 여기 대구 와룡산도 그랬지만, 지난 봄날에 벚꽃이 아름답게 핀 숲을 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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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7 11:18
[작은삶 22] 큰애 생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2] 큰애 생일 큰애가 팔월에 집에 온다고 한다. “엄마하고 한 이틀 바람쐬러 가자.” “어디로?” “남쪽이나 서쪽 섬으로.” “엄마 운전 솜씨 못 믿겠는걸.” “탈나면 둘이 겪어 가면서 정도 내고 좋잖아.” “왜 가려고 해?” “니캉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그러제.” “이미 좁혀졌는데 뭘.” “며칠 뒤 니 생일이네. 미리 축하해.” “엄마는 한 번도 축하 안 해줬어.” “무슨 소리야, 네 생일날…
- 숲하루 글쓴이
- 2022-08-17 11:18
[작은삶 21] 시집 보따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1 - 시집 보따리 시집을 한 보따리 받았다. 그끄저께 모임이 있었다. 인천까지 멀기도 하고 곁님이 가지 말라고 했다. 아는 시인한테 내 몫으로 좀 받아 달라고 여쭈었다. 이분은 내가 어느시인협회에 들어오도록 다리도 놓아 주었다. 아는 시인 없는 나로서는 이분 발자취가 부럽다. 늘 넘치도록 온갖 시집을 그냥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부럽다. 너무 많이 받아서 귀찮다고 얘기하는데, 나도 귀찮을 만큼 …
- 숲하루 글쓴이
- 2022-08-12 1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