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겨레소리

쉽고 재미있는 우리말 2 - 삶 속에서 살려 쓸 우리말

쉽고 재미있는 우리말 2 – 삶 속에서 살려 쓸 우리말

 

여러분은 ‘달덜찬애’라는 말을 쓰며 살고 싶나요? ‘미숙아’라는 왜말을 쓰며 살고 싶나요? 옛사람들은 ‘달덜찬애’란 말을 쓰며 살았지요.

‘회유책’이란 말은 배곳(학교)에서 배우는 책에 나오니 다 알지만, 책에 안 실려도 알만한 ‘달램수’가 예부터 써 오던 말인 줄은 잘 모르는 이가 많습니다.

우리말 ‘담’은 ‘꽃앓이’라고도 하는데, 같은 뜻인 왜말 ‘매독’은 잘 알지만 ‘담’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내그럽다’라는 고장말은 내(연기)가 눈에 들어 눈이 맵고 눈물이 나는 것을 뜻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인데 대중말(표준말)에는 ‘눈이 맵다’라고 밖에 나타낼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쌀이나 나락, 보리, 콩 같은 낟을 되거나 달 때 ‘되’, ‘말’, ‘가마’, ‘섬’ 같은 말을 쓰는데 ‘담불’은 벼 온(백) 섬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남이 쓰다가 물려준 몬을 ‘대추’라고 하는데 이 말도 왜말 ‘중고품’에 밀려 목숨이 간당간당합니다.

남한테서 넘겨 맡은 걱정거리를 ‘더넘이’이라 하는데 줄여서 ‘더넘’이라고도 합니다.

여러 사람이 이를테면 한마을 사람들이 낟이나 과일, 옷가지 같은 것을 골고루 나눠 가질 때 얼마만한 몫으로 한 디위(번) 나누고도 남으면 다시 나눠주는 것을 ‘더도리’라고 하는데 이 말을 지어 쓴 우리 겨레 마음이 얼마나 골고루 나눠 가지려 애썼던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말소리가 비슷한 ‘더드리’는 아이 딸린 꽃님(여자)이 버시(남편)가 죽은 뒤 다른 사내를 맞아들여 사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지어 썼던 걸 보면 겨레 사람살이가 매운겨집(열녀)만을 받들고 살아오지는 않았다는 것을 미뤄 볼 수 있겠지요.

‘독치마’는 김장독이 얼어 터지지 않게 짚으로 엮어 독을 둘러쳤던 짚치마를 말합니다.

‘돈팔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오늘날 온 누리에 돈팔이들이 날뛰는데, 옛날에는 내놓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 듯싶습니다. 배운 것이나 재주, 솜씨 따위를 돈벌이에만 쓰는 짓이나 그렇게 쓰는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나숨이(의사)나 벼리바치(변호사, 법률가), 가르침이(교수, 교사) 가운데도 돈팔이들이 늘어나지 않나 싶어 걱정입니다.

‘위인전’, ‘위인열전’ 할 때 위인은 우리말로 ‘돋난이’라 하면 마침맞지 않을까요?

둘러가는 길을 뜻하는 왜말 ‘우회로’를 널리 쓰는데, 우리말은 아주 넉넉합니다. ‘에움길’, ‘돌길’, ‘돌음길’, ‘돌림길’ 같은 말이 다 질러가지 않고 돌아가는 길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동업’은 ‘동무장사’, ‘동업자’는 ‘동무장수’라고 하면 훨씬 쉽게 뜻을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뜻이 가슴속으로 잘 들어옵니다.

 

요즘 새삼 한자를 배우지 않아 배움이들이 글을 아는 힘(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떠들면서 한자를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뜬금없는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려는 짓입니다. 우리 겨레가 글살이에서 어렵게 버린 한자를 끌어내 다시 배울 일이 아니라 한자 없이 쓰는 한자말을 버릴 때가 온 겁니다. 한자를 배워 익혀야 제대로 뜻을 아는 한자말, 곧 왜말을 모두 버리고 그 말에 짓눌려 죽어가는 우리말을 찾아내고 살려 써 말살이를 통째로 바꿔야 합니다.

남 집에서 부엌일을 맡아 하던 사람을 ‘동자아치’라 했는데, 한동안 ‘식모’란 말을 널리 쓰다가 요즘은 ‘가정부’라고 하지만, ‘동자아치’가 더 가슴에 와닿지 않나요?

식게(제사) 지낼 때는 예로부터 나무그릇을 썼는데 이 말도 한자말 ‘목기’라고 쓰면서 우리말 ‘두가리’가 잊혀졌습니다.

앞뒤가 엇갈려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두동지다’라고 하는데, 이 말도 왜말 ‘모순되다’에 밀려나 사라져가는 말입니다. ‘요즘 다스림이(정치가)들이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하며 하루에도 두동진 말과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처럼 씁니다.

놀이나 노름을 하러 모인 떼를 뜻하는 ‘두럭’도 왜말 ‘집단’에 밀려난 말입니다.

‘두엄’이란 말도 ‘퇴비’에 밀려 잘 쓰지 않는 것도 안타까워요.

이제부터 예순 해나 일흔 해 앞에는 빈터에 ‘둠’이라 써 놓은 곳들이 있었는데, 이 짧고 뜻깊은 말을 아는 이도 쓰는 이도 드뭅니다. 수레(차)를 두거나 두는 곳을 뜻합니다. 왜말 ‘주차’, ‘주차장’에 밀려난 말입니다. 꼭 살려 쓰면 좋겠어요.

베 파는 가게는 ‘벳가게’라 말해도 좋겠지만 옛날엔 ‘드팀가게’, 또는 ‘드림가게’라 했습니다.

부활절은 우리말로 ‘되산날’이 됩니다. ‘광복절’, ‘개천절’, ‘명절’처럼 ‘절’자를 쓰는 말버릇은 다 왜말에서 온 것입니다. 버리고 우리말로 바꿔쓰는 것이 좋습니다. ‘광복절’은 ‘나라찾은날’, ‘개천절’은 ‘하늘연날’, 또는 ‘나라연날’, ‘명절’은 아예 버리고, 그냥 ‘설날’, ‘가윗날’, ‘한가윗날’처럼 쓰면 됩니다.

‘천정’을 우리말로 ‘보꾹’이라 하는데, 그러면 ‘입천정’은 ‘입보꾹’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말을 함경고장에서는 ‘하느라지’라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우리말입니다.

우리 ‘옷’, ‘밥’, ‘집’을 한자말를 써서 ‘한복’, ‘한식’, ‘한옥’이라고 왜말씨를 따라 말하는데, 우리 겨레 이름이 ‘ᄇᆞᆰ’ 곧 배달이니 ‘배달옷’, ‘배달밥’ 또는 ‘배달맛갓’, ‘배달집’이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방인’이란 말은 옛날에는 ‘난뎃사람’ 또는 ‘난밖사람’이라 했습니다.

‘변덕’, ‘변덕스럽다’는 말도 ‘도섭’, ‘도섭스럽다’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도섭이 죽 끓듯 한다.’, ‘그 사람 허우대는 멀쩡한데 보기보다 좀 도섭스러워서 믿을 수가 없어’처럼 씁니다.

또 ‘심술’에는 ‘암상’이란 우리말이 있지요. 안 쓰니까 한자말에 밀려납니다. 그러니 ‘심술스럽다’는 ‘암상스럽다’로, ‘심술꾸러기’는 ‘암상꾸러기’로 씁니다. 어쩌면 ‘심술’ 같은 말은 우리말인데 굳이 한자로 자꾸 써 놓아서 한자말처럼 보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이나 물덩이(액체)를 담아 두거나 많이 옮길 때 쓰는 탱크는 우리말로 두멍인데, 그러니 탱크로리는 ‘두멍수레’가 되겠지요.

‘두알갈오기’ 또는 ‘두알갈래기’는 왜말로 ‘이란성 쌍둥이’를 뜻하는 우리말인데, 왜말로 뜻풀이를 해야만 우리말을 알 수 있으니,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거꾸로 된 말살이를 하는 셈입니까?

똬리쇠나 자릿쇠는 잉글말 ‘와셔’를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왜말 ‘모자’는 우리말로 ‘쓰개’인데 함경고장말로는 ‘마르래’입니다. 쓰개도 좋은 말이지만 ‘마르래’ 같은 텃말을 살려 쓰면 좋겠어요.

‘당초무늬’ 같은 말도 우리말이 있는데 바로 ‘만달’입니다. 이런 말을 살려 쓰면 ‘당초’ 같은 말 안 써도 되겠지요.

‘형편이 좋다’, ‘형편이 펴졌다’ 할 때 이 왜말 ‘형편’을 뜻하는 우리말은 ‘매개’입니다. 이 말을 찾았을 때 대단히 기뻤는데, 그래서 저는 이 말을 쓴 지 제법 오래됩니다.

‘머드레’라는 말은 여름지기들이 예부터 땅을 슬기롭게 쓰는 재주가 엿보이는 말인데, 콩밭이나 팥밭에 수수나 옥수수를 드문드문 심어 아래에는 콩이나 팥이 자라고 위에는 키 큰 수수나 옥수수를 가꾸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곧 낟이나 남새를 심은 밭에 다른 낟이나 남새를 드문드문 심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 왜말로 ‘무인도’를 우리 겨레는 ‘알섬’이라 불렀지요.

또 ‘향’, ‘향기’에 잡아먹힌 우리말은 ‘옷곳’입니다. ‘옷곳하다’는 ‘향기롭다’는 뜻입니다.

‘바드럽다’는 말은 한자말 ‘위태롭다’와 ‘위험하다’에 잡아먹힌 우리말입니다. ‘저 메는 바위가 많고 가팔라 오르기가 매우 바드러워’처럼 씁니다.

‘천하다’라는 말도 일찍이 우리말 ‘나랍다’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귀하다’는 우리말 ‘놀다’를 잡아먹었고요. ‘놀다’는 움직씨로는 ‘즐겁게 지내거나 일 없이 지내다’를 뜻하고, 그림씨로는 ‘드물어서 얻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씨 뜻이 한자로 ‘귀하다’ 입니다. 이 ‘귀하다’가 우리말 ‘놀다’를 잡아먹어서 ‘놀다’라는 말을 아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노걸대언해’에 ‘노든가 흔튼가’라는 글귀가 나오는데요, 이때 ‘노든가’라는 말이 바로 ‘귀하다’는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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