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겨레소리

푸른책 읽기 52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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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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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을 새삼스레 읽습니다. 2024년에 〈건국전쟁〉이란 이름을 붙인 보임꽃이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되는 듯이 나오더군요. 이런 거짓부렁은 아무런 삶그림(다큐)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거짓부렁에 눈속임에 길들이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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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2024년에 ‘망나니 이승만’을 ‘나라 아버지’로 치켜세우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온다면, 2054년 무렵에는 ‘얼간이 전두환’도 이와 비슷하게 기리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올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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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스로 눈뜨려 하지 않으면 거짓부렁에 놀아납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감은 채 힘·돈·이름에 사로잡혀서 멱살질만 해댄다면, 앞으로 아이들은 우리 발자취를 잊을 뿐 아니라, 우리 앞길마저 잃어버릴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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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나 얼간이가 잘못했기에 그들을 돌로 쳐죽여야 하지 않습니다. 서정주나 고은 같은 얼치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이들을 바위로 쳐죽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이들 민낯을 낱낱이 밝혀서 어떤 허물이었는지 남기고서, 이제부터는 망나니가 힘을 부리지 않도록, 오늘부터는 얼간이가 이름을 날리지 않도록, 앞으로는 얼치기가 돈을 거머쥐지 않도록, 나라를 아름다이 가꿀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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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도 썩 잘 여민 꾸러미는 아닙니다. 이미 나온 다른 꾸러미를 간추렸을 뿐입니다. 이 꾸러미를 쓴 분도, 다른 꾸러미를 쓴 분도, 다들 입으로는 들불(민주화운동·민주화항쟁)이란 이름을 외지만, 막상 들사람 눈높이로 글을 쓰거나 여미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 어느 곳에도 들사람 이야기는 한 줄로도 없습니다. 온통 벼슬판(정치)과 물결판(운동권)에서 맴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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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이만큼 날개를 펴고 숨통을 튼 바탕은 몇몇 ‘길잡이(운동권 인사)’ 때문이 아닙니다. 이름을 안 남기고서 이 땅을 어질게 일군 숱한 순이돌이가 이 땅과 나라를 이끌었어요. 서울에서 몇 사람이 모이고, 부산에서 어느 길을 차지하고,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하고 적바림하는 글은 온통 ‘위’일 뿐, ‘밑(사람들)’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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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누가 이런 책을 읽어 줄까요? 게다가 글이 매우 어렵습니다. 무늬는 한글이지만 하나도 우리말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일제찌꺼기 말씨를 붙들고서 이렇게 딱딱하고 어설피 글을 쓸 셈인지 글바치 스스로 뉘우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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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섬기던 무리는 우리말을 안 쓰고 중국말과 한문을 쓰면서 우쭐거렸습니다. 일본수렁일 적에도 우리말을 안 쓰고 일본말과 일본 한자말을 쓰면서 거드럭거렸습니다. 일본총칼이 물러난 뒤에도 내도록 중국말에 일본말에 영어를 마구 뒤섞으면서 막상 우리말을 쓴 적조차 없는 글바치요 길잡이(운동권)입니다. 벼슬아치도 엉터리였지만, 벼슬아치를 나무라는 쪽도 참 얄딱구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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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파묘〉 같은 보임꽃에서 헤맵니다. 우리는 여태 〈웡카〉 같은 보임꽃은 찍을 줄도 엄두도 생각도 못 합니다. 조금이라도 날개를 펼 수 있는 나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새롭게 눈뜨고 마음을 틔우면서 아름나라로 나아갈 길을 즐거우면서 사랑스레 들려주는 글과 말과 이야기와 살림을 펴서 씨앗으로 심어야 할 테지요. 엉터리에 망나니에 얼치기가 왜 판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낡은 틀에 새술을 들이부은들 고린내가 날 뿐이에요. 새술은 새자루에 담아야지요. 낡은말을 버리고, 낡은틀을 버리고, 낡은길도 버리고, 낡은나라와 낡은 벼슬아치도 몽땅 버려야, 이제부터 아이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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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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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독재정권을 최종적으로 붕괴시킨 것은 민주당이 아니었다.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에 의한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자행됨에 따라 이에 대한 항의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마침내 그 항의는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맞서 국민적인 항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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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해방’ 직후인 22일 오전의 시점에서 ‘해방’ 광주를 이끌 그 어떤 항쟁 지도부도 존재하지 않았다. 광주의 ‘해방’은 시민들의 자연발생적인 항쟁의 결과였을 뿐, 어느 누구의 계획적인 지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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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이 지방으로 확산되고 경찰력이 무력화되기 시작한 18일을 전후하여 전두환 정권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제 그들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경찰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항쟁의 저지를 위해 군 투입의 비상조치를 감행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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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세력의 후신은 보수적 정치세력의 집권으로 철저한 독재청산이 어려웠을지라도, 또한 대선 패배로 인해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되고 좌절감에 빠졌을지라도, 이제 과거 권위주의 방식의 지배와 통치는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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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사회 구현을 내건 전두환 정권이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두환의 대통령 재임 당시 밝혀진 이 같은 권력비리들은 전체 비리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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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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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시민혁명일 것이다

→ 우리 눈에는 무엇보다도 들너울이 보인다

→ 우리는 먼저 살림너울을 본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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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치하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의 꿈에 고무되었다

→ 일본수렁에서 풀린 이 땅은 새나라를 세우는 꿈에 부풀었다

→ 일본굴레를 벗은 이 나라는 한나라를 짓는 꿈에 기뻤다

→ 일본사슬틀 털어낸 이곳은 한누리를 닦는 꿈에 들떴다

→ 일본불굿에서 나래펴는 우리는 혼누리를 일구는 꿈에 반가웠다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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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반공주의를 더욱 강화했고

→ 한겨레싸움으로 나라틀은 두레길을 더욱 미워했고

→ 한겨레싸움 뒤로 나라는 거꿀두레로 더욱 치달았고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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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입개헌으로 장기집권을 모색하면서 점차 동요했다

→ 가운올림 뒤집기로 오래임금을 꾀하면서 차츰 흔들렸다

→ 도막올림 판갈이로 오래끌기를 노리면서 이내 기울었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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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은 이에 일괄적으로 재갈을 물리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 박정희 나라는 통째로 재갈을 물렸다

→ 박정희는 모조리 재갈을 물렸다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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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발생한 시위는 주변의 마산지역까지 확산되었지만

→ 부산에서 일어난 물결은 둘레 마산까지 퍼졌지만

→ 부산에서 터진 들너울은 둘레 마산까지 번졌지만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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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일부 학생들과 불순분자들의 난동사태라 주장했다

→ 이를 몇몇 아이들과 빨강이가 어지럽힌다고 떠들었다

→ 이를 두어 아이들과 사납이가 들쑤신다고 떠벌였다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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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한 만행에 대항하여

→ 끔찍한 짓에 맞서

→ 몹쓸짓에 맞버텨

→ 사납짓을 맞받아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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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 전두환을 꼭두로 올리려는 물결에서 비롯하였다

→ 전두환을 높이 띄우려는 바람으로 열었다

→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모시려는 구름에서 일었다

→ 전두환을 나라님으로 높이려고 너울대면서부터이다

→ 전두환을 꼭두빛으로 세우려고 춤추면서부터이다

→ 전두환을 나라지기로 기리려고 하면서부터이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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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항쟁이란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압력이 더 이상 억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련의 계기를 통해 그 압력이 폭발함으로써 야기되는 대규모 대중 시위라 할 수 있다

→ 들꽃너울이란 힘으로 억누른 틀에 맞선 사람들이 더는 짓밟히지 않으려고 한꺼번에 일어나는 너른바다라 할 수 있다

→ 촛불바다란 모질게 짓이기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더는 밟히지 않으려고 다함께 일으키는 들불이라 할 수 있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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